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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06년 6월 25일] 마르4:35-41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 청지기
    조회 수: 2673, 2006-06-25 23:02:51(2006-06-25)
  • 복음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크게 3가지로 전해줍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 천국을 가르치시는 일, 그리고 천국이 임하는 사건으로 치유와 기적을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신 이 3가지 일을 계승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하는 곳이지요.

    그래서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계획을 성취해거기 위해서 사는 이유가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라는 세미나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함을 결단하였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신 교우들은 태이프 9개를 1만원에 판매하니 꼭 구입하셔서 듣고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하루 종일 군중들은 가르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등불의 비유’, ‘자라나는 씨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등. 종일토록 가르치신 주님은 저녁이 되자 제자들에게 ‘호수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남겨둔 채 12제자들은 배를 나누어 타고 주님과 함께 노를 저어갔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해지는 노을이 붉게 물든 평온한 갈릴리 호수를 주님과 함께 노를 저어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참 아름답고 평화롭지 않습니까?

    이미 이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실은 배는 한가로이 갈릴리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인생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루를 성실하게 일하고 일과를 마쳤을 때 주님과 함께 평화롭게 달콤한 행복을 누리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꿈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몰아쳐옵니다. 갈릴리 호수는 표면이 해발 -240m입니다. 그리고 높은  산들이 있는 고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이 고원을 거처 갈릴리 바다로 들어가는 데 이 계곡들이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해발 2,760m나 되는 헬몬 산에서 갑자기 차가운 기류가 내려와 이 협곡들을 지나 지중해 연안의 열대성 기후에 가열된 바다 표면의 공기와 충돌하면 맹렬한 바람을 일으켜 바다를 강타하게 됩니다. 이것이 갈릴리 바다의 특징입니다.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안으로 들이치며 물이 배에 가득 차게 되어 이제 곧 배가 가라앉을 것만 같습니다. 배가 거의 가라앉을 정도로 배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잔뼈가 굵었어도 속수무책입니다.

    여기서 우리 인생의 모습을 봅니다. 인생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이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이 함께 타신 배도 풍랑을 만나듯이 예수 믿고 사는 우리 인생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센 바람이 불면서 일어나는 풍랑을 직면하게 됩니다. 여기서 ‘거센’이라는 말은 ‘메갈레’라는 말로 ‘메가톤’급이라는 뜻입니다.

    사면초가라고 하나요?
    내 뜻대로 내 플랜대로 내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큰 것인지 도대체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실패만이 기다리는 참담한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십니다. 종일토록 가르치셔서 너무 피곤하신 탓일까요? 도대체 제자들이 애를 쓰고 발버둥치는 상황인데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나고 제자들이 소리치며 애를 쓰고 있다면, 깨어나서 함께 위기를 극복해가는 것이 의리이고 인지상정인데 인기척도 하지 않으십니다.

    참 냉정하고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우리도 메가톤급으로 얻어맞아 흔들리고 있는데 내가 믿는 주님이 인기척도 없으시다면 속이 터지고 원망이 나올만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이는 '우리가 당신께 그렇게 하찮은 존재란 말입니까?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잠만 잘 수 있단 말입니까?'하는 뜻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먼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해 놓고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을 확신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던 그 기적의 능력으로 어떻게 좀 해볼 수도 있을 텐데 그저 잠만 자고 있는 예수님이 야속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애를 쓰고 죽을 것만 같은데 혼자만 태평하게 잠만 자고 외면해도 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어쩜 이렇게 우리가 때때로 갖게 되는 생각과도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똑같이 풍랑을 만났지만, 전혀 다르게 반응을 보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만약에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수님처럼? 아니면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그토록 평온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주님이 이 상황 속에서 잠잠하신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얼굴에도 바닷물이 덮쳤을 것이고 예수님은 잠을 깨셨을 것입니다. 광풍이 일어난 것을 다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일어나지도 않으시고, 또 제자들을  그런 위험 가운데 그냥 내버려두셨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주무신 것에 대한 기록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이 일어나지 않으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큰 난관에 부딪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시고 그들을 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39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말씀 한마디로 풍랑을 잠재우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왜 그렇게도 겁이 많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책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여러분, 믿음이 뭘까요?  
    그저 “주님, 믿습니다.”라고 염불처럼 반복하는 내 입술의 말이 믿음일까요? 파지티브 씽킹, 긍정적인 사고가 믿음인가요? 지난 4일간 세미나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은혜 충만’이 믿음일까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신 후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론 강의가 다 끝나고 실습을 나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는 말씀을 심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른 말씀들과 같이 성취될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으므로 동남풍이 불던 서북풍이 불던 배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아멘?

    바로 여기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여 주의 말씀의 능력이 제자의 삶 속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과 우리의 믿음과의 역학적 관계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자이심을 믿고 있었다면 그들은 천지만물이 그에게 속한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 주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이신 것을 믿습니까?

    로마서 10장 17절에,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믿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할 때 우리가 오늘 무엇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믿음의 중추적 토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는 것은 성경에 기록하신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그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이면 우리 교회가 이곳으로 이전한지 3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일 7월 2일에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예배는 특별히 이전축복 3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날이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 예배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콜롬바성당으로의 이전 축복 3주년을 맞이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참 놀라운 은혜로 우리 교회를 이끌어 오셨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제가 이교회로 파송 받아 기도할 때 주님이 주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사야 43:18-21,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내가 사막에 큰 길을 내리라. 광야에 한길들을 트리라. 사막에 물을 대어주고 광야에 물줄기를 끌어들이리니, 뽑아 세운 내 백성이 양껏 마시고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들이 나를 공경하리라. 내가 친히 손으로 빚은 나의 백성이 나를 찬양하고 기리리라.”

    주님은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말씀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삶’ 세미나를 들은 그대로 매일 매일 하느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가지십시오. 주님은 그 교제 가운데 매일 매일 출애굽 광야의 만나 같은 생명의 말씀을 내 마음에 심어 주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하면 그 어떠한 메가톤급 위기가 우리를 덮을 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승리케 하십니다.

    오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죽음의 두려움에 떨게 하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말씀하신 그대로 호수 건너편 게라사 지방으로 가셔서 군대마귀 들린 사람을 자유하게 하시는 새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말씀 그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분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내 아버지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이 내 아버지 되셔서 참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주품에”

댓글 1

  • 김영수(엘리야)

    2006.06.27 14:36

    아~멘
    설교들은지 며칠 안되어서 말씀이 세삼 눈에 들어 옵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다시 추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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