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4년 11월 28일] 종말신앙을 가진 자의 삶
  • 청지기
    조회 수: 2915, 2004-11-29 09:34:58(2004-11-29)
  • “종말신앙을 가진 자의 삶”  로마서 13:11-14 / 마태 24:36-44

    다음 주일은 교회 창립 9주년으로 우리 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는 날입니다.  개척 후 4년 동안 우리 교회 공동체가 겪었던 갈등과 아픔을 딛고 그 후 5년 동안 아픔으로 다져진 단단해진 터 위에 부어진 주님의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1999년 12월 5일, 수원 영통에서 하객을 포함해 40명으로 예배를 드리며 시작한 지 5년, 하느님께서 우리교회에 새 가족들을 계속 보내 주셔서 이제 100명이 넘는 교우들이 함께 하느님을 예배하게 되었고 다음 주일이면 30여명의 새 가족들이 견진성사로 더욱 굳센 믿음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다음 주일에 있을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이 건물이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된다는 것입니다.
    2년의 전세 생활, 교회 공간 없이 소위 렌탈 처치로 지낸 1년 반의 세월, 그리고 이곳 세마대 콜롬바의 집으로 이전한 지 이제 1년 6개월이 지나면서 이흥준(콜롬바)교우님이 하느님께 이 건물을 봉헌하시면서 우리 제자교회의 성당이 된다는 사실, 실로 크신 하느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주일로 우리교회는 성공회 서울교구 오산 세마대 제자교회로 이곳 콜롬바성당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동수원교회 앵니스성당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용인시 도시계획이 끝나면 여러분이 정성을 모아 마련한 경희대학 옆 교회부지에 동수원교회의 역사가 계속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성전이 하느님께 봉헌되어지기까지, 하느님께서는 이흥준(콜롬바) 교우님에게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성당을 건축하고 싶다는 거룩한 마음을 품게 하셨고 그의 삶에 물질의 축복을 주셨고 그분의 기도와 노동의 수고로 이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우선 성전만 봉헌되지만, 머지않아 교육관과 사제관이 건축되면서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아름답고 규모 있는 성당으로 완성되어질 것 것입니다.

    사람들이  콜롬바교우님을 부자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부자라고 아무나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우리 성공회 교회를 향한 깊은 애정이 이런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고 믿습니다.

    이제 이 성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관리하는 일,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복음을 힘차게 전파하며 사랑이 넘치는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인 줄로 믿습니다.

    콜롬바교우님께서 이 성전을 건축하시느라고 1년 반 동안 너무나 심한 노동을 하셔서 허리 수술도 하셨는데, 콜롬바교우님과 모니카교우님께서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교회력으로 오늘은 대림수주일입니다.
    대리절이란 부활절 이전에 준비기간으로서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이 성탄절 이전 네 주간 동안 지켜지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한 마디로 ‘기다림의 절기’라는 말인데 주로 두 가지 의미의 기다림을 말합니다.
    하나는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임마누엘)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의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평생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뒷 제단에 대람환과 대림초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한마디로 승리를 상징 합니다. 인간을 죄의 죽음에서 구해주시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공동체를 의미하는 대림환의 푸른 나무 가지환은 어둠과 죽음 대신 빛과 생명이 승리 한다는 희망의 상징 입니다.
    또 네 개의 촛불은 성탄 시기의 절정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단계적으로 밝아지는 광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첫 주엔 짙은 자색에서 점점 엷어져서 밝은 흰색으로!

    두 번째의 기다림은 이 역사의 끝에 이 세상을 심판 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의미 입니다. 심판자로 오실 그분은 정의의 하느님으로 오시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간 상태에 대한 풍자극이 있었습니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희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공연되었던 연극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고도(God, 즉 하나님)를 기다리는데 고도(하나님)는 오지 않는다는 내용의 풍자극입니다. 극중의 유일한 소품은 죽은 나무입니다. 그 죽은 나무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베케트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인생은 불합리하고, 하느님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을 믿는 것과 같은 죽은 조형물 없이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을 구원하려고 메시야가 이 땅에 온다는 믿음은 우리의 모든 사상과 생각을 지배해서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런 믿음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극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속았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이 오신다는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오지 않을 때 우리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암시를 통해 베케트는 기다림의 축복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합니다.

    오늘 서신으로 읽은 벧후 3:3-12에서 성경은 말세가 되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과 절망 속에 자신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을 싫증내게 될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절망 외에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창조신앙 -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인간은 우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2. 성육신신앙 - 성탄의 믿음입니다. 본체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님이 인간과 피조세계의 구원과 회복을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믿음입니다. 그분이 구원을 이루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신 모범을 배우게 됩니다.
    3.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입니다. -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과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핵심으로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4. 임마누엘신앙입니다. - 창조주 하느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하느님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5. 종말신앙입니다. - 역사의 끝에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이 땅에 오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에 이렇게 고백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의 앉으사 저리로서 산 자와 죽 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습니까?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예언 중에 오직 하나 - 재림만 성취되지 않았는데,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강림 등 약속이 성취된 것으로 보아 이것 또한 성취되리라고 믿는 것이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마태오복음 24장 25장은 전체가 다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은 그 중의 한 단락인데,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종말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 때와 그 시기는 아버지만이 아신다.
    즉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그 때가 언제인가에는 관심을 갖지 말라.
    그런데 종말의 때에 벌어질 현상들이 있는데,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이 땅에 죄가 들어오고 인간의 삶에 죽음이 들어왔고 이 땅에 그 죄악이 가득 차게 되었죠.
    창세기 6장 11절-12절,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 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시고자 물로 심판을 내리십니다.
    노아의 홍수입니다. 홍수 이전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 시간까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다가 홍수를 만나 모두 휩쓸려가고 죽었습니다.

