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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천덕, 현재인 부부의 삶과 토지정의 - 현재인 자매님을 추모하며 (이신근 / 희년함께 간사)


  •   2012년 4월6일 예수님의 죽음을 알리는 성금요일에 또 한명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습니다. 6일 오전에 예수원 원장님이셨던 현재인 자매님의 소천소식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작년부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셨는데, 결국 올해 봄에 부군 되시는 故대천덕 신부님 곁으로 가신 것입니다.


    - 좁은 길로 가다

      부부의 삶을 한단어로 표현하자면 ‘좁은 길’이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법, 다른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길,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매우 중요한 길을 흐트러짐 없이 오랜 시간 꾸준히 가셨습니다. 그 외롭고 좁은 길이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는 그 길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혀 외롭지 마지막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넓은 예배당에 앉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였습니다. 할머니 소천을 계기로 부부의 삶과 가치관을 잠시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퀸즈대학에서 메이퀸에 뽑힐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미대를 졸업하고 전시회를 수차례 열 정도로 미술 실력이 뛰어났던 현재인 자매님이 선택한 남자는 모험심 많고, 가난한 나라의 선교를 꿈꾸는 아처 토레이(대천덕)형제였습니다. 아처형제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고백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떤 길로 인도할지 알았을 겁니다.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가난과 고통의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한 남자의 열정과 모험에 동참하기로 합니다. 현재인 자매님이 선택한 첫 번째 좁은 길이었습니다.

      
      1957년 대천덕신부님에게 한국에서 전쟁으로 무너진 미가엘 성공회 신학원(현 성공회 대학교)을 재건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한국 땅에 기꺼이 살기로 하고, 그 해부터 부부는 한국인 선교사로 헌신하기 시작합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그 당시에 너무나도 생소한 지식과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매우 낯설었던 내적치유, 성령세례, 성경적 토지법 등을 가르치기도 하고, 수업 중 반나절은 지렁이를 통해 유기농으로 직접 농사짓는 것까지 시켰으니 시대를 매우 앞선 방식과 지식에 학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1965년 대천덕, 현재인 부부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노동과 기도의 삶을 살며, 기도의 실제적인 능력을 시험해 보는 실험실을 만들기 위해 오지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성미가엘 신학원 학생들, 그리고 항동교회 신자들과 건축노동자로서 함께 일하던 형제자매들의 도움으로 1965년 예수원이 설립되었습니다. 가난한 한국 땅에서 그나마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끈을 놓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오지에 한국 땅을 위한 중보기도의 집을 만든 것입니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경제적 타당성도 맞지 않는, 일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한 겁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할 수 있다면 언제나 더 좁고 더 험한 길을 찾아 들어갑니다.

      당시 군용천막으로 시작한 부부의 모험이 오래 갈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점점 알려지고, ‘TV특종! 놀라운 세상’에나 나올법한 부부의 기이한 행동에 진정성이 함께 전달되기 시작합니다. 하루 세 번 예배와, 노동의 일과를 묵묵히 거르지 않고 꾸준히 실천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일 텐데, 예수원은 한 번도 외부에 공개적인 모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루하루 공급해 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가난한 삶의 방식은 48년 지난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야 전기가 들어올 만큼 시설기반이 열약했습니다. 게다가 선교사로서 가난한 마을사람보다 잘 먹을 수 없다며, 일부러 점심시간은 야채 없는 국수를 먹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종종 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건강의 위기도 있었지만, 따로 챙겨 드시는 것 없이 공동식사에는 꼭 참석했습니다. 기도와 지식과 삶을 일치시키려 평생을 그렇게 노력하셨고 그 진정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었습니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토지정의를 말하다

      예수원을 오르다 보면 중간에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레25:23)’는 문구가 있는 큰 비석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씀을 예수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삶이 고단해 쉼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에게 설립자가 처음 건네는 첫 인사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입니다.

      대천덕신부님이 강조하는 토지정의의 근간은 구약 이스라엘의 ‘희년’이라는 제도입니다. 토지양극화가 곧 빈부의 양극화가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은, 50년 마다 가나안에서 토지를 처음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받은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명령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사역을 선포하는 자리에서도(눅4:18),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기 위한 노력(행4:34)에도 볼 수 있듯이 희년정신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농경시대와 다른 오늘날 같은 산업시대에 희년정신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제시한 학자가 19세기에 활동한 ‘헨리조지’입니다. 대신부님은 토지가치에 세금을 매겨 거두고, 그 세금을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으로 성경적인 토지분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대천덕신부님은 헨리조지를 매우 열정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린 조지스트였습니다.

      대천덕신부님에게 헨리조지를 소개한건 다름 아닌 현재인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만한 성경적 경제법에 목말라 있던 대신부님에게 헨리조지는 매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이때부터 생이 다하는 날까지 희년과 토지정의라는 주제를 마음의 중심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예수원에 오시는 손님들에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토지정의를 말씀하셨고,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강조했습니다. 부부와 자녀만 모인 가족모임에서까지 토지얘기를 하실 정도라고 하니 토지정의에 열정이 매우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한국은 1950년 토지개혁에 나름 성공하여 그 영향으로 경제성장이라는 효과도 봤습니다. 하지만 토지에 세금이 없으면 시간이 지나 또다시 토지 불균형 상태는 심화될 것이고, 나중에는 그리고 그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될 것이라고 대신부님은 60년대부터 강조하셨습니다. 매번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에 직접 편지를 써서 전달했습니다. 80년대 말 전세대란 이전에 헨리조지 방식의 토지정의를 시행했더라면, 혹은 IMF때 토지가격이 내려갔을 때 기회를 삼아 시행했더라면, 혹은 2004년 집값이 폭등하기 전에 시행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끔찍한 빈부격차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토지소유 불균형으로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고, 가난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과도한 부동산 대출로 많은 사람이 노예 아닌 노예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대천덕 현재인 부부는 60~70년대부터 아무도 말하지 않은 토지정의를 말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토지문제로 인해 한국경제가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줄기차게 경고했고, 현재 토지양극화는 한국을 가장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래전 선지자적인 발언은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 희년, 부부가 한국교회에 남긴 마지막 유산

      1984년 대천덕 신부님의 권유로 한국헨리조지협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996년에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으로 바뀌고, 2010년 희년함께로 다시 바뀌어 단체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002년 대천덕 신부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현재인 자매님은 희년함께 활동에 지속인 관심과 기도로 지원해 주셨고, 큰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주셨습니다. 예수원에 갈 때면 희년함께 간사를 맡은 저를 그토록 반갑게 맞아주셨고, 희년함께 소식을 전해줄 때면 항상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반복해서 화답해 주셨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누구의 격려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현재인 자매님에게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습니다. 예수원에 나란히 놓인 고인의 비석 앞에 희년 활동가들이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부의 삶 전체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고마움 그 자체였습니다.

      우연인지 2012년 성 금요일에 현재인 자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뇌종양으로 투병하시면서 자신의 삶과 기억을 하나씩 잃어 가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 하나님의 사랑 하나 남기고 돌아가셨을 거라 봅니다. 이젠 대천덕 현재인 부부의 꿈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토지정의를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바래왔던 꿈을 우리가 대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부부의 삶은 그렇게 그 꿈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통해 부활하리라 봅니다.

      대천덕 현재인 부부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어도,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방법이어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도 기꺼이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외롭게만 보이는 그 길은 진보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부부의 삶을 존경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부를 존경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분들이 가장 강조했던 토지정의에는 관심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토지불균형으로 인한 양극화는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좋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가신 부부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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