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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6월5일] 마태오 9:18~26 주님 앞으로 나오라!
  • 청지기
    조회 수: 3597, 2005-06-07 07:52:25(2005-06-07)
  • 요즈음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습니다. 최진영님, 최갑산님, 정유정님, 임의성님, 신만석님, 주성자님, 루디아선교회어머님들, 임용우교우 어머님, 서미애교우 어머님, 윤재은 형제 아버님, 그리고 제 아버님도.

    “주여, 이들을 위로하시고 치유의 손길로 함께 하여 주소서!”

    며칠 전, 전에 섬기던 수원교회 여성 교우가 아직 40세도 안되었는데 아이 둘을 남기고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한때 냉담하여 자주 심방 갔던 교우였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장례미사에 갔었습니다. 가족들의 오열이 저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습니다.

    죽음과 질병, 이것들이 가져오는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큽니다.

    오늘 복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딸이 죽은 회당장, 12년간 하혈병을 앓아온 여인,
    이들이 당한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 가져오는 고통 - 애들이 아프기만 해도 대신 아파주고 싶은 부모 마음인데, 아이가 죽는다고 생각해 보면 몸서리 처집니다.

    12년 동안이나 애를 써도 낫지 않는 질병 - 율법에 따르면 피를 흘리는 것은 부정한 것이고, 그로 인해서 불결하고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인간 대접받지 못하면서 살아온 나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죽음과 질병 앞에 놓여 있고 그것이 가져오는 시름과 고통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생로병사 -그래서 부처는 인생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인생은 고해라고 말했나 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피조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하셨는데,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좋았다고 했는데, 왜 사람은 이리도 고통 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인간의 삶에 슬픔과 고통을 가져오는 죽음과 질병 -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서 범한 불순종의 죄악으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죽음에는 육체적인 죽음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이 있고 주님의 심판 후에는 영원히 죽게되는 둘째 죽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성경은 두가지의 원인을 말합니다.

    하나는 사탄이 질병과 죽음의 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루가 13장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마침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 있어서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어서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예수님께 따지니까 예수님이 "이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하셨습니다.
    여인이 병에 걸렸던 원인이 사탄에게 매여 있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인간이 범하는 죄악이 질병과 사망의 원인이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 욕심, 탐식, 육체의 만족을 위해 절제치 못하는 여러 행위들 - 과음, 흡연, 과로, 성적 타락 등 등

    요한 5장 1-14절을 보면, 예수님게서 38년이나 앓고 있던 베짜다못가의 병자를 치유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14절,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자, 지금은 네 병이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너에게 생길지도 모른다." 하고 일러주셨다.”

    잠언 3:7-8,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지 말고,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고 악을 멀리하여라. 그리하면 네 몸이 튼튼해지고 뼈마디가 시원해지리라.”

    특별히 오늘이 환경주일인데 생태계를 보십시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참혹한 환경 파괴들 - 그로 인해 인간이 병들고 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온 피
    조세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사망에서 죄악의 굴레에서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까?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골로사이 2:13-15, “여러분이 전에는 잘못을 저질렀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시고 우리의 잘못을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 또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버리셨습니다. /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요한 11:14-1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할렐루야 !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죽음과 질병 앞에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회당장이나 여인은 죽음의 고통 앞에서, 긴 세월동안 앓아온 질병의 고통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죽음과 질병의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나와 간구했습니다.

    1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께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20절, “마침 그 때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어떤 여자가 뒤로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회당장은 딸의 죽음이라는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2년 동안 하혈병을 앓은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는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주관적인 확신도 공염불도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에 이들의 생각은 주관적인 확신도 공염불도 아닌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가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풍요로운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분께 나아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에제키엘 37장을 보면 나오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른 뼈들에게 살이 붙고 생기가 불어 와 다시 살아납니다.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절망하십니까?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물론, 예수님이 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서도 이 여인과 같은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경험해 보건데, 우리 주님은 불가사의한 분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괴로워할 때는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맬 때에도 침묵을 지키십니다.
    그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지 주님이 우리를 내어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힘이 탈진하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가장 마지  막 순간에 이르게 되면 우리에게 갑자기 어떤 생각을 불러 일으켜 주십니다.   영혼을 깨우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우리를 소생시키는 어떤 동기를 심어 주십니다.

    바로 이 순간이 절망이 찬송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비로소 간절한 기도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충분히 낙심하고 충분히 좌절할 때까지는 깊은 기도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같습니다.

    사는 것이 때때로 너무나 고통스러워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여러 번 도달했다면 당신은 깊은 기도를 경험했었을 것입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어떤 일도 쉽게 굴복하지 않으며 쉽게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면 당신은 아마 기도를 배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보아도 전혀 도울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제 기도를 배울 수 있으며 사랑의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근심과 절망은 하나의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를 통해 주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주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깊게 만나고 인생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질병이 가져오는 고통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기회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많은 기회가 있어도 혼자서만 끙끙거릴 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낙천적인 사람들은 절망의 에너지가 없어 주님께로 가지 못합니다.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도 너무 두려움이 없어서 주님께로 가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강해지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마십시오.
    슬플 때 눈물을 참지 말고
    괴로울 때 탄식을 억제하지 말고
    외로울 때 슬픔을 억누르지 마십시오.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을 누를 때 조용히 주님께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가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만지시기만 하면,
    죽어버린 것도 살아납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희복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늘 이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사랑하던 딸이 죽는 것과 같은 처절한 고통이 있는가?
    죽음처럼, 이제 끝이라고 여겨지는 절망적인 상황이 있는가?
    12년 동안이나 여인을 고통스럽게 한 하혈증과 같은 오랜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모든 문제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딸이 죽었다면 예수에게 달려갈 수 있겠는가?
    12년, 그 절망을 딛고 율법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예수께서 달려갈 수 있겠는가?

    주님 앞에 나가십시오.
    기도하십시오.

    히브리서 4장 15절 16절,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루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하되 용기를 잃지 말라고, 인내하며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1장 4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느님을 믿으라 !  기도하라 !  강청하라 !

    회당장처럼,
    여인처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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