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0년 5월 9일] 에페 5:22-6:4 가정주일 - 순종과 사랑의 두 기둥으로 성가정을 세우라!
  • 청지기
    조회 수: 2155, 2010-05-10 17:28:38(2010-05-10)
  •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 후 미국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뉴욕에 도착하는 날, 뉴욕시가 생긴 이해 가장 많은 인파가 부두에 몰려들었습니다. 군악대의 연주, 예포소리,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수많은 인파와 함께 도열하여 유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유해의 주인공이 유명한 정치가도 과학도도 작가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미국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그가 만든 단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메세지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마음 속에 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라.”

      ‘홈 홈 스위트 홈’의 작사가인 존 H. 페인(John H0ward Payne)의 유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스위트하신가요?
      
      30대 초반의 대학 전임강사가 ‘사람들의 가치관’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십니까?”라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대답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5개 있었습니다.
      그 단어는 “믿음, 희망, 사랑, 안식, 평화”였습니다.
      온 종일 인터뷰를 하고 통계를 정리한 젊은 교수는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들어서니, 그 순간 “아빠!”하면서 어린 딸이 달려와 아빠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달려와 자신에게 안기는 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문득 “믿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연이어 “아버지, 나 이번에 우리 반에서 5등 했어요.”라고 말하며 뛰어나오는 초등학생 아들을 보며 ‘희망’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여보, 이제 오세요?”하며 다정하게 그의 손을 잡아주고 양복 상의를 받아주는 아내를 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시장할텐데, 씻고 와서 저녁 먹으렴.”하며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안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조금 뒤, 사랑하는 식구들과 식탁에 앉아 있게 되자 갑자기 그는 자기가 바라보는 가정의 모습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온 종일 만난 사람들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믿음 희망 사랑 안식 평화”라는 단어들이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디자인하신 공동체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이렇게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가치들이 발견되는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오늘 시편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가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적인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가정이 세워질 때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기초입니다. 성경적 가정의 기초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집 앞 현관문에 교회 마크가 붙어있다고 해서 그 가정을 성경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의 말씀만이 그 가정의 기초’라고 고백하는 가정만이 그리스도의 가정인 것입니다.
      이 기초 위해 성가정을 건축할 때 우리는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옛날 솔로몬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야긴’은 우측기둥으로 ‘그가 세울 것이다.’를 의미하고 ‘보아스’는 좌측기둥으로 ‘능력이 그에게 있다’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이 디자인하신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하는 성가정에는 ‘사랑과 순종’이라는 두 기둥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 기둥들이 세워질 때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하는 성가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첫째 기둥 - 순종입니다.

      평안하고 행복을 누리는 가정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좋은 집, 좋은 차,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한 가정 안에는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가정을 천국으로 만듭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정은 반드시 행복이 넘칩니다.

      순종할 대상을 상실한 가정은 혼란에 빠지고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나도 남들처럼 내 남편을 존경하고 순종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존경할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순종하라구요? 순종하며 살다가는 큰 일 납니다.”
      “저도 아버지께 순종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면, 순종할 마음이 싹 달아납니다. 순종은 커녕 미움만 쌓입니다.”

      인간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이 온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실수와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그들을 순종의 대상으로 주셨습니다.
      남편의 가장 우선적인 욕구는 존경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섭리에 의하면, 남자는 인정받고 존경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며, 무시당하고 자존감이 눌릴 때 가장 불행해진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지 않으면 남편은 어디에서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때때로 아내가 잘 살아 보려고 애를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남편에게 제일 중요한 [자존감]을 아내가 파괴시켜 버립니다.

      아내의 순종이 없이는 남편의 권위는 없습니다. 남편이 바로 서지 못하는 데 결코 부부생활에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행복하지 않는데 그 가정이 천국 같아질 수 있습니까? 가정천국을 하느님께서 안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거절한 것입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몰라도, 아내가 기도하고 순종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남편이 하느님 앞에서 바로 서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은 가정의 중대한 결정권을 최종적으로 남편에게 위임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때 남편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결국 하느님 앞에 무릎을 끓게 될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은 결국 남편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자녀의 본분도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여 주었고, 진실로 사랑했고 변함없이 사랑했다면 그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는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로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셨던 그 순수한 사람이 바로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아무 기대나 바람이 없는 희생적입니다.

      이 부모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효의 출발이고 자녀된 여러분이 하느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둘째 기둥 - 사랑입니다.

