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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6월 19일] 질병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처방
  • 청지기
    조회 수: 3458, 2005-06-20 08:37:44(2005-06-20)
  •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면 웃는 일이 생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는 사람이 행복하다.”
    (웃음연구소 소장 이요한)

    “항상 기뻐하라”는 성경말씀과 일치합니다.
    한 번 웃어봅시다. 하  하하  하하하

    ‘웰 비잉~’이 화두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가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잘 먹고 잘 살자!’

    그러나 어떻습니까? 암 환자가 남성은 3명 중의 한명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도 많은 교우들과 그 가족들이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봅니다.
    하느님은 질병과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질병에 관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날에도 병 고치는 치유사역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분명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치유가 임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최종 목적

    분명히 기억할 것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도 하느님의 선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최종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29,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이 목적 안에서 질병과 그에 따른 고난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을 더욱 더 닮아가는 과정에서 지금 앓고 있는 병이 낫는다는 것이 하느님의 완전한 계획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는 병이 낫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병 낫기를 구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성경에 너무나 많이 나와 있기에 만일 우리가 그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주님의 방법과 때에 병을 치료하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16:17-18,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내고 여러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며 또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짐으로써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불렀습니다. 그녀는 폐결핵으로 인생의 황금기인 스물네 살 때부터 13년 동안 거의 침대에 누워 지냈다고 합니다. 또한 직장암, 파킨슨병,척추 카리에스 등이 계속 육체를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한 줄기 강렬한 빛이 쏟아졌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원죄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쓴 작품이 아사히신문사의 소설 공모에 당선됐습니다. 그녀의 나이 마흔 두 살 때였습니다. 그녀는 일약 일본 최고의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이 분이 소천하기 직전에 남긴 유언 같은 잠언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질병으로 내가 잃은 것은 건강뿐이었습니다. 그 대신 ‘신앙’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필수적인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 중에 고난의 중요한 한 가지 목적은 인내를 낳는 것이며, 인내는 연단(성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3-4,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목적은, 다른 고난 받는 이들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후 1:4, “우리가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는 온갖 환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또한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타락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고통도 있습니다. 수천 년간 계속된 인류의 죄악으로 인해 하느님이 처음에 살도록 의도하신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세상이 오염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질병의 원인과 처방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성경적 이해를 가져보려고 합니다.

    질병의 한 가지 원인

    질병의 한 자지 원인은 사단과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공격일 수 있습니다.

    루가 13:11이하를 보면, 안식일 날 예수님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를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예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절,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하셨다”

    사단으로 인한 질병은 사단을 제압하는 경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이 사단에 비해 얼마나 탁월하게 크신지를 우리가 목격하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잠시 허락하신 경우입니다.

    고후 10:4, “우리는 세속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느님의 강한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단을 이기는 하느님의 강한 무기는 성령님, 하느님의 말씀, 예수 스리스도의 이름, 주 예수 보혈. 이 4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성령의 검, 곧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하고 - “기록하였으되”하고 - 예수께서 십자가애서 이루신 모든 승리를 상징하는 주님의 보혈을 원수 앞에 제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패배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병이 사단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하느님의 영적인 무기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우리의 질병이 낫기 시작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찬양할 때 낙심하는 마음이 떠나가며, 가정의 불화가 그치며, 질병으로 인한 통증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을 대적한 후에도 질병이 낫지 않고 문제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단 또는 사단의 세력이 그 병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마귀의 존재가 무소부재한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기만 하면 즉시 마귀의 탓으로 돌립니다. 많은 경우 이것은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손쉬운 탈출구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무소부재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와 같은 능력이 그들에게 있다고 높이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질병의 다른 원인과 목적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병의 두 번째 원인은 우리 삶에 자리 잡은 죄일 수 있습니다.

    요한 5:1-14에는 38년간 연못가에서 병 낫기를 고대하며 병들어 누워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오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셨습니다.

    14절,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자, 지금은 네 병이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너에게 생길지도 모른다." 하고 일러주셨다.”

    고전 11:17-34에 고린토교회의 신자들이 주님의 성찬을 기념할 때 바르지 못한 태도로 참여하여 분열과 이기심과 술취함 등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그 죄로 인해서 하느님의 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약해지고 병들었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기까지 하였다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편 32편 다윗의 고백을 보면, 고통의 원인의 죄였으며 하느님의 심판이 다윗의 육체에 나타난 것을 알게 됩니다.
    3~4절, “나 아뢰옵지 않으렸더니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아나고 밤낮으로 당신 손이 나를 짓눌러 이 몸은 여름 가뭄에 풀 시들듯, 진액이 다 말라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죄를 회개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넘치는 자비로 그를 용서하셨다.
    5절, “그리하여 당신께 내 죄를 고백하고 내 잘못 아니 감추어 "야훼여, 내 죄 아뢰옵니다." 하였더니, 내 잘못 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를 의식하면서도 겸손히 자복하고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성령님과 양심을 거부했다거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죄를 지었을 경우에, 단순하게 “주님, 이 병의 원인이 아직 다루지 못한 죄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부지런히 끈질기게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잠언 3:7-8,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지 말고,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고 악을 멀리하여라. 그리하면 네 몸이 튼튼해지고 뼈마디가 시원해지리라.”

