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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4월 2일] 사도 5:27-32, 요한 20:19-31 -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시는 부활하신 예수님
  • 조회 수: 2667, 2013-04-10 10:52:03(2013-04-10)
  • 1.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예루살렘은 확인할 수 없는 소식에 휘싸였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본 여인들과 제자들이 가까이 사는 신자들에게 “무덤이 비어 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 혹시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는지도 모르겠다.” 하며 소식을 전했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예루살렘은 예수의 빈무덤 사건으로 들썩거렸을 것입니다.

    2. 빈 무덤을 확인한 베드로는 나머지 제자들에게 몇 시에 어느 장소로 모이라고 전갈을 보냈던 것 같고 이에 토마스를 뺀 제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흘 전 자신들이 삶을 바쳐 따르던 예수님이 로마의 가장 극형인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본 제자들은 체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모두 닫아 놓고 있었습니다.

    3. 이 자리에서 베드로가 현장 증언을 했을 것입니다. “진짜 무덤이 비어 있었어요. 시신도 없구요. 다만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둘렀던 수건만 놓여 있었어요.” 이 때 빈 무덤을 보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된 요한은 “아마도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수의만 남겨진채 시신이 어디로 갔겠어요?”라고 말했을 겁니다.

    4. 그런데 그 자리에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근채 모여 있는 그들 한 가운데로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 평화의 인사말입니다. 체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평화인 것이죠.

    5. 인생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제 그들과 함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확인한 제자들에게는 이내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요한 20:20,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6. 이 말씀이 지금 이 시간 여러분에게 성취되기를 축복합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들 가운데 힘들어 하고 두렵고 낙심한 인생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분으로 인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7. 특별히 지금 분단으로 인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임하시어 평화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주께서는 무력이 아닌 정의와 사랑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루시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영을 우리나라에 내리시어 우리 민족이 하느님의 자녀로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하소서.”

    8. 이렇게 요한복음 20장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이른 아침과 저녁의 상황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에 관한 여러 사건을 기록한 이유를 말합니다. 
      요한 20: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9. 모든 종교에 다 경전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우주와 삶의 근원과 목적 등 철학적인 주제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들입니다. 물론 성경 안에도 그런 요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훌륭한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딤후 3:·16-17, 16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17 이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10. 그러나 성경이 기록된 또 다른 근본적인 목적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식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함으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구원을 얻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딤후 3;15, 그대도 기억하다시피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 왔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1. 실로 성경은 성령 하느님의 계시로 쓰여진 책이기에 그 책을 읽는 자에게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원자이심을 알게 하는 믿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런 간증이 많이 있는데, 한국교회 선교 초기 토마스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12.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나기 40년 전, 런던선교회 소속 토마스선교사가 중국 상해에서 선교를 하다가 아내를 잃고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를 믿기만 해도 참수형을 당한다는 조선에 대한 소식을 듣고 미국상선을 타고 대동강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제국의 힘을 믿고 막무가내로 들어온 그 상선은 대동강 군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충돌이 일어나 토마스 선교사는 끌려내려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3. 토마스 선교사는 죽기 직전에 가져왔던 한국어 성경 몇 권을 급하게 주변의 몇 몇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를 죽이려 했던 박춘권, 구경 나와 있던 소년 최치량. 
      
    14. 그 후 그의 목을 쳤던 박춘권은 성경을 읽고 주변에 그리스도인이 아무도 없는데도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만난 예수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결국 안주교회의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15. 소년이었던 최치량은 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서워서 당시 영문주사였던 박영식에게 건네주고 박영식은 종이가 귀한 시절이다 보니 성경을 뜯어서 사랑방을 도배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심심풀이로 벽에 붙어 있는 성경을 읽고 읽다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집이 넙달리교회가 되고 그 교회가 장대제교회가 되고 나중에 장대현교회로 성장합니다. 이 장대현교회가 1907년 1월 14일, 15일에 일어났던 평양대부흥의 기폭제가 되었던 교회입니다. 
     
