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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박득훈 <돈에서 해방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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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반공·친미·친자본주의의 은밀한 동거


    [서평] 박득훈 <돈에서 해방된 교회>



    <출처: 뉴스앤조이>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

     

     

    ▲ <돈에서 해방된 교회> / 박득훈 지음 / 포이에마 펴냄 / 380쪽 / 1만 6000원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43쪽)."


    책에서 인용한 지난 2월 26일 세 모녀가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남긴 유서의 일부이다. 왜 그들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70만 원을 고이 남기면서도 그렇게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일까? (43쪽) 저자는 그들의 고결한 책임감과 양심에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 사건을 통해 가난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과 가정에 돌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진상이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과연 세 모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원래부터 개인과 가정이 자신들의 경제적 현실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열외 자들을 위한 시혜적 조치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마땅히 이들에게 땀을 흘려 일한 노동의 대가가 충분히 돌아가도록 바로잡는 정의의 조치가 필요한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으로 그 모습을 계속해서 달리해 왔다. 저자는 아나톨 갈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의 자본주의 역사적 발전 단계의 설명을 인용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 증대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자유방임 고전자본주의'가 출발한다. 다음으로 시장의 힘이 극대화되어 사회 전체의 불균형이 조절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러 메이너드 케인스의 '정부 주도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한다. 그 후 다시금 시장의 힘이 절대화되는 '시장 주도 신자유주의'에 이른다. 최근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로 촉발된 신자유주의는 위기를 맞이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시장과 사회의 조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 아래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후 수출 중심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를 거쳐 1997년 외환 위기와 IMF 관리 체제를 겪으면서 확실하게 신자유주의에 편입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는 더욱 공고화되었다(23쪽).


    자본주의와 교회의 은밀한 동거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와 교회가 어떤 상관이 있단 말인가. 저자는 한국교회의 대부분 문제의 근원에 맘몬 숭배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맘몬은 자본주의를 매개로 삼아 한국교회 안으로 잠입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주류 경제학은 시장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취한다. 복잡한 자본주의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출발점에는 사회로부터 독립되어 아무런 연고 없이 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개인을 상정한다(43쪽). 이른바 '경제적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홀로 져야 한다. 원자화된 개인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서로 간의 사회적 관계와 책임에 둔감해지고 부의 축적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자본주의를 위해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실패 역시 오직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개인주의는 교회의 신앙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동안 저는 열심히 믿고 열심히 살았지만 성공하지 못해서 너무나 슬프고 고달팠습니다. '아, 나는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예수를 잘 믿고 열심히 살아도 가난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없는 위로를 받았어요. 절망과 죄책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98쪽)."


    저자가 목회 사역 중에 만난 성도의 고백이다. 사적인 부의 축적을 개인의 성공뿐 아니라 사회의 이익 증대로 승인한 자본주의사회에서 교회는 믿음의 길을 개인의 축복으로 제시하며 깊이 호응했다. 기복신앙으로 시작된 성경의 반쪽 해석은 <축복의 복음>, <야베스의 기도>, <깨끗한 부자론>, <긍정의 힘> 등으로 확장되며 개조되었다. 축복과 은사를 통해 부의 축적과 나눔을 이룰 수 있다는 성경 해석의 강력한 흐름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 이를 '과잉 믿음'화하여 한국교회를 병들게 했다. 단적으로 이 믿음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교회에서 가난한 성도는 소외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은 어디에 있으며 가난한 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교회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본질적으로 맘몬 숭배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사회는 필연적으로 경쟁 절대주의와 사회적 양극화라는 두 가지 심각한 병폐를 낳는다고 본다(65쪽). 부의 축적을 사회의 공익으로 정당화하는 자본주의는 돈의 힘을 향한 탐욕을 조장하고 그로 인해 각자가 자기 부의 축적을 최대화하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하게 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양극화는 사회의 공동체성을 심각하게 파괴한다(69쪽). 그러나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기보다 자본주의의 특성을 '뒤틀린 성경 해석'으로 정당화하였다.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에 왜 이토록 무력한 것일까? 저자는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첫 번째는 일제의 억압과 분단 시대에 확산되어 온 냉전적 사고이다. 일제의 회유와 억압은 한국교회에 건강한 정치 신학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았고 분단 이후의 체제 경쟁에 의한 냉전적 사고는 반공주의, 친미주의 그리고 친자본주의적 태도를 고착화시켰다(83쪽). 두 번째는 기독교인의 중산층화와 교회의 사회적 신분 상승이다. 가난한 성도들에서 시작한 한국교회는 어느새 한국 사회의 중산층 및 자본주의사회의 부와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의 교회가 되었다. 세 번째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잠정적 승리이다(86쪽). 한국 사회는 분단의 정점에서 체제 수호를 위해 압축 성장과 신자유주의의 무분별한 도입을 승인했다.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자본주의는 무비판적으로 한국교회 안으로 깊이 스며들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교회


     

     

