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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4년 부활주일
  • 마태 28:1-10


     

    부활 신앙이란?

     

     

    1. 오늘 부활절 예배는 기쁨과 축제의 잔치로 지내기에는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마냥 기뻐하기에는 어려운 참담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 이렇게 무고한 죽음의 아픔 앞에서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죽은 영혼들을 주님께 의탁드리며 부활의 주님이 유가족들에게 함께 하시어 고통과 절망 중에서도 힘을 얻고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기독교는 하느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죽었다는 것과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이유도 없고 지난 2000년 동안 이렇게 확장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성금요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생각됐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일요일 새벽, 여인들이 예수님에게 향유를 발라드리려고 가보니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던 예수의 무덤 문이 열려 있었고 무덤 안은 비어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마치 나비가 빠져나가 남겨진 꼬치의 허물처럼, 예수님의 옷을 그 자리에 남겨져 있고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잘 게켜져 있었다고 합니다.

     

     

    4.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듯이 예수님이 체포당하고 십자가에 죽었을 때는 다 도망가 버렸던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이 보내주신 부활의 성령을 받으니 거리에 나가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느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구원자 -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외쳤습니다.

     

    5. 이 외침에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은 마치 불이 온 들을 태우듯이 삽시간에 예루살렘과 유다를 지나고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지금도 모든 열방을 향해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6. 부활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절망과 어둠의 역사 한 가운데 들어오셔서 죽은 예수를 살리심으로 새로운 창조를 행하신 일입니다. 하느님의 초월적인 개입으로 인류안에는 죽음과 절망을 넘어서는 생명과 희망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7. 어제 밤 가진 부활밤 예식이 바로 이 부활의 의미를 담아내는 예배입니다. 죽음의 밤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새 불 축복과 부활초 축복,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노래하는 부활찬송, 구원사를 담고 있는 예언의 말씀 묵상, 빛의 자녀로 삶을 가다듬는 세례언약갱신, 그리고 성찬의 전례 등.

     

    8. 지난 성목요일부터 진행된 성삼일 전례는 우리 성공회 신자라면 그 어떤 일정 보다 우선하여 참여할 만큼 중요한 예배들입니다. 내년에는 교우 여러분 모두 참석하시어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9. 오늘은 복음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예수 부활의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에게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7절과 10절입니다.

    7(천사의 고지) :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알려라. 나는 이 말을 전하러 왔다.

    10절(예수님 자신의 고지) :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0.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곳이 갈릴리라고 합니다. 갈릴리란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곳으로, 그들의 가정이 있고 일터가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말합니다. 기쁨과 슬픔이 점철되는 쉽지 않은 인생의 여정을 말합니다. 갈릴리에서 만나게 되는 부활의 예수, 이 말씀에 우리 기독교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알아봐야 합니다.

     

    11.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실 때, 수태고지한 가브리엘 천사장은 마리아에게 잉태하게 되는 아기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의 예수라는 이름하고 또 다른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뜻이 무엇이지요?

    마태 1:23,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70인 역 이사야 7:14>

     

    12. 태초에 하느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곳은 에덴 동산이었습니다. 사랑을 나누고자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어내시고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던 에덴.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인해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죄는 하느님과 사람을 분리합니다. 사랑으로 함께 하던 관계가 끊어지는 단절됩니다. 이를 영적인 죽음이라고 합니다.

     

    13. 하느님과 함께 거하도록 지음받은 사람이 그 관계가 단절됨으로 인해 오직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는 마음은 공허하고 메마르고 목마르고... 하여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보려고 애쓰며 평생 방황다가 죽어가지요. 얼마나 비참한 인생들인지.....

     

    14. 이러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세월호가 침몰함으로 자녀들과 관계가 단절되어버린 부모님들의 마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둡고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숨이 먹어가며 죽어간 자녀들을 생각할 때 부모의 마음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애통함... 비통....

     

    15. 하느님을 떠나 하느님 없이 세상 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목마름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계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마음이 이럴 것입니다. 이 마음을 드러내신 것이 허다한 군중을 보실 때 예수님이 지니셨던 마음으로 표현됩니다. 긍휼히 여기사,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16. 하느님은 아무런 담도 장애물도 없이 창조의 때처럼 함께 거하며 사랑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여 하느님은 자신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죄를 거두어 내시기를 작정하셨니다.이 일을 이루시고자 하느님은 자신이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죄의 값을 값으시고자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치셨습니다. 이것이 성금요일의 일입니다.

     

    17.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영원히 죽음의 권세가 이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단절이 회복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이름이 가짜로 판명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죽인 사탄의 궤계입니다.

     

    18. 하지만 신실하신 하느님은 임마누엘이라는 예수님의 이름대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자 성금요일에 죽으신 예수를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알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게 되는 영생을 구원의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의 신앙은 언제나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19. 그런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임마누엘 이름이 지닌 뜻은 원래 하느님의 이름의 뜻입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를 찾아오시어 이스라엘을 이집토로부터 해방시키라는 사명을 주시는 하느님과 대화할 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모세에게 자신을 알려주십니다.

     

    20. 출애굽 3:14, “나는 곧 나다.” 개역성경에는 “나는 스스로 있는 나이다.” 영어성경이 이 이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I am who I am.", 시제가 모두 현재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모세의 삶 속에 현재형으로 임해 계시는 분임을 모세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의미와 같습니다.

     

    21. 부활이란 원래 하느님의 이름 - “I am who I am."이라는 이름 그대로, 예수님의 이름 임마누엘의 뜻대로 하느님은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심을 확증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22.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지금 현재,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간 부활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미지의 세계인 약속의 땅을 향해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무모한 사명에 순종하며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들의 삶 속에 현재형으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3. 다윗만큼 파랑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앞길을 가로막아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면서 하느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자신을 현재형으로 안위해 주심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24.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3: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하느님이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5.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하시는 이유가 바로 제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그 고단한 인생의 여정을 살아가는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분의 갈릴리인 인생의 여정 가운일상의 삶 가운데 현재형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는 변함없이 현재형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26.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릴리에서 주님을 만나며 그분을 힘입어 험난한 인생 여정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부활의 신앙이 잘 표현된 찬양이 있습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함께 부르며 부활의 믿음을 고백합시다.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편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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