    16. 사실 토마스 선교사가 이 나라에 와서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제대로 전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순교당하기 전에 성경 몇 권을 급하게 나누어준 것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책을 받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17. 이렇게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됨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 10:13-15,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14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읍니까? 또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로마 10:17,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18. 하느님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파견받은 전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신자들은 먼저 스스로 성경을 가까이 하며 성경을 통해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구원의 삶을 살아가며 또한 그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9. 오지의 선교사들이 전하는 소식들 중에 이런 보고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족장이 환상을 보았답니다. 환상에서 천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때가 오면 얼굴이 흰 사람이 너희 마을에 와서 하느님의 진리인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니 그 사람이 오면 영접하라.” 
      그래서 그 족장은 삼십년 동안 얼굴이 흰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한 선교사가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말하니까 그 족장이 “삼십 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하면서 영접했다고 합니다.

    20. 이처럼 천사들도 복음을 전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다만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복음은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전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어둠 밑 그늘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화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복음전파는 신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21.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말 다음에 하신 말씀이 바로 이 파견의 말씀입니다. 
      요한 20: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사도신경을 보면, 교회에 대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성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어느 시대의 교회이든지 교회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해야 하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했던 그 삶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 사도라는 말은 대사라고도 번역이 되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아포스톨’이라는 단어입니다. 요한 20:·19에 “너희를 보낸다”는 표현이 이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는 사도요 전도자인 것입니다. 

    24.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음으로 영생의 구원을 받았음을 믿습니까? 복음이 여러분 삶에 가장 소중한 것임을 고백합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 이웃에게 전할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전하고 있습니까? 

    25. 여러분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사도들로부터 배우게 되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1독서로 읽은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파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깸, 애, 말, 삶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26. 첫째, 깸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들은 상종못할 대상으로 여기는 유다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으로 구원을 받으니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하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인종적인 편견을 깨뜨린 것입니다. 

    27. 우리도 깨야할 편견이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하느님 없이도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입니다. 하느님 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입니다. 하지만 그들 내면 깊이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적인 공허감을 채우고자 끊임없이 ‘장난감’을 구매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명품 브랝드, 좋은 배우자, 건강, 웰빙, 힐링, 학벌... 이들에게 죽음 이후의 삶을 질문해보면 다들 회피한다. 그들이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한계 상황을 부딪치고 난 다음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장난감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8. 또 깨뜨려야 하는 편견은 나 자신에 대한 편견입니다. 내가 감히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내가 복음을 전하면 복음이 잘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이 천 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이 놀라운 소식의 증인일 뿐입니다. 믿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나는 다만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29. 두 번째는 애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근본적인 동기는 그들 곳에 애가 타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란 창자를 말하죠. ‘애가 끊어진다, 창자가 뒤틀린다’고 할 때의 그런 느낌이 애탐입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에 대한 애탐이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호구지책으로 고기 잡아 살던 어부였던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가는 위대한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예수를 대적하던 바울이 자신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으로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30. 여기에 하느님의 애타심이 더해집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일인 시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을 당신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시고자 자기 아들을 희생시킨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그분과 교제하고 있는 신자라면 그 마음에 하느님의 애탐이 더해집니다. 하느님이 애쓰시는 것처럼 자신도 애쓰게 됩니다.

    31. 세 번째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의회 앞에 가 서있는 이유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가르침이란 대단한 신학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죽인 예수를 하느님의 다시 살리셨다. 내가 다시 살아난 예수를 만났다.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은 예수 밖에 없다”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것을 간증이라고 합니다. 믿지 않는 분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쌓아가면서 하느님의 허락하시는 때에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예수님을 만나고 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32. 네 번째로 삶입니다. 
      삶이 따라주지 않으면 말이 공허합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삶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은 신자들은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는데, 성령은 우리에게 내적 외적 두 가지 차원으로 역사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은 은사와 능력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것이고 오늘 복음에서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내적인 것으로 인격과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33. 요한복음 20장 22-23에서 예수님이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가 사랑으로 네 원수를 용서하면 그 사람이 해방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34. 오늘 읽은 사도행전이 5장 말씀인데, 2장과 4장에 보면 신자들은 사랑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변화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기록을 보면, 예수 믿었다. 교인이 되었다. 교인의 숫자가 늘어났다 같은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2:47,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

    35. 매 주일, 하느님은 우리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십니다. 파견성가 전 파송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나가서 주님의 평화를 이룹시다. 나가서 주님의 사랑을 나눕시다.” 
      - 나의 대속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고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라고 하십니다. 

    36.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깸, 애, 말, 삶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이 땅에 평화와 공의가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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