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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목회세미나, 특강 1 한성수 목사 '작은 교회의 꿈과 좌절'
  • 미국에서의 목회 이야기와 순천 하늘씨앗교회 이야기


    우연히 예수의 얼굴을 닮은 교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예수의 얼굴을 닮는 교회에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치면서 공감 했습니다.

    미국에서 911사태가 일어났을 때, 저는 메디슨 백인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근 대학에서 교목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4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교회 학교 학생이 15명에서 5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20대 청년들은 20명가량 늘었습니다. 보통 백인교회에는 교인이 잘 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를 연구과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웃음)

    교회학교 학생 수가 늘어난 이유는 교장을 바꿨던 것에 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들어온 계기는 결혼 주례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식을 하면 주로 목사에게 주례를 청탁합니다. 결혼 전에는 결혼 상담을 합니다. 대게 6번 정도 하는데 저는 3번만 했습니다. 주례를 하면 약 200달러 정도 사례비를 받습니다. 저는 주례를 부탁하러 오는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만약 우리교회 교인이 되면 무료로 주례와 상담을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사례비를 아끼기 위해 교회에 옵니다.(웃음)

    제 아내도 목사입니다. 그녀는 여성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동성애자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역 감리교 모임에서 매년 동생애자 문제에 관한 투표를 합니다. 저는 항상 동성애를 반대했습니다. 제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사람의 기관이 제 각각 역할이 있듯이 사람도 역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대부분의 신학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유독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습니다.

    동성애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기 위해 관련 서적을 엄청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해답을 얻었습니다. 소위 도를 깨우친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동성애자들을 지지하게 됐습니다. 그리곤 어느 주일에 동성애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교인 한 분이 저에게 오더니 이제 떠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교회를 떠나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교회에 자원해서 갔습니다. 70명의 교인들 중 20명 정도가 동성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화려한 운동가들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2년 정도 목회를 했습니다. 가장 신나는 목회를 한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왜 동성애가 생기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왜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 교회에서도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설교는 일 년에 딱 한 번만 했습니다. 그때 성경을 보는 관점이 변했습니다. 저는 고민이 많아서 폭력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소화하기 어려웠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 까지는 지성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제 이성의 한도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거꾸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구절이 나오면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을 핑계로 엉터리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는 금관과 돌덩어리가 다 섞여 있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저에게 달린 일입니다. 저는 성경 해석의 자유가 제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믿습니다.

    저는 주로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미국인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하고, 한인교회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해서, 반전 대모에 참석했습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감리교 감독들은 반대했습니다. 부시는 감리교인인데, 감리교 감독들의 의견도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전쟁 끝날 때 미군은 약 300명가량 죽었습니다. 반면 이라크 사람들은 20만 명 정도 죽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미제화 된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들의 비유를 건들이지 않으면 목회하기 참 쉽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가치관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인종적 편견까지 들이대면서 분노합니다. 이렇게 목회하려고 신학을 했었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대안의 길을 가겠다는 한 교회의 청빙에 응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첫째로 한 일은 집사, 권사, 장로와 같은 직분을 없앤 것입니다. 교회 구조를 개편했습니다. 목사는 교회의 중심에 있지 않고 변두리에 있도록 했습니다. 꼭 필요할 때만 가운데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목회하기 편했습니다. 저는 주로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없애고, 정기심방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교회가 잘 됐습니다. 하지만 강남향린교회의 이야기를 담은 ‘예수의 얼굴을 닮은 교회’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참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의 영성을 넘어서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작은 교회가 희망이라는데, 솔직히 저는 작은 교회 싫습니다.(웃음) 작은 교회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교인 하나 때문에 소심해집니다. 분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를 정도로 힘듭니다.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물론 대형화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대안은 향린교회처럼 교회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는 순천의 인구가 27만입니다. 그럼 200~300명 정도 교인이 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광양이나 여수로 분가하고 싶습니다.

    작은 교회가 희망이라는 말이 맞지만, 성장하지 않는 작은 교회는 절망입니다. 저는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목을 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교회 활성화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교회가 정말 건강해 질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작은 교회는 커져야 합니다. 대신 300명 되면 100명씩 분립해야 합니다. 우리 서로 다짐합시다. 반드시 분가하도록 합시다. 교회 대형화의 길을 막고, 작은 교회에 희망을 가집시다.


    ‘순도 100%’ 교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항의 미꾸라지처럼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킨다는 생각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꾸준히 해야 하겠지만, 사람의 온기가 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먹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작은 교회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선교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예수님도 교육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하셨습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체제와 제도도 제대로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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