      교회를 말할 때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가정 역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천국을 엿보게 됩니다. 교회와 가정 안에서 사랑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나 교회에서 자주 이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단적인 예는 이것입니다.

      사랑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인데, 부부가 또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다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남편들이 얼마나 힘들게 세상에서 일하는지 모릅니다. 돈 버느라고 얼굴보기 힘든 아빠라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응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부부가 아빠와 자녀가 함께 하는 시간이 작으면 작을수록 행복은 줄어듭니다.

      오늘 드라마에도 남편이 사업이 바빠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너무 비참합니다.


      저는 아내와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노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아내가 늘 충고해주던 사항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어찌 교회 일만이 하느님의 일이겠습니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느님의 일이 되는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님은 성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죄를 사하시고 거룩한 영으로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임마누엘이 성취되고자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일에 들어가는 시간을 죽여야 합니다.

      한 주의 일정표에 부부의 날과 가족의 날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2~3시간이라도 부부만이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구요 또 하루 저녁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예배드리며 대화하고 함께 노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정예배를 꼭 드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토요일이나 주일 저녁을 가족의 시간을 지정하여 지키시기를 권면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도 오직 사랑입니다. 한 가정 사역 연구소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의 유형을 잘못된 운전에 비유하여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1) 과속형 - 자식에 대해 지나친 요구를 하는 부모님들 밑에서 자식들은 상처를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자식들이 자기 연령에 맞게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손님 왔다가고 나면 아이들이 매 맞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점잖으라고 강요합니다. 점잖다는 말은 젊지 않다는 말입니다. 빨리 늙으라는 얘기이지요.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을 때 자식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게 보입니다. 이런 부모들 때문에 자식들이 노여움 속에 빠져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음주운전형 - 부모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자식을 양육하는 부모들 이런 부모들 밑에서 자식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식들에게 꾸중을 하고 훈계를 하다가 감정이 폭발해 버리는 부모입니다. 자식과 대화 하다가 감정을 조절할 수 없으면 대화와 꾸중을 뒤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3) 끼어들기형 - 자녀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부모들 때문에 자식들은 상처에 빠져 살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 세대의 사람들 가운데 가난하게 살다가 밥술이나 먹고 살아가면 자녀를 낳아 과보호하게 됩니다. 과보형 부모들, 끼어들기형 부모들입니다. 정상적인 인생운전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4) 뺑소니형 - 방임형 부모들. 자식이 사고를 치는지 음란 싸이트에 접속이 되었는지, 신앙생활을 잘 하는지 무관심한 부모들. 때로는 도와주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자식들은 노여움을 안고 살게 됩니다.
      5) 초보운전자 - 자녀들의 능력부족을 문제삼아 노엽게 하면 안됩니다. 운동경기에서 아이가 최선을 다해 뛰었는데 꼴찌했다. 이 아이는 꾸중들을 아이가 아니고 칭찬받아 마땅한 아이입니다. 자식이 가진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는데 성적이 그 모양이다. 이 아이는 격려 받아야 될 아이지 꾸중 들어야 될 아이가 아닙니다.
      6) 도로에서 경쟁하는 아슬아슬한 운전자처럼 자식을 남과 비교하다가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들 아래서 자식들은 노여움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들이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여 잘 기르는 유일한 방법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묵숨 걸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라’는 시인의 말이 준엄하게 들립니다. 그런데도, 지금 많은 가정들이 속절없이 깨져가고 있습니다. 미움 때문에, 돈 때문에, 성격 운운하는 따위 때문에....  
      미움이 아무리 큰들 어찌 목숨에 댈 수 있으며, 돈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어떻게 목숨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가정은 생명의 산실(産室)이며 행복의 원천(源泉)입니다. 인류의 평화도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 요한 14:23에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에페 5:22,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에페 6:1, 자녀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에페 5:25,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에페 6:4,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

      오늘 서신 에페소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처방을 줍니다.  5장 18절 말씀입니다.
      18-21절은 한 문장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피차 복종함으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주님이 세우신 영적인 질서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의 설계자 되신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적인 원리 - 순종과 사랑으로 살아감으로 여러분의 가정이서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을 확장해 가는 성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청지기 2155 2010-05-10
287 청지기 1466 2010-05-03
286 청지기 1912 2010-04-12
285 청지기 2827 2010-04-06
284 청지기 1429 2010-03-15
283 청지기 1666 2010-03-08
282 청지기 1835 2010-03-02
281 청지기 1725 2010-02-17
280 청지기 2065 2010-02-08
279 청지기 2059 2010-01-31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