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의리의 신학 ! - 한승헌 변호사의 나의 인생과 기독교




  • - 교회에 첫발을 내딛다...

    대학때 어느 선배가 교회나가라고 권유해서 교회에 나갔다. 2-3달 다녀보니 밖에서 생각했던것과 많이 달랐다. 목사와 장로들간의 파가생기고 갈등이 겪화되고 물리적으로 충돌도 생기고. 그러나 갈라지지는 않고 그 속에서 같이 공존하는.... 믿음의 본이 될 분들이 세속과 다른것 같지 않고 자기 고집은 신념이고 자기와 다른 것은 고집이고... 그래서 교회를 안나갔다.

    선배가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과 의를 보고 나오는 것이지 목사와 장로를 보고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한학교가 좋으려면 교가와 교훈만 좋다고 좋은학교인가? 졸업생과 재학생 모두 좋아야한다며 교회가기를 거부했다. 선배는 어떻게 하나님과 교회를 비교하느냐고 했지만 3달째 교회를 그만 나갔다.


    - 변호사가 된 과정

    사범학교 가서 학교 선생이 되려고 했는데 시험에 떨어졌다. 대학다닐때 아나운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언론인이 되고 싶었는데 50년대 한국언론 풍토가 너무 거세서 바른 언론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고등고시(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취업걱정이 없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법학과 출신은 아니다. 그런데 실력부족으로 떨어졌다. 1년더 공부했더니 합격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직업이 됐다.

    군복무 마치고 검사를 했다. 그때 이런저런 고소사건 중에 목사와 장로가 서로 할퀴는 사건이 있었다. 두사람 말이 너무도 달라 대질심문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책상앞에 앉자마자 두사람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화해가 가능한 사건인데 끝내 화래를 거부했다. 목사나 장로도 세속적 이해관계 앞에서는 별수 없구나!! 역시 기독교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 민주 변호사

    5년 검사생활 끝에 적성에 맞는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협정을 이끌어내고 반대하는 학생들을 수감하는 시국사범이 늘기 시작했고, 나는 시국사범을 변호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미운털 박힌 사람들이지만 변호사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차마 그냥볼수 없어서 ‘차마 정신’으로 변호를 시작했다.
    1973년 부활절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진보 보수 할 것없이 예배를 드렸다. 끝나기가 무섭게 전단이 뿌려지다 말은 사건이 있었다. 그 전단은 유신을 비방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로부터 3달후에 기장의 박형규 목사를 비롯한 목사들이 전부 붙들려가고 있다. 내란예비음모사건이 되버렸다.

    이 사건은 한국 기독교 역사상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권과 우호적이고 서로 이용하면서 넘어왔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역이라고 생각했던 성직자의 영역이 깨지면서 목회자들이 분개했다.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가 나오면서 기독교와 정부가 크게 부딪쳤다. 박정희씨가 일방적으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긴급조치를 만들어 자기의 명령으로 국민들을 다스렸다. 당시 모두 긴급조치에 무릎꿇을 때 맞서서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 기독교인이 참 많았다. 그때 잡혀간 목회자들이 변호를 거부했고, 그게 돌아서 내게 와서 그냥 변호를 맡았다. 아무도 없어서는 안되겠기에...
    유신에 맞선 기독청년, 젊은 목사와 전도사들이 참 많았다...


    - 기독교인이 되어갔다!!
        
    용기를 내자. 용기를 북돋아 주고 단상을 향해 항의하자!! 일반 국민앞에 꼭 증인으로 서야겠다라는 심정으로 변호를 했다. 긴급조치 4호가 발표되고 민청학생사건, 인혁당사건 등이 연이어 터진다. 이 사건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참 많이 나왔다.

    당시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 신앙적 결단에 따라서 일을했다고 하는데, 신앙적 결단과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몰라서 답답한 나머지 성경을 읽고 기독교서적을 급하게 읽었다. 바울도 로마에 맞서기 위해 가끔 비켜가기도 하고 융통성 있게 했다는 말도 적혀있고... 로마서 13장 1절은 독재자들에 의해 많이 회상됐었다. 그리고 NCCK인권위원이 됐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14통의 편지가 왔다. 이것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같은 사람 교회로 이도하기 위해 나이든 목사가 14통의 편지를 보내는 것에 감동해 내가 변화로 반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여러교회를 다녔다. 예배시간이 되면 버스에서 내려서 가까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갔다. 그러다가 정착한 곳이 감리교 조 모 목사님이 상동교회 방하나를 빌려 하는 회원교회에 다녔다. 당시 전과자들만 모여있는 교회였다.

