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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10월 7일] 마르코 10:2-16 이혼불가? 혼배불가!
  • 청지기
    조회 수: 2416, 2012-10-10 13:29:06(2012-10-10)
  • 1. 어느덧 10월의 첫주일입니다. 명절 잘 보내셨나요? 지난 주일 명절로 못뵈었더니 보름만에 뵙게 되네요. 교우 여러분 보고 싶었습니다.

    2. 명절 지나면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명절 때문에 더 힘들어진 가정은 없으시죠? 페이스북 친구인 신부님이 올린 글을 보니까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는데, 사모님과 이틀 동안 냉전 중이라고 합니다.

    3. 성경을 보면, 오늘 복음의 제목이 “결혼과 이혼”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2004년 통계를 보니 11쌍 중에 1쌍이 이혼합니다. 10명 중 한명이 이혼하는 거죠. 이렇게 이혼율도 높고 황혼이혼까지 늘어나는 오늘날 주님께서 진정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나눠보고자 합니다.

    4. 교회는 오늘 복음 말씀을 근거로 해서 “이혼불가”라는 교회법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혼을 하게 되면 교회 안에서 그 상처와 아픔을 위로받고 치유받기 보다는 정죄 받고 움츠려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5. 덕스럽지는 않지만, 제 집안 얘기를 좀 들려들겠습니다. 추석 전에 저의 막내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막내 작은 아버지의 별세 소식이 네이버 검색 1위까지도 올라갔었습니다. 송해와 함께 수십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지켜온 일명 땡아저씨, 악단장이셨거든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셔서 노래자랑 예심을 주관하고 본선에 올라가는 사람들 편곡도 다 도맡아 하시는 등 70세를 넘으셔서도 현역으로 활동하셨던 분입니다.

    6. 작은 아버님은 본인이 하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평생을 사셨던 성공한 인생이셨습니다. 하지만, 한쪽에는 인생의 아픔들도 있습니다. 작은 아버님은 남매를 두셨습니다. 제 사촌동생들이지요. 둘 다 이혼을 했습니다. 제 사촌남동생은 재혼까지도 실패하고 세 번째 결혼했습니다.  둘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이는 따로 키우고 세 번째 부인과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7. 이혼하는 데는 다 합당한 사유가 있습니다. 이혼하고 싶은 사람이 어느있겠습니까? 사촌 여동생은 연애 결혼을 했는데 부부싸움을 하면 남편이 폭력을 사용하는 거에요. 참다 참다 이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뭐 그리 좋지 않은 제 가족의 이야기를 말씀드린 이유는 이혼에는 불가피한 사정도 있고 또 오늘날 이혼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는 겁니다.

    8. 오늘 복음을 찬찬히 읽어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던진 최초의 질문이 이혼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의 의도가 “이혼이 신앙적으로 죄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질문합니까?
      마르코 10:2, 그 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 예수님을 떠보려고 던진 질문이라고 합니다.

    9. 이 질문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당대 통치자인 헤롯이 이복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이혼과 재혼을 질책했고 이로 인해 투옥되고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에게 이혼과 재혼이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죠. 이 주제로 예수에 대한 헤롯의 분노를 자극하고 헤롯이 예수를 죽이게 하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10. 사람이 참 교활하고 사악하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하찮게 여깁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을 봐도 그렇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여자를 버릴 수 있는 물건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는 여자를 그렇게 취급해서 남자 마음대로 였습니다. 보면 남자가 문제입니다. 남자만 바뀌면 됩니다. 아멘?

    11. 이에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 내용에 관한 아리송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바리사이 사람들의 음모를 무력화 시키십니다.
      마르코 10:3, 예수께서는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12.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르코 10:4,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이들이 인용한 말씀은 신명기 24장 1절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누가 아내를 맞아 부부가 되었다가 그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 남편의 눈 밖에 나면 이혼 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지만,”

    13.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인용한 신명기 말씀은 이혼이 허락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이혼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에 필요한 절차를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소유물처럼 여겨 함부로 소박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이혼장을 써주어 새 출발의 기회를 주도록 한 일종의 여성보호장치입니다.

    14. 이를 보면, 이혼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하느님도 인정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란 없습니다. 사실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다 자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하는 일을 가로막지 않으십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원자탄으로 수많은 생명을 한꺼번에 죽여도 그냥 두시고 여객기를 몰아 빌딩에 뛰어들어도 그냥 두십니다. 하물며 이혼이야 그렇지 않겠습니까?

    15. 삶이란 사람들이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늘날 사회의 아픔은 많은 경우 사람의 책임입니다. 다만 하느님은 인생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서신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옛날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6. 예수님의 말씀이 최종적인 권위가 있는 것이지요. 결혼과 이혼에 관한 말씀도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로 이혼장을 써주고 이혼하고 했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다시 본질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아닌가는 여전히 사람들의 몫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이란 하느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17. 예수님은 이혼과 결혼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혼 관계의 본래 의도, 혼인의 정신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4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마르코 10:6-9, 6 그런데 천지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8. 이 말씀은 혼배성사 때 읽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주례사인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혼불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배우자가 진정 하느님이 짝지어주신 사람인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19.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우리에게 던지는 두 가지의 질문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혼한 사람에게는 “배우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말입니다.

