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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이 말하는 대안 경제는, “있다” - 희년경제학을 통해 보는 MB경제의 대안

  • 구교형(성서한국 사무총장)

    <출처:뉴스앤조이>


      
    1. 우리시대 최고의 화두, 경제

      한국교회의 아이러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위치를 매우 강조하면서도, 실생활에서는 거의 관계없는 듯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주일학교가 시작된 지 벌써 백여 년이 지나며, 다윗은 여전히 물맷돌로 골리앗을 물리치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입시지옥, 계급대물림 교육제도는 전혀 물리칠 대안을 주지 못한다.

      지금도 수 십 종에 달할 만큼 다양한 성경통독교재들, 연중 계속되는 성경통독수련회들, 각 교회들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성경필사(쓰기)운동 등 한국교회만큼 광범하게 성경을 배우고 익히는 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 베드로, 바울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경지식을 자랑하지만, 유독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도움도, 도전도 주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정이 그런데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긴 커녕 “원래 그런 것 아냐?”하며,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성경은 그저 교회생활이나 기독교인들만의 교양과 관련된 책으로 전락하였다.

      이제 우리시대의 화두인 ‘경제’문제로 한정해 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는 언제나 사람들의 최대관심사이지만, 근현대 이후 경제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서점을 나가보라. 경제와 경영에 관한 가장 전문적인 서적들로부터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생활경제 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책들. 친절하게도 어린이들에게조차 이미 수 십 종에 이르는 경제도서들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그 내용과 방향이 천편일률적으로 경제란 그저 ‘돈 잘버는 법, 부자되는 법을 가르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경제는 현대사회 최고의 중심주제가 된지 벌써 오래다. 그건 신앙인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이젠 제법 많은 목회자들마저 설교와 기도를 통해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문제는 교회와 목사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경제이야기들 역시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 교회와 성도가 부자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서 그 사상과 목적, 활용에 대한 가르침을 찾아야할 것이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그러한 소득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시도도 없다. ‘영적인 책’인 성경에서, ‘돈이나 버는’ 이 땅의 경제문제를 성경에서 언급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믿음 좋은 게 아니다.

      물론 성경은 경제교과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의외로 많은 경제사상과 제도화된 경제정신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을 주인(왕, 아버지) 삼고, 모든 인간은 그의 평등한 백성(자녀)되는 공의로운 하나님나라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공의로운 경제는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원대한 원칙, 구상을 일컬어 부르는 ‘경륜’(엡 3:2, 9/Okonomie)이라는 단어가 나중에 유신론적 배경이 탈색되면서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economy)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에는 하나님의 우주적 경륜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경제’를 단지 ‘돈벌이’(방법, 정신)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2. 희년사상은 오늘에도 살아있다.

      그 핵심에 희년사상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명령으로 인해 삶에 불필요한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지혜를 발휘한다. 바로 ‘그건 그 시대의 탁월한 제도임에는 틀림없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선긋기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세상과는 다른 제자도의 삶을 말씀하신 산상수훈(마 5~7장)의 경우와 바로 지금 살피려는 희년제도(레 25장)가 그렇다. 그러나 19세기 미국에서 활약했던 헨리 조지는 과거 구약 이스라엘 시대에만 한정된 것처럼 죽은 제도에 불과했던 희년사상을 현대에 다시 살려낸 대표적 사상가요, 운동가였다.

      그 후 다시 살아난 희년사상과 그것을 적용한 제도들은 여러 사회 속에서 실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예수원의 창립자인 대천덕 신부와 그를 따르는 제자그룹들에 의해 왕성히 실험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수명을 다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대안경제체제와 우리사회의 심각한 고질병인 부동산 광풍을 극복하는데 성경의 희년사상은 구체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출간된 ‘희년의 경제학’(안델슨, 도오시 공저/대한기독교서회)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뛰어넘는 현실적 대안경제체제로서의 희년제도를 제안한다는 면에서 가치가 있다. 흔히 현대경제에서 땅(토지) 문제를 제기하면, 이미 철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땅의 문제가 결코 흘러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요, “이 지구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가난의 최대원인은 100헥타르 이상을 보유한 2.5%의 토지 소유자들이 전 세계 토지의 약 3/4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2쪽).

