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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월31일]고전 13장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여 교회를 교회답게 하라
  • 청지기
    조회 수: 2060, 2010-01-31 21:46:58(2010-01-31)
  •   오늘 2010년 교회 사역 봉사자들 임명식을 갖습니다. 셀 섬김이와 교회학교 교사들에게만 임명장을 드리는데요. 보니까 80여명에 가까운 봉사자들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어르신과 학생을 빼면 청장년이 120-30여명인데, 참 많은 교우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물론 명단에는 없지만, 이 자리에 계신 교우 여러분의 모두의 기도와 참여로 우리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로 헌신하는 사람들, 즉 몸을 이루는 지체들에 의해서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지난 몇 주간 계속 읽어오는 고린도전서 12장은 바로 이 원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온 서신 말씀 가운데 두 구절의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1. 고전 12:7,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each one -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 각 사람 안에는 이미 성령이 주신 은사와 재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공동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 안에 주님의 마음과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으로 섬김을 다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자라나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망입니다.

      101반의 가르침 중에 표어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다 사역자이다.’
      ‘모든 사역은 다 존귀하다.’
      ‘각 성도는 각 섬김의 영역에서 전문가이다.’

      혹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내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것이 있습니까? 이렇게 함께 예배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지체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여 함께 예배하는 것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옆에 계신 지체에게 인사합시다.
      “당신이 제 옆에 계셔서 참 좋습니다.”

      2. 고전 12:31,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라.’
      은사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중 2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은사를 체험했습니다.
      중 3 때, 무릎 관절이 아파 체육을 하지 못했는데 기도를 받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아! 하느님이 살아계시는구나! 믿음이 생기고 얼마나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 감사!
      치유의 은사! 얼마나 놀라운 은사입니까?
      요즘도 치유의 기적은 교회에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이 은사가 넘쳐나 몸과 마음에 병든 사람들이 나음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역사가 계속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지난주에 캄보디아 노진태 선교사님이 오셔서 대화 중 8년 전 함께 단기선교를 했던 때를 회상했습니다.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 가서 봉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마치자 검은 구름이 마을로 몰려오더니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갈라져 있던 논들이 금방 물로 가득 채워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후 사찰만 3개가 있던 그 작은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또 성령세미나를 하다보면, 종종 손을 얹고 안수하면 방언을 받게 되고 뒤로 쓰러지며 강하게 주님을 체험하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은사하면 대개 이런 기적적인 은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은사보다 더 큰 은사가 있으니 성도는 마땅히 이 은사를 간절하게 구하여야 한다. 'eagerly desire'

      ‘가장 좋은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the most excellent way.
      성도라면 행해야 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소망이 되는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은총의 선물, 가장 좋은 길이 무엇입니까?
      13장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사랑!입니다.
      한글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하나뿐이어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바르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로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대표적으로 4개가 있습니다.
      에로스 - 남여간의 성적인 사랑
      필리아 - 친구간의 우정과 사랑
      스토르게 - 아이 혹은 부모를 위한 사랑같은 본능적인 사랑
      아가페 - 무조건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바울은 아가페가 가장 중요한 사랑임을 13장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3절,
      아가페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가페가 없으면 방언이라는 은사도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합니다.
      아가페가 없으면 예언과 지식도 무가치합니다.
      아가페가 없으면 사람이 모든 것-재산이나 생명을 내어주더라도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아가페 없이 행하는 모든 섬김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4-8절,
      아가페의 성격과 특성을 말해 줍니다.
      본문을 보면, 아가페라는 명사가 16개의 동사와 짝을 이룹니다. 즉, 아가페라는 사랑은 활동적이든 소극적이든 행동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8-13절,
      아가페의 영원성, 우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사는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면 이 모든 은사는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랑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강조하는 아가페의 사랑은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본질이요 교회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13:33-34,