    20. 결혼을 혼배성사라고 합니다. 결혼이란 하느님이 축복하시는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성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결혼이 거래 같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결혼하는 상대방이 하느님이 짝지어준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21. 예수님은 하느님없이 세상적인 기준이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배우자를 택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당사자들이 자유로운 사랑과 결정을 통해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길이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배를 성사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22. 기왕에 결혼을 한 처지라면, 이제 배우자를 하느님이 맺어주신 짝으로 여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볼 때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주님의 눈으로 배우자를 본다는 말이고 또 주님 앞에서 한 서약을 기억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23.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한 자매를 기억합니다. 제가 수원교회에 있을 때 제 아내가 속한 구역의 여자분이 계셨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홀로 그분은 보험업을 하시면서 남매를 키우며 계셨습니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란 살림을 차린 지 수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관할사제 신부님은 이제 그만 이혼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권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자매님은 기도하면서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지금은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잘 살고 계십니다. 아이들도 탈선하지 않고 잘 자라 지금은 다 의젓한 성인이 되었구요.

    24. 요즘 신앙 서적 중에 최고의 베스트 셀러 “팬이냐 제자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게 나오는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이 신혼 때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다가 경험한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노부부의 가정을 심방하였는데, 남편이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의 침실로 들어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겨 왔답니다. 남편되는 분이 실례를 한 것입니다. 남편은 스스로 변을 처리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먼 목사님은 서둘러 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와 거실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서 있었습니다. 그 사이 방 안에서는 아내되는 분이 남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환기를 시키고 나왔습니다, 거실에 당황하여 서 있는 젊은 목사 내외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답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결혼 서약이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답니다. ‘아 이것이 결혼이구나!’
      그 후 아이들먼 목사님은 결혼식 주례할 때, 신랑 신부가 서약할 순서가 되면, 결혼 생활의 적나라한 실체를 알려 주곤 한답니다. 동화 같은 결혼 생활을 꿈꾸며 서있는 신부에게 말해줍니다. “이제 1년쯤 지나면 예쁜 속옷올 입고 침실로 들어가면 배불뚝이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침대에 누워 시리얼을 접시 째로 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축구를 보고 있겠죠. 남편은 시리얼을 씹는 중간 스푼으로 가려운 등을 긁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신랑을 향해 말합니다. “그 즈음 아내는 당신 엄마처럼 말하기 시작할 겁니다. 시리얼을 먹을 때 소리 내지 말고 식탁에서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겠지요. 말만이 아니라 몸매도 엄마처럼 변해 있올 겁니다. 그래도 서약하겠습니까?“>

    25. 우리는 이미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결혼할 때, 어느 때나 “순종하겠다. 사랑하겠다” 서약을 한 것입니다. 그 말은 남편이 승진할 때나 해고될 때나. 아내가 임신할 때나 유산할 때나. 집을 구입할 때나 집을 팔고 좀 더 싼 집으로 이사할 때나.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을 할 여유가 있을 때나 한 주 내내 라면으로 때올 때나. 많은 돈을 모았을 때나 카드 대금 연체가 되었을 때나. 팔팔할 때나 늙어서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할 때나. 순종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하다면 부부가 싸울 일이 없습니다.

    26. 오늘 복음은 신앙인들에게 마땅한 이유가 있는 이혼이 불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짝지어주시지 않은 결혼이 불가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에게 묻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결혼은 정말로 하느님이 짝지어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서로를 귀한 영혼, 존경하고 아끼고 서로 도울 배필로 여기십니까?”
      “여러분은 배우자를 볼 때 주님을 보십니까?”

    27. 배우자를 하느님이 짝지어주신 사람으로 바라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닌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 부부를 위한 기도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내시어 삶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은총을 베푸심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자람 때문에 그 복을 누리지 못하오니 당신의 용서를 청하옵니다.
      뼈 가운데 뼈요 살 가운데 살이라는 짝을 찾은 기쁨은 잠시뿐이고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면서 고독하게 된 아담과 하와를 기억합니다.
      우리 가정의 부부도 혼인의 즐거움은 잠시뿐이요. 순간의 실수로 서로를 원망하며 영원한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이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일을 가지고 의견이 부딪쳤사오니 인내심과 애정을 되찾게 해주소서.
      서로가 주어진 조건에서 성의를 가지고 바르게 이해하고자 애쓴다면 감추어진 애정이 싹트며 잃어버린 화목을 되찾을 수 있사오니 자기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소서.
      결혼 전에 가졌던 아름다운 꿈과 현실과의 차이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물만을 실감하게 되오니, 배우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태도를 서로 버리게 하소서.
      내가 배우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듯 배우자로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늘 그 기대를 찾아서 도와주려고 노력하게 하소서.
      성격의 장단이 있어서도 서로가 이해하며, 배우자의 나쁜 점을 들추어내기보다는 좋은 점을 보고 서로 도우면서 사랑을 되찾아 화목한 부부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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