      그래서 성경은 한사코 땅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후(수 6~12장), 그것을 신적 권위로 분배하셨다(수 13~22장). 그리고 하나님은 유독 땅은 내 것이므로, 한번 분배된 것을 너희 맘대로 사고팔지 말라신다(레 25:23). 하나님은 왜 유독 땅에 대해서 이토록 강하게 집착하셨을까?

      그것은 백성들에게 땅을 지켜주는 것이 이스라엘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것이며(70, 71쪽),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바로 섬기는 신앙에 직결되기 때문이다(86~89쪽). 땅을 사유화하는 것은 빈익빈 부익부의 토대를 놓는 것이며, 그것은 필경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물신화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장 극단화된 제도가 자본주의이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역사적 실험이었다.

      그러나 저자들이 보기에 사회주의는 성공하기 힘든 결함을 갖고 있다. 우선 ‘인간의 본성을 원래 고상하다고 보거나 아니면 거의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사회주의적 인간관’(160쪽)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결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결핍은 경제를 정치에 종속시킴으로써 생겨난 불가피한 결과’(161쪽)로 결국 제한불능의 과다한 힘을 갖는 특권계급을 형성시킨다. 이러한 지적은 현실 사회주의를 이해하는데 참 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자, 그렇다면 성경의 대안경제인 희년법 정신은 현대경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레위기 25장의 기록처럼 50년마다 토지와 부속가옥을 원소유주에게 돌리고 일체 빚을 탕감해 주는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헨리 조지 등 희년법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토지의 사적 소유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토지가치(토지를 통한 이익)를 땅 주인이 개인적으로 전부 누리는 현행 방식만 고치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땅(토지)이 갖는 특수성으로부터 비롯된다.

      땅은 누구에게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자동차는 생존의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원한다고 한없이 만들어 낼 수 없다. 인간의 수고와 상관없이 이미 하나님이 처음부터 인류가 공동으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땅은 필요에 따라 사용할 뿐이지, 그 땅의 값어치를 어느 개인 혼자 독점해서는 안된다. 도로를 만들고, 학교를 짓고, 도서관을 운영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등 다른 모든 사회활동은 사람의 수고에 따라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지만, 땅만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는 없고, 그저 필요한대로 사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땅의 값어치를 한 사람이 혼자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조지는 토지 소유권은 개인의 수중에 그대로 두지만 토지가치는 조세를 통해 환수해야 한다고 주창했다.…토지를 환수할 필요는 없고 단지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208쪽) 이러한 토지에 대한 세금이 좋은 것은 우선, 부의 생산을 위축시키지 않고 오히려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미사용 토지나 저사용 토지에 사용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직접 토지를 적절한 용도에 사용하거나, 아니면 다른 원하는 사람에게 개방하게 만든다.” 또한 징수하기 쉽고, 생산에 과다하게 매겨왔던 조세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에 관료기구에 들이는 공공경비도 절감된다.

      그리고 토지사용 실적의 확인은 비교적 쉽기 때문에 능히 집행할 수 있는 공세의 성격을 갖는다. 무엇보다 이 세금은 ‘사회가 창출한 가치를 사회가 거두고 또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조세’이므로 공평하다(212~214쪽). 그래서 헨리 조지 이후 호주, 뉴질랜드, 덴마크, 자메이카 등 이미 많은 나라들, 많은 도시들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여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진통을 겪으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러한 진통들을 보며 더욱 확신하는 것은 많은 경우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안경제도 마찬가지다. 천민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대안경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찾을 마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책을 통해 성경에 묻혀있는 보화인 희년의 경제학을 캐내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시대를 역행하며 질주하는 MB경제학을 대신하여 우리 사회를 살리고, 나아가 통일 이후 새로운 한반도를 살릴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유재산제도가 희년법보다 앞선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지금껏 교회를 많이 부흥시켰든, 유명한 설교자든, 한국교회사에 빛나는 원로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유일 신앙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법은 믿음으로만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희년의 토지법은 단지 사회 정의법에서 그치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원리다.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둔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년의 경제학”(대한기독교서회)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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