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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월 30일] 우리가 가족으로 모인 이유2
  • 청지기
    조회 수: 3222, 2005-01-31 09:01:02(2005-01-31)
  • 우리가 가족으로 모인 이유2 - 다윗비전, 모세비전, 넥스트 제너레이션 비전

    1월 16일에 말씀드렸던 비전 3개를 다시 생각합니다.

    1. 예루살렘교회 비전 :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비전입니다. 1세기의 초대교회를 21세기 한국의 성공회 안에 세우는 것이 우리 교회의 총체적인 비전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성령공동체, 말씀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기도공동체, 기적의 공동체, 예배공동체, 그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가는 배가하는 공동체였습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모이는 셀교회 구역예배와 성전에서 모이는 회중전체예배라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였습니다.

    2. 브리스카 아굴라 비전 :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 비전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몸을 이루는 지체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평신도 사역자였던 브리스타와 아굴라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 삶의 처소에서 모이는 셀교회의 리더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만인제사장설이라고 하고 평신도사역이라 하는데, 반드시 제자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3. 안티오키아교회 비전 : 전도와 세계선교의 비전입니다.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이고 동시에 흩어지는 공동체.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며 훈련받고 흩어져서 주의 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의 꿈은 온 세계 민족 열방이 주님께 돌아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꿈을 실현하시고자 우리를 불러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하느님의 꿈과 마음을 알기에 복음 전파를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전도에 열심을 내고 세계선교에 적극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하라!

    ‘Go or Send!’

    전진건 선교사를 파송한 우리 모두는 파송받은 전진건선교사와 동등한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하느님은 매주일 예배 때마다 우리를 선교사로 피송하고 계십니다.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합시다’

    이제 나머지 3개의 비전을 나눕니다.

    1. 다윗비전 :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갈망하는 비전입니다. 교회의 본질-존재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하느님은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교회는 예배공동체입니다.

    교회당의 외형은 경제성장의 속도와 비례하듯 아름답고 화려하고 거대하게 변해왔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당에 들어가면서 교회당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마음 한편에선 강한 소속감과 함께 만족감을 느낍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한 연주는 마음을 울리고 찬양대의 성가는 절묘한 화음 속에서 어느 유명 합창단도 부럽지 않은 목소리를 들려주며 설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실까에 대한 반문은 없습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있으니까.

    이런 자만감속에서 현대인이 드리는 예배모습에 관한 풍자 유머가 있습니다.

    10인 10색 예배시간

    1.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눈은 목사님, 생각은 멀리 출장중)  
    2.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  
    3.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  
    4.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 보는 안절부절파  
    5. 옆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  
    6.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  
    7. 설교시간에만 성경읽기로 시간 떼우는 나홀로파  
    8.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  
    9.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기회주의파(어휴, 어제 못잔 잠 보충해야지)  
    10. 누가 왔나, 안왔나 두리번 거리며 인원체크하는 경비파(주로 각 기관의 회장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

    당신은 어떤 유형이십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신령과 징정으로 예배드리는 순정파가 됩시다!

    순회 설교자로 사역하고 있는 미국의 토미 테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다윗의 장막?이라는 책에서 지적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날의 기독교 세계는 하느님이 건물에 감동받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간단한 임시 구조물에서 모이는 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계속해서 합법적으로 교회당을 세우는 일에 세상의 허가를 얻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한편으론 수백만 달러를 들여 도심에 세운 화려한 교회당들은 합법적인 교회를 향한 하늘의 승인을 얻으려고 애를 쓴다. 뾰족탑과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 전정한 예배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5장 16절에는 “그 뒤에 내가 다시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지으리니 허물어진 곳을 다시 고치고 그것을 바로 세우리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토미 레니는 이 장막을 왜 다시 짓겠다고 하셨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왜 모세의 성막이 아니라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다윗의 장막일까?’

    토미 레니는 그 답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추억 때문이다. 다윗의 장막은 건물이라기보다 사건이었다. 장막을 세우는 원동력이었던 다윗의 열정을 회복시키고 싶은 것이다. 다윗의 가슴에 있었던 열정이 회복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장막을 재건하는 과정에 직접 나서실 것이다.”

    저자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내내 하나님을 예배하고 송축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합니다.
    토미 레니는 “다윗의 장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 된 것은 그곳에서 예배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저자의 질문과 제안은 결코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당을 비판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속에 앉아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태도는 그저 말로만 하느님의 영광을 바란다고 하거나, 어디 한번 해보쇼 하고 구경하는 태도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바란다면 하느님의 임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첫사랑, 처음 열정으로 되돌아가자고 강권하는 것입니다.

