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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2월14일]민수기 6:22-27, 야고보 4:13-16, 마태 6:19-21, 25-34 2010년을 축복의 해로 만들라!
  • 청지기
    조회 수: 1726, 2010-02-17 13:51:00(2010-02-17)
  •   설날이 되면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라고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까치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새, 복을 가져다주는 길조로 여겨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왜 까치설은 어저께고 우리 설은 오늘이라고 했을까요?
      복을 그토록 누리기를 원했던 우리 민족이 왜 까치설은 어저께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썼던 이규태 선생님은 우리 조상들이 새해를 “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러운 날’이어서 “설”이라고 했다고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법한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이 되면 사람들은 나이를 한살 더 먹습니다.
      아마 나이를 더하는 것이 어린이들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허무한 일이요 서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도 어느덧 내일 모레가 50입니다. 언제부턴가 세배를 받고 덕담도 하고 세뱃돈도 주게 되었습니다. 들떠서 세뱃돈 받으며 부모님과 친지 어른께 세배를 드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또 가난과 고난 속에서 살았던 민족이기에  새해를 맞을 때 남다른 한과 서러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설날이 아이들에게는 새 옷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즐거운 날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서러운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가난해서 자식들을 남처럼 입히지 못하고 먹이지 못하니 서러웠을 것이요, 그 가난과 고난의 긴 터널이 새해라고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기에 서러웠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올 2010년 설도 여전히 싸늘해 보입니다. 작년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한파가 온 세계를 어렵게 했습니다. 한국경제가 다른 OECD 국가들 보다는 아주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사실 서민 경제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양극화 현상은 OECD 가입국가 중에 가장 심각하고 청년마저 일자가 없어 힘들어하는데 실업자 수가 무려 1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일을 애타게 기다리던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도 아픈 마음으로 올해도 마음 아픈 설을 맞이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도 육자 회담에 참여할 모습도 보이고, 미국이 북한의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겠다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새해에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새해 설을 맞이하며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레요.”라고 노래했던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많은 우리 민족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봅니다. 언제나 복을 누리며 사는 꿈을 꾸지만, 새날을 맞는 현실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낙심하는 인생관으로만 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세배를 받으면서 어려운 현실을 뛰어넘는 축복의 나누었습니다. 그것을 덕담이라고 합니다.

      덕담은 원래 세배를 받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인사로서 상대방의 처지와 환경을 잘 알고 그것에 적절한 축복을 기원하는 말입니다. 소원성취를 바라는 축복의 말이 덕담이었습니다.

      선조들도 말에는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영적인 파워가 있음을 알고 원하는바 축복의 말을 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했던 덕담을 표현방법을 보면, 특이했습니다.
      “--하게나” 하지 않고 “---했다지?” “---했다며”라는 과거형을 썼습니다. 상대방의 소원이 현실화된 것처럼 축복의 말을 건넸던 것입니다. 아주 긍정적적이고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상 현실은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지요.’라는 노래로 표현되듯이 한스러운 일들이 많아 지치고 힘들고 어렵기만 합니다.
      덕담으로 기원하는 복된 삶은 아직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늘 구약성경을 민수기 6장의 말씀을 보면 소원성취와 문제해결의 덕담이 아닌 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는 덕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제사장 직분으로 부름 받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사람들에게 야훼의 이름으로 복을 기원하면 하느님이 그대로 이루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주보 겉면을 보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제사장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생이 누릴 참된 복은 어떤 것인가? 인생이 복을 누구로부터 받는가? 어떻게 받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돈 많은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 6절을 보면 ‘평화를 누리는 삶’이 진정한 복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물질이 많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하여 돈을 주인삼고 물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화목하고 사람들과 화복한 삶을 사는 평화의 삶이 진정한 행복이며 이 복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24, 27절.
      
      오늘 입당성가을 부르며 우리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복의 근원되신 거룩하신 주님, 내 영혼을 밝히소서.’

      오늘 복음과 서신은 어떻게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우리의 영혼이 밝혀져서 참된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누리게 되는 것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 먼저 복음 성경은 진정 우리 삶의 주인이 하느님이어야 함을, 그리고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진정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31-33절.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福이라는 한자어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한자들이 있습니다.
      義, 船 등 福도 그렇습니다.

      福이라는 한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본다면 그 의미가, 하늘이 식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식구들이 하늘에게 제물을 드립니다. 하느님 중심의 생각입니다. 먼저 하느님이 식구에게 먹을 것을 주신 후에 식구들이 드리는 제물이 감사제물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이 한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면 달라집니다.
      식구들이 하늘에게 제물을 드리고 하늘이 식구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먼저 인간이 하느님께 무엇을 드린 후에 하느님이 인간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이렇게 제물이 감사의 제물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는 제물이 됩니다. 이것은 비기독교적입니다. 구약에서 서원제물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실상 모든 제물은 감사와 경배의 제물일 뿐입니다.

      복 자 안에 밭 田 자가있습니다. 농민들에게는 농사짓는 땅입니다. 농민에겐 밭과 논이 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도시인에게는 밭과 논은 밥이 아니라 땅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부동산을 의미합니다.
    도시지역에서 논이 있는 사람은 부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복이라는 한자에 있는 밭 전(田)자가 또 다른 느낌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를 주신다는 생각이 날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말씀이 물질중심의 말씀으로 변질됩니다. 하느님이 아닌 재물이 주인되는 삶이 됩니다.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을 투자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 세상의 것을 구하던 삶에서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삶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진정 예수님이 주인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이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 무엇을 위해서? 오직 하느님의 나라를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삶이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복된 삶이 됩니다.

      여렸을 적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목욕을 하고 설빔의 새 옷을 입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인되어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삶은 마치 새해를 맞이하기 전, 목욕을 하고 새해 첫발 설빔으로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2. 또 오늘 서신에서는 하느님이 주인된 삶이 어떤 삶인지를 보여줍니다.

      4: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모름지기 주인되신 하느님께 겸손히 묻고 그 인도하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잠언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는 세배를 드리는 마음과 태도로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세배를 하면 머리를 숙입니다. 머리를 들고는 세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을 경호마치 복종의 표시와도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201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진정 하느님이 주인된 삶,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삶,
      겸손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
      하느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 평화를 누리는 축복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으십시오.
      날마다 하느님께 세배를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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