    ▲ '돈에서 해방되는 교회'를 위해 우리는 어떤 실천을 할 것이며 어떤 구상을 할 것인가. 체제와 이념의 갈등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한반도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해방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가. 저자는 기복 신앙에 갇힌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회복하는 해방의 교회로 탈바꿈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계명이라고 강조하셨다. 하나님나라의 이 두 기둥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그러나 부의 축적을 절대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나의 이웃을 향한 책임을 방기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성장에만 매몰되어 이웃의 신음을 듣지 못한다. 교회는 교회에 갇히고 우리의 신앙은 어느새 우리의 삶을 정당화해 주는 장식물이 되어 버렸다. 이 참담한 모습은 교회만 깨닫지 못한 듯하다. 저자는 이 왜곡의 핵심으로 돈의 힘에 사로잡힌 우리의 반쪽짜리 신앙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매개로 하여 하나님나라를 무너트리고자 하는 맘몬의 교묘한 전략임을 강변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를 그토록 옭아매고 있는 함정으로부터 해방될 길은 없는가. 저자는 참된 구원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맘몬으로부터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235쪽). 이때야 비로소 우리는 맘몬에 대항할 수 있고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청지기와 나눔의 노력뿐 아니라 구조적 차원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내 이웃의 상황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자세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공동체적 삶과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입장만이 교회의 역할로서 유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여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않는 '생활 공동체'로서의 삶의 양식을 함께 실천하고 대사회적으로는 예언자적 통찰력을 통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세우는 '사회운동'에 힘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라고 말한다(297쪽).


    하나님나라의 두 기둥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삶은 청지기와 나눔의 삶이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친밀한 생활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과도한 소비문화와 경쟁적 부의 축적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홀로 싸우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제도가 사회 전반에 세워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더 정의로운 '대안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사회운동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성경적 근거는 명확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계명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제도에 불과하다(335쪽).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바로 이해하여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대안 경제체제' 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저자는 '대안 경제체제'의 대략적 얼개를 제시한다.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곧, '민주적 참여 계획경제'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보다 좀 더 온건한 '공동체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이 사회는 경제 자체가 공동체란 가치에 의해 일정하게 통제되는 사회이다. 자본이 노동을 억압하고 있는 구조를 바꾸고 시장이나 국가가 경제 운영을 독점하지 않고 시장, 국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공동선을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구축해 나간다(343쪽).


    해방의 길을 제시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의 통치인 공평과 정의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간절히 사모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내 이웃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부터 실천한다. 그리고 더 나은 길을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다.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은 절망과 어둠의 현실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하나님나라를 꿈꿀 수 있는 근원적 힘은 바로 성경에 있다. 하나님의 통치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이집트의 폭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 내는 경험을 했다. 가나안에서 새롭게 건설한 사회는 이집트의 기득권 수호 체제와 달리 이방인과 거류민의 평화를 함께 일궈 내는 '희년 체제'였다. 물론 많은 한계를 보이며 가나안의 여정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한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모색해 보았던 소중한 기억이다. 국가 안에서의 시도를 기다리지 않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지금 여기서 실천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출현한다. 그들이 바로 초대교회 공동체였다. 하나님나라의 삶을 지금 맺고 있는 관계에서 실천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체제의 강력한 영향력에서 해방되었다. 종을 형제로 대하였고 재산을 공유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실천을 할 것이며 어떤 구상을 할 것인가. 체제와 이념의 갈등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한반도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해방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가. 저자는 기복 신앙에 갇힌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회복하는 해방의 교회로 탈바꿈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제 저자가 말한 대안 체제를 시작으로 숙고와 토론 그리고 실천이 뒤따라야지 않을까? 해방이 필요한 한국 사회에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해방적 통일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저자의 책이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에 중요한 논쟁과 실천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개인의 삶의 변혁'과 '사회의 총체적 변화'로 이어지는 하나님나라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그 시작은 돈과 자본주의의 찌든 때를 걷어 내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


    새로운 해방의 모색을 위하여


    저자의 설명대로 책에서 소개한 대안 경제체제는 대략적 얼개만 소개되고 있어 다소 추상적인 모습이라 아쉬움이 크다. 계속되는 구상의 모습들이 다음 출간되는 책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논의가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자본주의의 성찰과 함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선언적 주장은 많았지만, 실제로 대안 체제를 제시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나 자본주의 및 기존 사회체제에 어떠한 비판적 성찰 없이 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여 결국 맘몬과 자본주의에 종속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때면 뼈아픈 성찰을 넘어 대안 경제체제의 구체적 모색이 더욱 절실하다.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기독 지성인들은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대안 경제체제의 구상에 참여해야 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의 어둠과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주의 운동이 단일한 목적을 통해 교조화되고 폐쇄화된 역사적 경로를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서도 같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마르크스 자본론에 대한 오독이었는지 아니면 본래 마르크스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분석에 오류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명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분석이 필요한 것은 저자가 지적한 한국 사회의 냉소주의와 분단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덧붙이자면 '자본주의'는 너무나 다양한 차원에서 조금씩 다른 정의로 쓰이는 단어이어서 그 개념의 명확한 정의가 매우 어려운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자본주의의 심각한 폐해에 공감하면서 그러한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대안 제시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점에서 자본과 자본주의를 일궈 내는 권력과 화폐와 생산의 구체적인 분석과 이 세 요소의 긴밀한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부는 어떻게 '생산'되며 생산된 부는 '화폐적 축적'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는지 또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끊임없는 사회적 재구조화, 즉 '권력'이라는 현상이 어떤 구조인지를 말이다(홍기빈, <자본주의>, 145쪽). 이를 총체적으로 분석해야만 현실 자본주의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해방을 위한 분석과 치밀한 대안 경제체제의 구상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몫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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