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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로역경의 믿음 - 이민규교수
  •   얼마전 천로역정 연극을 관람하였습니다. 천로역정의 구원론은 청교도적입니다. 대략 70년대 이전 한국교회가 보편적으로 주장한 전통적인 구원론이지요. 일제시대 때의 간증집인 안이숙 사모의 "죽으면 죽으리라"에도 잘 나와 있지요. 그러나 변화는 80년대 일부 미국의 부흥사들과 새로운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부흥집회와 전도를 하며 안일한 구원론을 가르치면서 부터입니다. 과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구원론을 지켜온 한국교회를 그들은 율법주의로 몰아세웁니다. 한국엔 복음이 이제서야 퍼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한국교회에는 번영신학과 함께 안일한 구원론, 단박 구원론(easy believism)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안일한 구원론, 단박구원론은 가장 확고하게 수용하는 곳은 구원파입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천로역정의 구원론은 아주 오래되고 전통적인 기독교의 구원관에 근거합니다. 구원이란 과정을 통해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기독교...인의 목적입니다. 오직 순종과 제자의 삶으로만 가능한, 고난 가운데서도 지 충성하는 자에게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물론 신앙의 여정에는 항상 하나님의 도움이 있지요.

     

    한국교회에 퍼진 구원론의 문제는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이신칭의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히] 구원의 길을 설명하는 아주 강력한 도구이지만 구원에 관한 모든 상황에 적합한 설명은 아닙니다. 특히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상당수의 구원 길에 대한 설명에는 이신칭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 다른 곳에서도 비슷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요구되는 의롭게 되는 길은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됨에 관해 믿음과 행위의 대조를 통한 설명이 오해되어 순종과 충성의 행위로만 열매맺는 것이 가능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적 성품인 의를 마치 행위구원이라고 매도하고 거부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절대로 믿음이 행위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신자는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행위 없는 믿음이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신학은 바울신학의 옛 관점이나 새 관점 모두 환영하는 시각입니다. 유독 안일한 믿음 주의가 판치는 우리나라 교회의 상황에서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요.

     

    오늘날 천로역정은 비록 세부적으로 신학적인 문제를 지녔지만, 구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중독된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성경에서 말하는 정직한 구원의 길에대한 그림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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