    하느님게서는 이미 노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물로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그것을 대비한 방주를 건조하는 120년 동안 사람들은 노아가 무엇 때문에 방주를 만드는지 알았지만, 미친 짓이라고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방주의 문을 닫혀버렸고 하느님을 거역하고 조롱하던 사람들은 심판을 면치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깨서 다시 오시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조롱한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조롱받거나 손해를 당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을 종말신앙이라고 하는데, 이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삶을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신앙의 태도를 ‘깨어있음’과 ‘준비함’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깨어있다는 것’과 ‘준비하는 것’은 서로 같은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일까요?

    벧후 3장 10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11절)
    둘째, 그 날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한다(12절)

    먼저 두 번째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 믿는 자들이 그저 주님의 날을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속히 임하도록 적극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선교입니다.

    마태 24장 14절을 봅시다.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 - 모든 민족에게, 밝히 알려지면 - 전파되면, 끝이 - 종말이 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20여년전 영국을 떠난 고요한선교사가 이 땅에 복음을 전함으로 성공회를 통한 천국복음이 전파되었고 우리가 오늘 이렇게 하느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구체적으로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도하고 후원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1만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다음 가는 선교국가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주님이 우리나라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전쟁? 경제위기? 한국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세계선교에 힘쓴다면 전쟁도 없을 것이고 경제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신자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콜롬바성인은 6세기에 영국의 북서쪽의 작은 아이오나섬에 수도원을 세우고 영국 전역에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영국을 복음화한 성인입니다.

    우리 콜롬바성당 제자교회가 천국복음을 힘차게 전파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와 물질로 세계선교에 적극 동참함으로 주님의 날이 오도록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첫 번째,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일가요?
    술 담배 안하고 사는 것? 겨우 그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3-4세기 이집트의 성인 안토니오의 예화가 생각이 납니다.
    성인 안토니오는 자기의 가산을 다 나눠 가난한 사람을 주고 굴속에 들어가 은둔생활로 고생하였습니다. 하루는 하늘에서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헌 신을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곧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 고치는 노인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은 성자가 오므로 반갑게 환영해 드렸습니다.
    안토니오는 노인에게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생활이 극난하므로 매일 신 고치는 것으로 생활비를 삼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보고 아이들에게 하느님 공경하는 법을 배워주는 것으로 과정을 삼습니다.” 하였습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이 어떤 것인지 와 닿으십니까?

    최근에 나온 CCM 중에 “나비”라는 곡이 있습니다. 노랫말을 이렇습니다.
    “한 마리 나비가 있죠. 그저 할 수 있는 건 / 날개짓 밖에 없지만
    날마다 하늘로 올라가 주님 앞에서 찬양하죠.
    온종일 날개짓해도 힘이 들지도않죠 / 날개가 오르고 내리고
    아름답게 움직일 때 주님 기뻐해 / 사랑의 빛 환하게 비추시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난 / 주님 앞에서 날수만 있다면
    찬양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 비록 날개짓밖에 할 수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개 짓으로 /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떨어져 빗방울이 떨어져 / 날개가 젖어서 날 수 없어
    위로의 주님 손을 얹어 치료하시네 / 아픔 모두 가져가시네
    찬양해요 내가 할수 있는건 / 비록 날개짓 밖엔 없지만
    가장 아름다운 날개짓으로 /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개짓으로 /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내가 새가 아니고 독수리가 아니어도 비관하지 않고 한 마리 나비로
    주님 앞에서 주님이 주신 날개로 아름답게 날개짓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비록 날개 짓 밖에 없어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개짓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
    - 이것이 예배이고 이것이 가장 거룩하고 경건한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 주어진 삶의 현실 안에서 하느님을 인정하고 그 분 앞에 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함께 이 찬양을 들으시며
    다시 오실 주님 앞에서  
    나의 삶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이 되도록 결단하며 기도합시다.

    나의 삶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의 날을 속히 오도록 힘차게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
    세계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18 청지기 6251 2003-03-07
917 청지기 7002 2003-03-17
916 청지기 7965 2003-03-24
915 청지기 5556 2003-04-09
914 청지기 6050 2003-04-09
913 청지기 6412 2003-04-15
912 청지기 6458 2003-04-21
911 청지기 6566 2003-04-28
910 청지기 5965 2003-05-06
909 청지기 4628 2003-05-20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