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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순 5주일 - 요한 11장 / 주님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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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

     

    1. 인생을 살다보면 외롭고 쓸쓸할 때가 있다. 언제라도 자기의 속 얘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나눌 친구가 그립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친구가 있는가? 교회는 나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떠나 주님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2.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도 친구가 필요했다. 그 마음 깊이 있는 고민과 아픔을 나눌 친구! 예수님은 당시 종교권력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갈등 관계로 지냈다. 제자들과도 우정을 나누는 친구이고 싶었지만. 제자들은 미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실수를 자주 범했다.

     

     

    3.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친구를 바라신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 교회의 표어가 “예수님과 친구되는 교회”였다. 요한 15:15,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시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친구로 바라보신다. 자신의 마음을 나누기를 원하신다. 인생 여정을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주님을 만나 여러분의 마음을 나누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우정을 깊게 하기를...

     

    4. 다음 주일 4월 13일은 고난주일이고 월요일부터 성주간이 시작된다. 주보 광고 참고 / 성주간만은 우리를 벗으로 부르신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 드리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제자들의 몰이해와 배신으로 외롭게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주님의 친구가 되어 동행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5. 게쎄마니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단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고 말씀하셨다. 성주간 동안 매일 저녁 성당에서 진행되는 성주간 전례에 참여해 매일 한 시간 주님과 함께 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6. 오늘 복음에 예수님의 친구가 등장한다. 나자로. 나자로는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예수님이 사랑하는 이”라고 소개된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여행을 시작하시면서 머리 둘 곳도 없이 떠도는 순례자셨다. 아마도 나자로의 집은 이런 예수님이 언제든지 찾아가 편하게 쉬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친구의 집이었던 것 같다.

     

    7.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 나자로의 가정에 불행이 찾아왔다. 나자로가 병에 걸린 것이다. 부인의 이름이 안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은 젊은 나이인가 본데....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데... 죽을 병에 걸린 것이다. 이에 다급해진 마르다와 마리아는 절친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다. 3절,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8. 이 정도만 알려주어도 나자로의 절친 예수님이 달려오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치유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만 오시면 오빠의 병은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도 나자로를 찾아가지 않으신다. 절친이 병에 걸려 있다면 얼굴이라고 보고 싶어 가는 것이 우정인데... 더군다나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라면 당장 가서 나자로를 살리는 것이 우정일 텐데.... 밍기적 거리기만 하시고 가시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나자로의 장례가 다 끝나고 무덤에 묻힌 후에나 가신다. 죽은지 나흘이 지나....

     

    9. 우리가 성경에 나온 결과를 보고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이 지체하고 계시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항상 하느님의 뜻 가운데 사셨다. 예수님이 마르다 마리아의 다급한 전갈을 받고도 나흘이나 지나서 베다니아로 가게 된 것에는 하느님의 뜻 때문이다. 이미 죽어서 장사까지 마친 나자로를 다시 살리시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42절, “이제 너는 여기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 여러분이 따라야 하는 예수님의 모범이기를!

     

    10.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주일 복음을 기억하는가? 예수님의 치유로 보게 된 날 때부터 눈멀었던 소경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영적인 지식이 자라났다. “예수라는 사람”, “예수, 그는 예언자요.” “주님, 믿습니다.” 마침내 예수님 앞에 엎드리며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

     

    11. 오늘 요한복음 11장에서는 죽은 나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한다. 25-26절, “25.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26.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12.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때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영원히 죽지 않는 구원의 은총을 받는 것이다. 오늘 성경은 여러분에게도 묻는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의 죽은 영혼을 살리고 영원히 죽지 않는 구원을 주시는 생명의 주인으로 믿는가?”

     

    13. 당장 와서 고쳐주실 줄 알았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오빠가 죽어 장례를 마치기까지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오빠가 죽은지 나흘이 지나서 베다니아로 오신 예수님에게 마르다가 이런 말을 한다. 21절,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32절을 보면, 예수님을 마주한 마리아도 똑 같은 말을 한다.

     

    14.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런 말이 가시 돋친 원망은 아니다. 그러나 실망과 아쉬움은 동반한 원망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마음이 뿌리채 흔들리지는 않았으나 역시 인간적인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기에 가졌던 원망이다. 마르다, 마리아가 성미 고약한 자매였다면 성경에 기록된 이 정도의 원망으로 그치지 않고 입술 삐죽이며 냉소했을지 모른다. 아니 저주까지 했을지 모른다. "우리 가족의 생계를 떠 맡고 있는 기둥같은 우리 오빠가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왜 일찍 죽어야 합니까? 왜 우리가 기별했는데도 늦게 오셨습니까?"라고 불평했을지 모른다. 누구든지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이 돼 보면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15. 이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겪게 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많은 신자들이 다급한 순간에 주님을 부른다. 호소한다. 그런데 주님은 응답이 없다. 주님께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그것이 하느님께 외면당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6. 마르다 마리아가 고통스럽게 보낸 나흘 그 시간은 예수님도 고통스럽게 보낸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야만 주님이 일하실 수 있다.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흘이 지나야만 죽은 나자로를 살려내시는 부활과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낼 수 있다.

     

    17. 하여 우리는 지금 당장 나의 호소와 간구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주님을 불신할 수 없다. 우리는 기다려야만 한다. 그 시간에 주님도 역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때가 되면 그 분이 일하시고 기다리는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주님을 알게 된다. 그분을 바로 아는 믿음으로 세워진다.

     

    18.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인 베드로가 생각났다. 루가복음 5장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이 나온다. 그 때 베드로는 밤새 조업을 했어도 생선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평소와는 달리 지난 밤은 실패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실패가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우리 인생 가운데 내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실패하는 순간들은 주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기 위한 은혜의 전조이기도 하다.

     

    19.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낙심하지 않을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도 결코 주님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된다. 그 절망의 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는 환경과 처지를 바라보지 않고 완전하신 하느님의 뜻 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구원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사순절은 바로 우리가 절망이라고 여기는 그 순간에 오시어 다시 살리시는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더 견고히 하는 시간이다.

     

    20. 말씀 두 구절을 읽어드리고 설교를 마친다.

     

    로마 8: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로마 8: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찬양 - 주님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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