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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12월 12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성경진리들 (마태오 24:23-31)
  • 청지기
    조회 수: 2315, 2004-12-13 09:08:14(2004-12-13)
  • 지난주일 창립 9주년을 맞이해서 견진성사와 성전봉헌식 등 뜻 깊은 행사를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치유세미나, 교회김장, 창립기념일 등 매 주일 이어진 교회행사에 열심히 준비하시고 참여하여 주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본 성당을 하느님께 봉헌하시고 귀한 믿음의 모본을 보여주신 이흥준(콜롬바)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견진성사를 받으신 새 가족 여러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성경 말씀대로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이 세상 한가운데서 평화와 일치를 일구어 가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지난주일, 우리는 사랑하는 임병찬(야고보)님의 별새로 또 한 차례 이별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의 은총으로 지금 천국에서 안식하고 계심을 믿기에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만 벌써 6번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지인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나도 저렇게 이 생의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 삶에도 죽음이 온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사만 가도 이사 갈 집이 어떤지 알아보고 이삿짐을 싸며 이 모양 저 모양 준비를 하게 되는데, 진짜로 죽음 이후에 삶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정작 준비하지는 못한 채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만 싶어 하지 않는가?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나는 아무도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죽음뿐이다.”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란 개인의 삶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죠.
    이처럼 인류의 역사에도 종말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바로 인류 역사의 종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재림 종말에 관한 성경 이야기를 나누면서 개인의 죽음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 우리의 믿음의 내용을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이 역사의 종말, 주님의 재림에 관한 질문은 대략 3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어떻게’ ‘언제’ ‘왜’입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24장은 우선 ‘어떻게’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자로(30절) 갑자기(27, 43, 44절) 모든 사람이 보도록(27절) 오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예수님께서 36절 이하에서 그 때와 그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언제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 이단이라고 봐도 정확합니다.

    다만 성경은 반드시 종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히스토리’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흥망성쇠 속에서 인간의 구원과 이 땅의 회복을 향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는 하느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누구도 종료 호루라기를 부르지 않는 축구경기, 혹은 선수들이 하나 둘씩 서서히 지쳐 쓰러져 가는 결승 지점이 없는 달리기를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초점이 없다면, 세계 역사 히스토리는 무의미한 경기, 완성되지 않은 문장, 해답이 없는 퍼즐게임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소풍날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주님의 날을 고대하고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그들의 인사는 ‘마라나타’였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옆사람에게 인사합시다. “마라나타”

    그러면 예수님은 왜 오시는가? 오늘의 중심 주제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자신의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선포하시며 갈릴리에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분의 나타나심으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게 아직 완전하게 임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9-10).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통치를 우리에게 가까이 가져 오셨고 그 하느님의 통치를 충만하게 가져오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성탄을 준비하는 이때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내다보며 그것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림절입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자주 성탄 장식과 행사에 가려서 미래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대림절이란 예수님의 두 차례 오심이 별개의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라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아주 중요한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마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오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이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광신도들에 의해서 조작된 대안적 아이디어이거나 비이성적인 괴상한 생각이 아닙니다. 재림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갖는 믿음의 필수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인간과 온 피조세계를 하느님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오심은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물의 심판을 통하여 하느님이 목적하는 바는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비록 인간의 죄로 인해서 다시 세상이 타락하였지만, 주님은 종말이 아닌 새로운 세상 -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결코 사람들이 ‘이 땅을 포기하고 하늘로 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썩어진 이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새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21, “ 곧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온 피조세계와 더불어 새롭게 하나 되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심판을 가져오시고 악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백성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고전 4: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무슨 일이나 미리 앞질러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시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응분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초림의 때에 십자가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예수님이 이제는 공의로 불의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안락한 삶을 사는 이에게 정의의 하느님은 낯선 분이지만, 우리가 불의에 의한 희생자라면 정의를 갈구할 것이고 불의한 자들이 그 죄와 함께 결코 영원히 무사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자 갈망할 것입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르완다의 참사, 카보디아의 킬링필드 등 인류에 빚어지는 수많은 악과 불의로 빚어진 고통과 그로 인한 희생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이 모든 악이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세계를 망가뜨리고 하느님의 형상인 인간을 존재 이하로 비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오셨을 때 악, 두려움, 고통, 죽음과 같은 적들과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에서 그분의 승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는 악에 의해서 황폐해진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 9:27.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가 주님을 대면하리라고 말합니다.
    마태 25:31~33,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하느님 앞에 서게 될 심판은 우리가 무시한다고 없어질 것이 아닌 실재인 것입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지가 그분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책임 있는 존재로 취급하십니다. 이것이 동물과 구별되는 요소입니다. 만약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신념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책임을 축소하는 것이 되고 우리의 인간됨을 갉아먹는 것이 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셈이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 말, 생각과 동기 그리고 우리의 성품이 하느님 앞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모든 정보가 동원될 것이고 주님의 공의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배경, 기질, 은사가 있고 없음에 대해서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지만, 우리의 성품, 우리의 삶을 형성해 온 언행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갈라 6:7-8,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 심는 사람은 육체에게서 멸망을 거두겠지만 성령에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분리를 가져 올 것입니다. 양과 염소의 분리, 그리고 하느님과의 분리.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어 질 것입니다.

    하느님과 분리된 바로 그것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마태 25:46의 표현대로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영원한 고통이 지옥입니다. 영생이 끝없는 삶을 의미한다면, 지옥은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심판의 문제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의 기준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과 화해되어 연합되어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거부하고 우리 주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에게 속해 있는가? (살후1:8, 주께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거부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심판의 결과 또한 관계의 문제입니다. 긍정적인 판결은 항상 주와 함께 있는 것인 반면(살전4:17), 부정적인 결과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마태 22:13).

    살전4:17,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22:14,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심판의 기준이 되고 그 결과가 되는 주님과의 관계의 문제는 죽음 이후 재림의 때에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항상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거나 혹은 불순종함으로 우리의 선택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선택합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매우 명확하게 말해줍니다.  
    요한 3:16-19, “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빛의 목적이 그늘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주님은 결코 정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빛을 가로막고 선다면 그늘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해 주시고 새 생명을 제공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결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우리 스스로가 내린 선택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밑줄을 그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충만한 하느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외면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옥에서 그 결과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비로우신 주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초대하고 계십니다.
    고후 6:2,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바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빛의 세계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땅과 내세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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