      초대교회는 바로 신앙의 본질이 구현되었던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코이노니아의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모이기에 힘쓰고 교제하며 유무상통하는 공동체로 날마가 구원받는 이가 더해지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서 서신을 받은 고린토교회가 바로 그 예입니다. 고린토교회는 믿음도 굳세고 은사도 풍부했던 교회였습니다.
      고전 1:6-7, 6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에 깊은 확신을 가졌으며 7 모든 은총의 선물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아가페 사랑이 식어버렸습니다.  
      사랑이 없으니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고전 1:10-11,  10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 11 내 형제 여러분, 나는 클로에의 집안 사람들한테 들어서 여러분이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음행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5:1, 여러분 가운데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심지어는 제 아비의 처와 동거하는 자까지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이교도들 사이에서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교우간에 분쟁이 있어 법정 소송까지 일어났습니다.
      고전 6:1, 여러분 중에서 누가 다른 교우와 분쟁을 일으켰을 때에 어찌하여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이교도의 법정에 고소합니까?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고전 10:24,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거룩한 성찬식까지도 엉망이었습니다. 예배에 질서가 없었습니다.
      고전 11:20-21, 20 하지만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21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보여준 성령의 코이노니아는 약화된 채성령의 은사만 뛰어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여 오늘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가장 뛰어난 은사가 아가페이며 이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회복시켜 주는 신앙의 본질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제로 섬기는 저로부터, 신자회장님, 교회위원들, 셀 섬김이, 교회학교 교사들, 각 사역의 봉사자들, 그리고 십자가의 구원받은 우리 모두 안에 이 아가페의 사랑이 있기를 소망하며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어떻게 우리 각 사람이 이 아가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갈 수 있을까요?

      1. 먼저 스스로 아가페가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시 눈을 감아 보십시오. 아가페 사랑이 내 안에 있는지 새겨 보세요.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사랑으로 보이는 행동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을 속일 수도 있고 자신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행함은 자기만족과 자기 의를 위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진실함이 필요합니다. 그 진실은 내 안에 그 사랑의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특강 때 권요셉형제의 말이 기억납니다. 예수원 공동체에 27년을 살면서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다.

      내가 얼마나 사랑이 없는 죄인인지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억합니다.

      어느 날 아빠 엄마 딸 세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엄마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아빠와 딸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딸의 상처는 가장 깊어 오랫동안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딸보다 먼저 퇴원한 아빠의 신세도 딸과 다르지 않은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고 당시 사춘기였던 딸은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조잘대며 신나게 이리 저리 놀러 다니지만 딸은 홀로 외로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목발 신세인 아빠가 딸에게 다가와 말동무가 되어 주고 대화를 나누며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딸은 많이 울기도 하고 투정도 부렸지만, 아빠는 그 모든 것을 받아 주며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빠와 같이 목발을 짚고 공원을 산책하고 벤취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에 같이 참석하여 딸을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게 자랑스럽구나. 너는 나의 자랑이며 보람이다.’ 딸은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빠와 딸은 목발을 짚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그들 앞에는 작은 꼬마 아이가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이 큰 길로 굴러 갔습니다. 꼬마는 앞뒤도 살펴보지 않고 공을 주우러 큰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길모퉁이에서 트럭이 전 속력으로 달려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의 아버지가 목발을 내 던지고는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뒹굴어 위기의 순간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마를 안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길을 건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순간적인 행동은 너무나도 날쌔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목발을 짚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얘야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다  나으셨단다. 퇴원 후에 곧 정상이 되었거든. 그러나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다니기로 작정하셨던 거야. 그러니까 벌써 5년이 지나갔구나. 이 사실을 아빠 회사 동료들도 친척들도 모르지. 나와 아빠만의 비밀이었단다.”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 많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거듭 우리에게 ‘주 만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세워주신 성체성사를 통해 이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3.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나는 이 사랑이 없는 죄인이지만,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구원자요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 아가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딤후 1:7,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만, 아가페 사랑은 오직 성령님을 의지할 때 자라나는 열매요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갈라 5:22,
      그래서 성도들은 아가페 사랑이 실현되는 성령의 코이노니아의 삶을 살아가며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 13:13,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우리 안에 아가페의 사랑이 충만해지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찬양으로 우리의 고백을 올려드립시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에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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