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2년 1월 22일] 마르코 1:14-20다시 복음 앞에 서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
  • 청지기
    조회 수: 1815, 2012-01-27 13:01:17(2012-01-27)
  • 지난 주일, 다시 복음 앞에 서는 것이란
    예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님만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복음 앞에 서는 삶!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삶이란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친히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서 안식하는 평강의 삶을 누리게 되고
    나의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직 되는 것!

    오늘 마르코 복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복음이라는 단어가 2번 나온다.

    13절, 하느님의 복음
    14절, 이 복음

    에수님이 말씀하신 하느님의 복음 / 이 복음이 뭘까?

    14절,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의 실체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한국 기독교 안에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있다.
    하느님의 나라를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로 이해한다.

    물론 이 이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신자의 삶이 온전하지 않게 된다.

    하느님의 나라란 공간의 개념이 아니다.
    하느님이 다스리신다는 통치의 개념이다.

    왕이신 하느님,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있는 그곳에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한다.

    이스라엘을 세우신 하느님의 비전이 이것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만을 왕으로 경배하고
    하느님의 말씀만을 삶의 원리가 삼아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하느님의 공의와 평화를 누리는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것!

    그래서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이 하느님의 알고
    열방에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하느님의 꿈이었다.

    구약의 스토리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라고 회개를 선포하신
    하느님의 구원의 메세지다.
    오늘 1독서의 요나
    - 심지어 이스라엘의 원수인 니느웨 백성들에게까지 회개를 선포한 하느님의 종

    마르코 복음서의 요한 - 회개를 선포한 마지막 예언자

    이제 세례자 요한이 죽은 뒤에
    예수님이 하느님의 비전을 품고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셨다.

    14-15절,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그러면 하느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 땅에 실현되는가?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왔다’하지 않으시고
    ‘다가왔다.’고 하신다.

    ‘다가왔다’는 [엥기켄]는 [엥기제인]이라는 동사의
    현재완료 직설법 동사로서 '다가온다'는 동사의 완료로
    ‘이미 가까이 온 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그 통치가 이미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수 자신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이신 하느님으로서
    그가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지상 현현(現顯)을 의미하는 것이며,
    세상 통치를 목적하고 오신 예수의 출현은
    바로 하느님 통치의 접근을 의미하는 것이다.

    통치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성육신은
    바로 하느님 통치의 접근일 수밖에 없다.

    왕으로서의 세상 통치를 목적으로 하고 오신 예수는
    인간 속에 깊숙히 들어오신 것이고,
    문자 그대로 인간에게 이미 가까이 와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까울 뿐 완전히 도래하신 것은 아니다.
    완전한 통치는 피조물 자신이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상태에 들어가는 일로써 이루어진다.

    즉, 내가 하느님께 완전히 굴복하고
    그의 통치를 받는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는,
    예수가 나에게 가까울 뿐 아직은 거리가 조금이라도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통치가 바싹 다가왔다'고 말씀하셨고
    ‘완전히 임했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제 죄인된 사람들이 그의 통치에 굴복하고
    그의 통치를 받기로 결단하고 순종하면
    바로 그곳에 하느님의 통치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자발적인 복종과 굴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와 믿음을 선포하신다.

    하느님을 등지고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가던 삶을 돌이켜
    하느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이 회개이다.
    왕이신 하느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말씀에 희망을 두고
    순종하는 삶이 믿음이다.
    회개하고 믿는 자의 삶과 그가 속한 영역에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면 바로 그곳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평화와 공의가 가득한 하느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주의기도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런데 나라란 주권, 사람, 땅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앞서 보았듯이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바로 그 하느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람들을 찾고 부르셨다.
    바로 그들이 오늘 마르코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이다.

    어부였던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에서 되새겨지는 단어가 있었다.
    16절의 ‘보시고’, 19절의 ‘보시고’라는 단어이다.

    갈릴래아 호숫가에 이 네 사람만 살았겠는가?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많은 어부가 있음에도 이들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
    묵상 중 다윗을 부르실 때 하느님의 마음을 생각나게 하셨다.
    하느님이 사울을 대신하는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실 때,
    이새에게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사무엘을 통해 막내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다.
    그 때 하느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사무엘상 16:6-7, 그들이 나타나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바로 여기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성별하실 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야훼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마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고 이르셨다.

    속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
    즉, 인생의 태도, 자세, 마인드, 가치관, 관점 등등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과 안드레,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
    이들의 속마음이 어땠길때 주님의 눈길이 머물고
    그들의 하느님 나라의 동역자로 부르셨을까?

    같은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루가복음 5장을 묵상해보면,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먼저 자기에게 부여된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2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씼고 있었다.
    5절, 선생님 저희가 뱀새도록 애썼지만

    그리고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전한 사람들이었다.
    5절,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또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8절,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자기 일에 성실하고 순전하고 겸손한 사람들이었던 어부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느님은 우리 인생들이
    단지 먹고 사는 인생으로 살다가는 삶이 아닌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하느님의 동역자로 살아감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신다.

    마태 6장 33절,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삶으로
    하느님이 목적하시는 바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말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 앞에 서는 인생이다.

    2012년, 우리 각자의 인생이
    주님이 허락하신 삶에 더 충실하며
    주님의 말씀에는 우직하게 순종하며
    언제나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주목해 보시고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받아
    죄와 죽음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해 가는
    위대한 인생으로 변화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48 청지기 1711 2012-03-02
347 청지기 1711 2012-02-10
청지기 1815 2012-01-27
345 청지기 1621 2012-01-16
344 청지기 2091 2012-01-04
343 청지기 2165 2011-12-13
342 청지기 1681 2011-11-28
341 청지기 2027 2011-11-16
340 청지기 1681 2011-11-07
339 청지기 1530 2011-10-26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