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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목회세미나, 특강 3 최철호 목사 '마을 공동체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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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목회세미나, 특강 3 최철호 목사 '마을 공동체 목회'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도-농 공동체의 연대  


    입력 : 2012년 02월 19일 (일) 22:38:13 / 최종편집 : 2012년 02월 20일 (월) 01:40:02 [조회수 : 141] 방현섭racer69@naver.com  


        



    예수목회세미나에서 마을공동체에 관해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것 중에 하나는 혼자 조용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동체 관계를 잘해나간다는 것입니다. 겉사귐을 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동체 생활을 어려워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과 홀로 조용히 사는 삶은 공동체의 중요한 두 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소개할 때 종종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영성기도 프로그램과 관상기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영성수련의 형태는 많이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도 다양합니다. 저는 영성수련에 관한 개념을 정리하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영성 수련이라는 것은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영성수련을 이야기 하면 일상생활과의 괴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합니다. 공동체 영성 수련의 중심은 학습보다는 같이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을에서 출퇴근하면서 버스에서 서로 만나 눈빛을 마주치는 것, 같이 모여 저녁을 먹은 것에서 영성 수련이 나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학생도 있고, 목회 안수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정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50대 후반의 집사님들도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나온 책들을 꾸준히 봅니다. 자기를 수련하는 것은 상품화 되면 안 됩니다. 수련을 지속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맨 날 똑같은 이야기가 나온 책을 읽는 것보다 근원적인 자기 현재의 지점을 돌아보는 책들이 유입합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를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관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자본의 질서가 확대 재생산되는 시대 상황을 신앙공동체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대체시키는가 하는 것이 관심입니다. 자본은 우리에게 불안을 조작하고, 욕망을 조장합니다. 사람들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욕망을 자극합니다. 자본이 무한 증식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불안과 욕망, 이 두 가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욕망을 부정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도록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관계와 관심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욕망을 만들 수 있는 다른 관계가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은 두 가지 전략을 보여줍니다. 성령을 받는 것과 교회를 약속받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공동체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사건을 통해 생성된 공동체입니다. 혼자서는 세상에 가치 질서는 막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무풍지대가 없습니다. 자본의 지배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안적 양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이 부분을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욕망을 구성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의 우상이 작동하는 근본적인 방식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동체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입니다.

    공동체는 서로를 상품으로 대하지 않는 삶의 방식입니다. 같은 사람인데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달라집니다. 사건의 축적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존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결단과 가정 단위로 자본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관계망의 지점은 마을입니다. 마을은 결혼, 임신, 육아, 출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관계로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공동체 관계를 유지시키기 어렵습니다. 공동체를 수단으로 전락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세권에 집이 비싸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집이 출퇴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마을이라는 것을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은 굉장히 힘듭니다. 수유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에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는 동네인데, 어떻게 계속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이들을 살리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 오히려 마을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고민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니까 전세 값이 올라간다는 것이다.(웃음)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문제는 자본과 생체 권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료 부분에 대해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 권력에 계속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식의주 생활양식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문명은 먹거리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있습니다. 함께 살면 이러한 문제에 조금 덜 긴장을 해도 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먹거리 문화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본과 싸워 볼 수 있습니다.

    보수는 기만에 빠질 위험이 덜합니다. 하지만 진보는 기만에 빠질 위험이 더 큽니다. 보수는 현재의 가치와 삶의 양식을 지키는 것이기에 말과 행동의 괴리가 적지만, 진보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하기 때문에, 이 말에 삶을 맞추고 검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검증해 줄 수 있는 방식이 없으면 진보의 기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가 가치를 함께 가져가면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식의주는 체제는 병주고 약주고 병주는 체제입니다. 죽임의 순환입니다. 사람들은 의료 자본과 생체 권력에 당하고 있습니다. 생명 상호 간의 치유력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자생력도 필요합니다. 청년 뿐 아니라 다음세대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서울 수유리와 홍천 서석에 각각 살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밥을 같이 먹습니다. 이것이 일상적인 영성 수련이 됩니다. 육아 교육도 같이 합니다. 비혼 청년들이 같이 사는 방이 따로 있습니다. 공동체에 살다가 결혼해서 공동체 안에 따로 살림을 차린 부부들이 가끔 싸우거나 서로 마음이 상했을 때, 자신이 예전에 같이 살았던 청년들의 방을 찾곤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마을 안에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 있는 것입니다.

    마을은 아이를 데리고 밤에 마실 나갈 수 있는 정도의 구역을 가리킵니다. 행정구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행정구역으로 마을을 보는 것은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이 축소 된 것일 뿐입니다. 밤에 마실 나갈 수 있는 공간은 넓지 않습니다. 출퇴근길에 어떻게든지 만나게 돼 있습니다. 마을은 서로 복원의 가치를 가지고, 함께 이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연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을 안에 수도원이 있습니다. 영성의 중심은 생활 영성이어야 합니다. 프로그램이 세련됐다고 하더라도 생활 영성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을 공동체의 예배 기초 공동체는 7-8명이다. 전체 예배는 한 달에 한 번 합니다. 기초공동체는 독립된 공동체입니다. 아름다운마을 교회는 기초공동체의 연합 교회입니다. 기초생활공동체는 동산과 부동산 등 재산을 모두 공유합니다. 기초 생계비를 똑같이 나눕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활비는 필요한 대로 함께 씁니다.

    아름다운 마을 교육공동체는 두 군데로 나눠져 있습니다. 초등초과정은 서울에서, 초등고학년 과정은 홍천에서 합니다. 소통의 토대를 마을 공동체로 합니다.

    아름다운마을 사역공동체 중에는 생명평화연대도 있습니다.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를 시민사회와 소통하게 실천해야 운동을 서로 연대하기 위해 세운 시민단체입니다. 우리 생명평화연대는 FTA반대를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생활영성수련원도 있습니다. 공동체가 생성하는 새로운 삶을 동서양 고전을 통해 성찰하고 공부하는 ‘마을 서원’과 생활피정을 하고 침묵과 기도를 하는 ‘마을 수도원’이 있습니다. 생태건축 팀도 있습니다. 지금은 주로 홍천에서 지내면서 생태건축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농도상생공동체입니다. 도시에서도 농(農)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개인은 무력합니다. 공동체가 도시와 농촌을 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농생활에서는 건달이 필요합니다. 마을의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그냥 노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건달을 잉여자원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원주민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우리 마을 공동체는 좋은 분들을 만나서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과의 관계는 부모 자식과의 관계처럼 돼야 합니다. 품질이 관계의 기본이 되면 안 됩니다. 특히 도시 소비자를 중심으로 관계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진보적인 곳과 연대를 하는 생산자들도 여전히 갑을 관계에 있습니다. 꾸러미를 하는 곳 말고는 대부분 그런 듯합니다.

    농사는 완전히 석유가 투입되지 않도록 합니다. 혼자하면 불가능하지만, 집단이 하니까 됩니다. 우리 마을 공동체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자본이 우리를 움직이는 방식인 불안의 조작과 욕망의 조장이 없습니다.

    한 개체가 가시적 연속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은 플라톤의 방식입니다. 가시적 연속성이 아닌 관계의 생명을 통한 계승이 운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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