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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10월 3일] 에페소서 강해 9 - 4:1-6
  • 조회 수: 4912, 2004-10-04 09:08:58(2004-10-04)
  •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이 성큼 와 버렸습니다. 무더위에 힘들어하던 여름이 엊그제인데 벌써 가을이고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 오고 그렇게 한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님 만날 날이 이렇게 가까워지는 거겠죠?
    주님 만나실 준비 잘 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에페소서는 하느님의 사람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서 쓴 옥중서신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바울은 사랑하는 에페소 교우들에게 신앙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 것이죠.

    그래서 1장부터 3장까지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 - 교리적인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신령한 축복을 깨달았고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보았으며 하느님의 부르심이 무엇이며 그의 권능이 무엇이며 그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맛보았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이 우리 삶의 근원이시오 원천이며 우리를 부르시어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셨다면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날마다의 삶은 그의 부르심과 우리의 신앙고백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바울은 4장부터 6장까지는 보다 실천적인 믿음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으로 보면, 4장의 시작이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의 1절의 표현처럼,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그러므로 이제 이렇게 살아가자”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둔 바울이 에페소 교우들을 향해서 간절히 부탁하는 그 첫 번째 권면이 3절의 말씀입니다. “성령이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요.”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
    여기서 ‘여러분’은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 사람을 구원하시어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각 개인의 삶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그 소명을 알고 그 소명을 이루어가는 인생이 참으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제가 고 2 겨울방학 때 발견한 저의 부르심 - 소명에 따라 지금 살아가고 있으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기를 때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가는 것을 성공의 조건이라고 여기며 기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우리 아이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계획, 소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성취하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우리 아이가 성공하는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을 향한 부르심이 있듯이 ‘여러분’, 교회 공동체를 향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1절을 함께 읽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하느님이 교회 공동체를 새우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교회의 존재이유, 교회의 비전이라고 부릅니다. 101반 수업에서 이 내용을 다루는데, 여기 계신 교우들은 거의 다 101반을 수료하셨으니 잘 아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교회공동체를 세우신 목적, 교회의 존재이유, 비전 5가지는?
    하느님의 임재를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 예배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 봉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 전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 제자훈련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 교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하나 됨을 이루는 교제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는 공동체 생활”을 나누었는데, 삼위일체 하느님은 교회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에 아주 중요한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사역들 가운데 하나는 서로 화합하기 힘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조화롭게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노예제 사회였고 남자 중심의 사회였던 2000년 전 로마시대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그 어떤 계급적 성적 인종적 차별이 없는 완전한 평등과 하나됨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교회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

    부부조차 하나 되기 힘든 현대 사회에 도전이 되는 하느님의 신비라고 말할 수밖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어가는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 가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계획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 기도회 중에 하느님이 우리 교회공동체에 주신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제자교회가 오직 사랑만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 세상 사람들이 와서 그 사랑에 녹아지고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라.”

    오늘 성경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4-6절에 나오듯이 그리스도의 몸, 성령, 희망, 주님, 믿음, 세례, 아버지 하느님이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근거 위에서 이미 성령님은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셨고 이제 성도들의 책임은 주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지켜나갈 수 있는 신앙의 덕목을  4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첫째 겸손입니다. 헬라문화권에서 겸손이라는 것은 노예만이 행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온전히 겸손하라고 합니다. 겸손은 교만의 반대말이지요. 성경적인 의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정한 태도’입니다.

    언제 교만해집니까?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인정치 않고 ‘나도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창세기 3장의 인류최초의 범죄가 바로 이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속삭임이었죠. 천사장이었던 루시퍼의 타락도 바로 이 생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잠언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사탄에게 패망하는 이유가 성도들의 교만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 해보실까요? “교만은 분열을 낳고 겸손은 일치를 낳는다.”

    우리가 진정 겸손해지기 원한다면, “하느님의 눈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보니까 나는 피조물이고 나는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고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둘째 온유입니다. 이것은 자기주장과 거칠음의 반대입니다. 온유는 감정을 통제 하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날 농부들은 아주 사나운 야생 짐승을 잘 길들여서 그 힘을 아무 때나 폭발하도록 하지 않고 올바른 일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때, 즉 짐을 나르거나 밭을 가는 등의 일에 그 힘이 사용되어 졌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 ‘온유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온유함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힘을 쓸 때 쓰는 것을 말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을 보면,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도 승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엇습니다. 모세는 온유함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지도자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었을 때는 모세도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자기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온유한 성품이 공동체 조직을 다스리는 리더십이 됩니다.

    겸손과 온유함을 강조했는데, 이 두 가지의 덕목을 갖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1장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기초가 되는 이런 인격적인 덕목들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세 번째 덕목은 인내입니다. 이 또한 주님의 성품이지요.
    벧후 3: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인내는 고난 중에도 끝까지 참기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기도 합니다(야고보 5:10). 또한 잘못된 것에 대해서 성급하게 앙갚음하지 않는 자기 견제입니다 (갈 5:22, 골 1:11, 딤후 4:2).

    넷째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는 것, 용납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의도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부관계에서 어려운 이유 중에 아마 이 원인이 가장 클 것입니다. 상대방을 자꾸 자기에게 맞춰서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이가 좀 이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아내가 이 점만 고쳐준다면---” 이렇게 바라는대로만 변화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만 속상합니까? 나만 속상합니다. 자꾸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부부가 신혼 초에 무지하게 싸웠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치약을 쓰면 아무데나 끅 늘러 쓰는데 목사님은 끝에서부터 짜서 씁니다. 사모님이 머리를 감으면 화장실 바닥에 빠진 머리카락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걸 물로 다 쓸어내고 정리하고 나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니 마음이 불편하고 말다툼을 하게 됩니다. 결국 서로의 됨됨을 인정하고 나니까 싸우지도 않고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로마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셔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요,”

    주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러실 것입니다. 용납하심이 주님의 성품입니다. 그분을 닮기를 원합니다. 서로 용납하십시오. 용납하되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        하십시오. 우리가 서로 용납한다는 것은 좋은 것 나쁜 것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사람의 인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를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겸손, 온유, 인내, 용납, 이것은 곧 갈라디아 5장 22절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애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3장에서 성도는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갈 때만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인격이 자람으로 주님의 계획이 성취될 것이라고 , 그렇게 살기위해서는 내적인간이 굳세게 서야하고 내적 인간이 굳세게 서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 되게 만드신 교회공동체의 그 하나 됨을 지켜 나가야 하는 우리들이 다시 한번 성령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다스리심을 받아 공동체의 덕목인 겸손, 온유, 인내, 용납이라는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 우리 교회가 사랑으로 연합하고 하나 되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어 그 사랑의 힘으로 이 땅을 치유해 가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가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용납의 성품으로 살아감으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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