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5년 7월 31일] 교회비전 2 - 모세비전
  • 청지기
    조회 수: 3356, 2005-08-03 14:07:43(2005-08-03)
  • 하느님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우리의 비전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  - 다윗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모세비전을 나눕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서 기도했던 모세처럼, 교회의 존재 이유 중에 하나가 기도에 있습니다.

    오늘도 먼저 우리교회 중보기도팀장으로 섬기시는 임요한 교우의 간증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 (임요한 교우 간증설교) ---

    마르코 11:15-17, “성전 정화 사건”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에 있는 장사치들을 쫓아내시면서 외치셨습니다.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 이것이 성전의 역할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먼저 공간으로서의 성전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예배하고자 구별된 장소인 성전에서 찬양과 경배와 함께 끊임없이 드려질 것은 기도라는 것 입니다.
    하지만, 성전은 단순히 공간이나 건물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자들, 자신”입니다.
    고전 3:16,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우리 각자가 성전입니다. 그리고 신자 두 세 사람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전이고 교회입니다. 성전이자 교회인 우리들을 하느님께서는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크리스챤의 본분은 예배자일뿐 아니라, 중보기도자입니다.

    이러한 사명이 있는데도 여전히 장사하고 돈 바꾸는 장사꾼들이 즐비한 예루살렘 성전처럼, 세상의 허접한 일에만 온통 신경을 빼앗겨서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목적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만민을 위해서 기도하는 집입니다. (복창)

    예수님의 모범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사셨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17장을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시기 전에 제자들과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될 신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계시는 우리의 든든한 중보자 이십니다.
    히브리 7:25,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                  나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로마서 8:26,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
    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창조의 원리부터 시작됩니다.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을 창조하실 때 결정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6,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                  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                  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말은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신 하느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실 때 우리 사람과 함께 통치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뜻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우리는 주님의뜻을 알게 됩니다.

    기도가 없는 인간의 그 어떠한 노력에는 하느님이 개입하실 여지가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하느님은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정하신 영적인 원리입니다.

    연약하고 죄인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위가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느님이 움직이십니다.

    오늘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영적인 원리가 이것입니다.

    산 위에 있는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니까 지상에서 전쟁을 하는 여호수아의 군대가 승리를 합니다. 기도가 멈춰지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밀리고 기도가 계속되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전진합니다.

    지상전의 승리의 관건은 모세의 기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은 모두 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에서의 싸움의 승패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결정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서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압니다.

    히브리서 11: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 하느님이 움직이시고 일하시면  보이는 물질세계에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승리가 안겨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첫 번째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영적인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이 원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인생에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힘써 일해도 그 열매가 적습니다.

    점을 치며 살아가던 여자분이 - 소위 무당이 갑자기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점치는 일을 그만 두고 예수 믿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그 집에 가서 점치는 데 사용되는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다 가지고 와서는 교회 마당에서 태워버렸습니다. 그분은 두 아이와 함께 세례를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까?’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시누이가 올케와 아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날마다 새벽기도를 바쳤고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관건입니다. 아멘?

    특별히 하느님은 중보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영어로 중보기도(Intercession)란 -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얻기 위해 그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중보기도의 영어 단어 Intercession에서 Inter는 'between?'사이, 간격?을 의미하고 cession은 'go?(가다)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 cedere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즉 이쪽과 저쪽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행위가 중보기도이다.

    우리의 영적신분이 왕의 사제인데, 사제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얻기 위해 중보자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왕의 사제로 부르신 하느님은 우리가 중보기도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우리가 중보자인 모세를 닮는 중보자가 되는 모세의 비전은 또 한가지 우리 모두가 사랑의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합니다.

    중보기도의 내용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나눈 형제 자매된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서, 나아가 나라와 민족,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향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게 되고 중보자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말로나 혀끝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게 된다.

    북한의 동포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상황을 가슴아파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중보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굶주린 북한 동포를 위해서 자기 삶을 절제하며 자신의 것을 나누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열방과 민족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그들 영혼의 구원과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지도록 선교와 선교사를 위해서 물질로 후원하게 됩니다.

    이렇듯 중보기도는 한 인격을 사랑의 사람으로 바꿔가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에 담긴 또 하나의 영적인 원리이다.
    중보기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영적 원리가 담겨져 있음을 기억합시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영적세계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이 일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진정으로 중보기도 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담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일하시도록 하라!
    중보기도를 통해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사람이 되라!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18 청지기 6251 2003-03-07
917 청지기 7003 2003-03-17
916 청지기 7966 2003-03-24
915 청지기 5556 2003-04-09
914 청지기 6050 2003-04-09
913 청지기 6412 2003-04-15
912 청지기 6458 2003-04-21
911 청지기 6566 2003-04-28
910 청지기 5966 2003-05-06
909 청지기 4629 2003-05-20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