    토미 레니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와서 감동만 받고 변화되지 않는 것에 지쳤다. 교회는 거만한 자세로 세상을 향해 매사에 비판의 손가락질을 하며 모든 사람에게 ‘똑바로 해’라고 말해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우리 눈 속의 들보를 끼고 산 셈이다.”  “일단 구원받고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구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해야 하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살아야한다.”  “여기서 비로소 순종과 회개의 예배 가운데 땀방울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다. 만약 어떤 집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다면 그 이유는 그 곳에서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산책을 하고 물장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그 집의 외면적 구조나 집의 모양이 아니라 그 집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건들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기쁨을 느끼고픈 집을 다시 짓기 원하십니다. 그 집은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다윗의 보잘 것 없는 장막입니다. 그리고 장막을 지은 후 그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구했던 이들의 열망을 회복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느님은 다윗의 장막을 들고 서 있을 사람을 지금 찾고 계십니다. 내게 돌아올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얼굴만을 바라보며 환희에 찰 그런 사람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이 이렇게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는 하느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요, 예배 시간은 하느님이 가장 원하시는 시간입니다. 사람이 하느님 앞에 행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 있다면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인류 최초 택한 백성과 버림받은 백성을 갈라놓은 것이 예배입니다(창4장-카인과 아벨). 즉 인간의 운명이 예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배에 성공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은 지금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축복하십니다(대하16:9).

    1) 예배를 철저히 준비하십시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예배의 완성도는 준비에서 시작됩니다. 아주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 몸을 준비해야합니다 : 주일 예배는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일찍 자야합니다. 내일 쉰다는 자유로움이 자정을 넘기면 피곤이 되어 살아있는 예배를 방해합니다. 조절하십시오. 토요일은 예비일입니다. 충분한 휴식에도 불구하고 졸리면 영적인 문제이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새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교회당에 일찍 나아오십시오.  
    * 마음을 준비해야합니다 : 예배에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십시오. ‘지치고 곤고한 나의 영혼을 어떻게 어루만져 주실까?’ 하느님의 임재를 기대하십시오.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기 전날만큼의 설레임은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데, 어찌 기대가 없겠습니까?
    * 예물을 준비하십시오 : 예배를 성립시키는 예물을 준비하십시오. 헌금을 미리 준비하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즉흥헌금, 준비되지 않은 용돈식 헌금은 하느님 앞에 드려지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거절하십니다.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 하느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됩니다.

    2)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예배를 보러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구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어떻게든 살아계신 하느님, 나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배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큰일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느님을 만나는 축복은 큰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만남이 중요합니다. 특히 하느님과의 만남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인격체가 자꾸 만나면 서로 간에 닮아갑니다.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다면 예배가 아닙니다. 추상적인 고백과 막연한 망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토미 테너는 다른 책에 쓴 칼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방문을 벌컥 열어 그 뒤에 숨어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라. ‘찾았다! 아빠’라고 소리친 다음, 당신의 삶은 또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할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예배가 갖는 잠재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은 숨으시는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잘 찾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숨으신다. 하나님께서 숨으시는 것은 우리에게 발견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따라서 하나님이 정말 숨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숨으신다. 우리가 찬양하며 기도 드릴때, 우리는 이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숨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관건은 우리의 예배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열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이 열망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하나님을 끌어 들인다. 우리의 예배, 우리의 찬양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완전한 것으로 들어 주신다. 아기가 서툰 말로 더듬거리며 엄마에게 바라는 것을 말할 때라도 아기엄마는 아기의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는 까닭은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님을 발견하면 하나님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절망하여 간절히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신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려면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열망, 목마른 사슴처럼 하느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설교자를 주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표정도 움직이고, 선포되는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십시오. 그리고 감동이 되면 눈물도 흘려야 합니다. 오늘날 ‘손수건이 없는 예배’를 드리는 통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3) 깨달음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배의 최종 목적은 생활예배자로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즉 성전에 머물지 말고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롬12:1)

    이것이 하느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서 받으시기를 기대하시는 예배입니다. 신앙고백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감동 받은 것만큼 행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받은 힘으로 생활의 현장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 삶의 예배를 망각한다면 그가 다음에 드리는 정규예배도 위선으로 흐르고 말 것입니다.  모두가 예배 성공자로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이것을 파견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5. 모세비전 : 중보기도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확장 비전입니다.~ 출애굽기 17:8-16, 이스라엘 백성과 아멜렉과의 전투 장면입니다. 여호수아와 군대는 지상에서 전투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산위를 보면 모세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전투와 산위의 기도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아군이 밀리고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아군이 이깁니다. 전투에는 실제로 지상군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 없는 전투는 소모전이고 패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여러 가지 봉사와 헌신, 교회 프로그램 등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승패는 기도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 계획하신 일이 이것입니다.    ‘우리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어 이 땅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와 손과 발의 헌신을 통해서 함께 일하신다. 우리는 하느님이 파트너이고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방식입니다. 기도하는 성직자. 기도하는 교회위원, 기도하는 교사, 기도하는 셀리더, 기도하는 신자,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6. 넥스트 제너레이션 : 공부방과 교회학교를 통해서 교회와 나라의 리더를 키우는 일입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더 나아가 청년들까지 성경에 기초한 세계관과 비전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로 키우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위해 애덕신부님이 헌신하고 계십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전도사님을 초빙했습니다. 교회의 많은 예산을 쓰면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올해는 공부방에 정부예산지원이 끊어져서 걱정입니다만, 지역사회와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방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볼것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콜롬바교우님과 최진영교우님이 장학금을 출연하여 격려해 주시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가 조국과 교회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성경의 진리대로 양육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가 이 비전 가운데 한 마음이 되어 전진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이 비전에 순종함으로 복음 받아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누룩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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