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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사랑!
  • 기륭전자 투쟁에 관한 여러 사람의 글을 읽었는데, <시사인>에 실린 김현진씨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직 웹사이트에는 올라오지 않았더군요. 부분적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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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굶으라고 했냐고? 에라 이 망할 인간아


    나는 아직까지도 NL이 뭔지, PD가 뭔지 모를 만큼 ‘운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알 리가 없다. 부끄럽지만 마르크스가 뭔지, 사회주의가 뭔지도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으니 그런 쪽의 지식이라면 어린아이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기륭전자 앞 농성장을 찾은 것은, 사회주의나 노동운동도 잘 모르고 세상 돌아가는 일도 좀처럼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감정적인 인간이지만 단 한 가지 진실만은 알기 때문이다. 생명은 귀하다는 것,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긴 투쟁, 기륭전자 사태에 대해서는 부족한 말을 더 보탤 필요가 없겠고, 나는 지금 이 눈앞의 굳게 닫힌 기륭전자의 철문과 그 앞의 좁디좁은 컨테이너와 내리쬐는 8월의 폭염 아래 경비실 옥상 위에 쳐놓은 남루한 천막 안에서 하루하루 생명이 사그라져가는 두 여성 노동자와, 그 옆에 말없이 놓여있는 관해 대해서만 쓰려 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슬픔에 대해서다.

    투쟁도, 동지도, 노동도 해방도 모조리 나에게는 생경한 단어지만 이곳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은 타는 듯한 햇볕과 함께 아프게 와 닿는다. 그것도 사람을 죽였거나 물건을 훔쳤거나 무언가 죽기에 마땅한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공짜로 돈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정당하게 일하고 싶다,라는 절규 때문에 1000일을 싸우고 기어코 멀쩡한 산 사람이 두 명씩이나 65일 동안 곡기를 끊어도 사측은 꿈쩍도 않고 있다. 곰도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는데 원래 사람이건만 1000일을 싸워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못 되는 모양이다. 사측은 말한다. “누가 굶으라고 했냐.” 그 강고하고 오만한 통보 앞에서, 시신이나 다름없는 낯빛의 김소연ㆍ유흥희 조합원은 여전히 의연했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내놓고 싸울 것이 제 목숨밖에 없는 이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처연한 품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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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곡기를 끊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의 그 의연한 얼굴 때문이었다. 눈물이 터져나왔지만, 동시에 악이 받쳐올랐다. 누가 굶으라고 했냐고? 이 망할 인간들아, 그러면 나도 굶으련다. 누가 굶으라고 안 했다, 그냥 내가 굶고 싶어 굶으련다. 그냥 나도 죽여라. 누군가는 유치한 객기라고 비웃겠으나, 악이 받칠 대로 받치면 밥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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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을 이 철문 앞에 와서야 알았다. 기륭 여성 노동자들, 나아가서 850만 비정규직이 흘린 눈물의 값, 피의 값을 과연 어쩔 것인가. 비정규직을, 핍박받는 여성 노동자들을 동정해서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륭이 쓰러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내가 싸우지 않는 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다. 우리가 기륭이고, 기륭이 우리다. 내 일뿐만 아니라 남 일에도 기꺼이 분노하는 것이 진짜 진보다. 지금 기륭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들이 당신을, 나를 부른다.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10여 일 동안 5kg이 줄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이까짓 것, 65일이나 곡기 끊은 이들의 고통에 비할 바 없다. 다만 “누가 너희보고 굶으라고 했느냐”라는 말에 이제는 부디 여러분이 대답해주시기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김현진/에세이스트, <시사인> 2008. 8. 23. 제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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