    그러다가 1월 20일에 남산으로 잡혀갔다. 주머니에 있던 재야인들 명단이 있었다. 당시 책을 내서 보내려고했던 명단이었다. 사형제도를 비판하는 수필을 빌미로 남파간첩을 사형하는 것도 반대한다며 용공으로 3일간 고난을 당했다. 이후 한번더 끌려가서 서울구치소까지 갔다. 그리고 감옥안에서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필기도구가 없어서 손톱으로 맘에 드는 구절을 눌러가며, 옷이나 과자봉지에 딸려들어온 스티커를 이용해 표시를 하며 읽었다.

    1년이 조금 넘어 재판이 흐지부지되고 실업자가 된채 풀려났다. 여직원 하나와 출판사를 만들어 기독교서적을 출판했다. 공부를 한참 하다보니 신앙으로서의 기독교보다는 지식으로의 기독교로 길들어져가고 있었다.

    79년 10월 박정희가 암살되고 80년 전두환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끌려들어갔다. 자술서를 쓰는데 종교란에서 주춤거렸다. 당시 사건의 주전사건의 주전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나가서 법 잘지키겠다는 형식적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혼자 잡혀온것이 아니라 다같이 들어왔는데 “나 이런거 안쓰고도 법을 잘지키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만 김천소년원으로 이감시켰다. 80년 5월 10일에 출소했다. 특사로 풀려나게 해달라고 기도는 하나님한테 했는데 부처님 오신날 풀려났다.

    어머니는 시골 아주머니들 하듯이 정한수 떠놓고 유불선 종합종교의 신도였다. 외아들이었는데 며느리 들일때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하나님믿고 따르면 나이든 내가 따라가야지라고 해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는 곳에 교회가 없어 교회를 지으려고 터를 구하려 할때 언덕위 밭을 내어놓으셨다.
    83년에 복권이 되어 변호사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다니시는 교회로 같이 가자고 해서 양광교회로 온 식구들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억울한 일과 인권침해가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법개혁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지낸것이 나 혼자만의 힘이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말기, 6.25, 4.19, 6월 민주항쟁 등 여러 국난을 겪으면서 한번도 주류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런 성취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내 힘만은 아니라고 본다.


    - 의리의 신학!!

    믿느냐 않믿느냐?가 문제고 아는 신앙이냐 믿는 신앙이냐가 문제다!
    큰 알파 + 우리들의 작은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변호사는 피고인을 잘만나야된다. 의롭고 용기있는 피고인을 잘 만나다 보니 감화를 받아 내가 기독교인이 됐다. 그러면 그 피고인을 만든 사람도 공로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독재자한테도 공로가 있다. 빌라도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매번 빌라도에게 고난받아 죽으신 예수를 고백한다. 만약 빌라도가 없었으면 무죄받고 나온 예수에게는 십자가가 없고 부활이 없었을 것이다.
    힘들때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매달려서 하나님이 나를 도와줬으면 나도 힘들때 하나님을 지키고 버텨야되는 ‘의리의 신학’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맘편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서 고생하는 것이 믿음의 신앙이다. 사서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야 믿는 사람들의 도리가 있고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한다. 재물을 받치는 것보다 사랑과 의를 실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만큼 세상에서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사랑을 잘 실천해야 한다. 소극적인 신앙보다 사서고생하는 행함이 있는 신앙이 살아날 때 한국교회가 살아날 것이다

댓글 3

  • 박마리아

    2009.04.23 18:13

    아~멘!!
  • Profile

    강인구 ^o^

    2009.04.24 09:58

    나도 아~멘!!
  • 김동화(훌)

    2009.04.24 14:52

    아~아멘 이구요 !요즘 개교회 들이 개인 구원만 치중 하다보니, 세속화,지탄대상이 되는데 ...
    그래두 기장과 우리 성공회는 비슷한거 같아요 사회구원두 열씨미구요 공감백배^!^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32 김장환 엘리야 1179 2011-11-16
531 김장환 엘리야 1182 2008-10-24
530 양신부 1182 2009-12-01
529 김장환 엘리야 1183 2009-01-05
김장환 엘리야 1184 2009-04-21
527 김장환 엘리야 1187 2010-06-24
526 김장환 엘리야 1188 2009-11-05
525 김장환 엘리야 1188 2010-02-11
524 김장환 엘리야 1189 2009-11-21
523 김장환 엘리야 1191 2010-03-06
522 김장환 엘리야 1194 2009-03-13
521 현순종 1194 2009-07-27
520 김장환 엘리야 1194 2009-10-24
519 김장환 엘리야 1194 2010-04-04
518 김바우로 1195 2009-03-05
517 김장환 엘리야 1195 2010-03-10
516 김장환 엘리야 1197 2009-08-07
515 김장환 엘리야 1199 2009-02-05
514 김장환 엘리야 1202 2009-01-20
513 김장환 엘리야 1207 2009-01-16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