    그래서 우리는 야훼를 두려워하고 섬기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잠언 8:13에 따르면 그것은 곧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야훼 두려워하여 그를 섬기면 악을 미워하게 마련, 나는 잘난 체 우쭐대며 악한 길을 가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역겨워한다.”(잠언 8:13)

    우리가 우리보다 높은 권위에 의해서 강제 받지 않는 한, 우리가 싫어하는 일을 일부러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싫어한다면 죄 짓지 않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역으로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죄를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주시면, 그것이야말로 죄를 짓지 않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될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 주소서!”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추측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 들린 것이 모두 죄 때문만은 아닌 것입니다.

    요한 9:1-3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병자를 보고 성급하게 “저 병은 죄 때문이야. 회개해야 한다구.”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믿음뿐이에요.”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판단은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이해하고 치유받기를 위해서 하느님을 구하도록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중요성

    의학은 원한(용서하지 않음)과 특정 질병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규명해 냈습니다. 예를 들어, 원한은 때때로 고혈압, 궤양, 발진, 두통, 관절염, 결혼생활의 성 불능 등의 원인이 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원한은 영 혼 육 마음에 강력한 파괴적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잠언 14:30, “마음이 편안하면 몸에 생기가 돌고 마음이 타면 뼛속이 썩는다.”

    많은 경우에 우리의 온전함은 우리에게 잘못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선택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1. 지은 죄를 회개했다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2. 용서란 의지적인 행동임을 인식하십시오. 용서하기를 소원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진정한 용서란 우리에게 잘못한 그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리라.”

    3.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 6:14-15,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4.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효과적인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태 6:12(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에 나타난 기도와 용서의 상관관계를 주목하십시오.

    5.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모든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긍휼에 감사하십시오.

    6.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통해 주님께서 주신 축복이 있거든 감사드리십시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 분노나 원망은 자리 잡기 힘듭니다.

    7.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을 당시 그들의 정신적, 신체적, 감정적, 영적인 필요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8. 성령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롬 5:5,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10.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자가 되십시오. 마태 5: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용서는 우리를 파괴하는 악한 힘에서 풀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날 수 있게 합니다.

    그만 짊어지라.
    주님께 우리 짐을 던져 버리고 그분이 우리를 돌보실 것을 믿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만성적인 정신적인 긴장, 스트레스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의 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시55:22, “너의 걱정을 야훼께 맡기어라. 주께서 너를 붙들어주시리니, 착한 사람 망하도록 절대로 버려두지 않으시리라.”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근심거리를 싸 짊어지고 불평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 주님께 자신의 짐을 넘겨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우리 몸에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인 이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레오나드 S.포스딕 박사는 걱정을 하게 되면 침의 분배가 억제되고 그로 인해 입속의 타액이 자연적으로 중성이 되지 못함으로써 충치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또한 21개의 타 대학에서는 5천여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걱정하는 학생들은 성적도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필립 4:6,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시편 37:5, “그에게 앞날을 맡기고 그를 믿어라, 몸소 당신께서 행해 주시리라.”

    ‘맡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던진다.’란 뜻입니다.
    문제를 하느님께 던지십시오. 하느님의 성품으로 인해 그분을 신뢰하고 그가 이루실 줄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에게 아뢰잖아 평화 얻지 못하네.
    우리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성가 480)

    하느님의 자연 법칙 지키기와 건강한 식습관
    질병의 또 다른 원인은 우리 몸을 위한 하느님의 자연 법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전 6:19-20,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의약적으로 처방된 경우가 아닌 약물, 알코올, 담배, 영양가 없는 식품, 카페인이나 타닌이 함유된 음료 등 등.  우리가 몸에 해로운 물질을 임의로 섭취한다면 어떻게 우리 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과식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으며, 과다한 당분에 중독되어 지내면서 어떻게 우리 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또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거나 우리 몸을 무리하게 혹사하여 하느님의 자연 법칙을 거슬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자기 몸을 잘못 간수한다면, 우리는 그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닦기를 게을리 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자연히 나타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가 썩을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건강이 아닌 미각, 육체의 만족을 위한 식생활을 할 때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왜 그리 오래 걸리는 지.....

    아무리 헌신된 주님의 제자일지라도 하느님의 자연적인 법칙, 영적인 법칙에 지속적으로 불순종한다면 하느님께서 그를 건강하게 장수하도록 지켜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으로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부분을 보여 달라고 주님께 진지하게 요청하고, 회개에 필요한 절차 - 곧 생각의 변화, 마음의 변화, 삶의 변화를 가지십시오.

    신체적인 질병의 원인을 하느님께 묻고 이해하고자 할 때, 하느님의 응답은 우리 몸의 화학적 불균형을 알려주는 영양학자나 의사에게 인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를 외과의사에게 보내어 수술이 필요함을 깨닫도록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을 치료하시는 하느님은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전 3:16-17,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1. 사탄을 대적하고 용서하지 못한, 전능하신 하느님을 불신함으로 근심하고 염려했던, 기타 우리의 죄와 잘못을 회개하며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된 이 몸을 잘 관리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겠다고 기도합시다.

    2. 특별히 이 시간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영혼과 마음과 육체의 전인적인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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