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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1년 6월 19일 삼위일체주일]
  • 청지기
    조회 수: 1780, 2011-06-20 10:05:00(2011-06-20)
  •   오늘은 성삼위일체주일 주일입니다. 1년에 한번 밖에 없는 교리주일입니다. 다른 주일은 주로 예수님과 관계된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지키고 승천과 하느님께서 성령 보내신 것을 기념한 뒤,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한 하느님으로 계시다는 결론과 함께 이 교리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

      325년에 초대교회의 모든 주교, 사제, 대표들이 니케아에서 모여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정리했습니다. 그것이 니케아신경이라는 것인데 그 내용이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고백에 담긴 삼위일체 교리는 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사색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교회 공의회의 결의사항에 근거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경험과 삶에 근거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이 성자 하느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령님이 제 3위의 하느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신앙으로 무장하여 복음을 전파하였고 건강한 주님의 교회를 세웠으며 모든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 신앙은 이성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 보다, 즉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기 보다는 충분히 경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알게 된 삼위의 하느님은 이미 성경에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삼위의 하느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3,  
      1절,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 성부
      2절,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 하느님의 기운 = 성령
      3절,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말씀 - 요한복음 1: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창세기 1장 28절, “우리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우리 -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을 말합니다.

      마태오 28:19,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교리는 성서가 계시하고 신앙의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창조자-하느님, 구원자-예수님, 협조자-성령님"를 신앙 고백으로 정리한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교리입니다.

      이 삼위의 하느님을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요한묵시록 5장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묵시록 5:1, “나는 또 옥좌에 앉으신 그분이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안팎에 글이 기록되어 있는 그 두루마리는 일곱인을 찍어 봉하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 옥좌에 앉으신 그분은 성부를 말합니다.
      - 성부는 모든 활동의 시작과 모든 일의 근원과 원천이 되십니다.
      
      묵시록 5:6-7, “나는 또 그 옥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가운데 어린 양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은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느님께서 온 땅에 보내신 일곱 영신이십니다. / 그 어린 양이 나와 옥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두루마리를 받아들었습니다.”
      - 여기서 어린 양은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 지혜와 경륜과 모든 일의 질서있는 시행이 성자께 있습니다.

      묵시록 5:6, “그 어린 양은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느님께서 온 땅에 보내신 일곱 영신이십니다.”  
      - 일곱 영신이 성령님이십니다.
      - 또 그 활동의 능력과 효력은 성령께 있습니다.

      에페소서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일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페 1: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 5절,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 성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시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에페 1:7,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 성자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바치심으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에페 1:13-14,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성령님은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이 나의 사건이 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은 각기 다른 위격을 지니셨지만,  창조와 구원의 사역 가운데 언제나 하나되어 함께 일하셨습니다. 이것을 ‘상호내주’와 ‘상호참여’라고 표현합니다. ‘상호내주’란 서로가 서로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상호참여’란 함께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 14: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 - 복음 전파, 교육, 치유와 회복 등이 예수님이 하신 것이지만, 동시에 예수님 안에 내주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가 함께 행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호내주’하고 ‘상호참여’하시는 삼위 하느님은 ‘상호예찬’하고 계심을 봅니다. ‘상호예찬’이란 서로를 높이고자 서로가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오직 성자 예수님만을 증거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오직 성부 하느님께만 영광을 돌리십니다. 성부 하느님은 성자와 성령을 사랑하십니다.

      이렇듯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이 서로 다른 존재로 영원히 구별되지만, ‘상호내주’하면서 서로 분리 되지 않고 ‘상호 참여’하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가면서 서로 다른 위격들을 높여주며, ‘상호예찬’하며 완전한 하나를 이룹니다.

      상호내주, 상호참여, 상호예찬을 통한 하나됨! 이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삼위일체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지니신 품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품성이란 ‘다름’을 존중하는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다르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예찬하듯이 참된 기독교인은 서로 다른 신앙의 활동들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를 높여줍니다.

      우리 교회만 보더라도 신앙의 색깔과 활동들이 다른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활동과 은사를 강조하는 신앙 활동과 함께 이 땅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공의와 평화를 강조하는 신앙의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성공회의 예전을 존중하는 전통주의의 모습과 함께 아주 현대적인 찬양으로 보다 자유롭게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 공존합니다.
      
      이렇게 다른 신앙의 모습들이 갔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가 힘을 합쳐 영혼을 구원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건강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하나됩니다.

      이렇게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을 높이는 섬김의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서로 다름의 인정과 존중, 다양성 속에서 하나 되고자 하는 겸손과 섬김, 이것이 진정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신앙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삼위일체 영성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하느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영성을 지닌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만약 나의 삶에 아직 이런 삼위일체신앙의 영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내 믿음이 살아있는 신앙이 아닌 교리적이고 지식적인 믿음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가 함께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나를 하느님의 자녀삼아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난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나를 통해 삼위일체 신앙의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다름을 존중하는 가운데 일치를 구하고자 겸손히 섬겨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내가 그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 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한 17:26,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살아가십시오.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고백한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갈라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영성으로 공동체를 세우고 이 땅을 하나되게 하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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