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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8월 1일]루가 12:13-21어떤 탐욕에도 빠지지 말라!
  • 청지기
    조회 수: 1920, 2010-08-05 13:35:55(2010-08-05)
  •   고려시대 1342년(충혜왕 복위 3년) 역옹 이제현이 저술한 시화집 역옹패설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고 합니다.
      고려 공민왕 때 어떤 형제가 길을 가는데 앞서 가던 아우가 크고 작은 황금 두 덩이가 든 주머니를 주워 그 중 작은 금덩이를 형에게 주었다. 양화진(楊花津)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가던 중 아우가 갑자기 그 금덩이를 강물에 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괴이하게 여기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형님을 사랑함이 매우 돈독했는데, 지금 금덩이를 갖고 보니 사특한 마음이 생겨 그 우애에 금이가는 듯 합니다. 이간질하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강에 버린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네 말이 옳다'하고 역시 금을 강물에 던졌다.

      사람들이 따라야할 귀감이 되기에 기록에 남겨진 것이죠.
      우리가 역옹패설에 나오는 동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작은 금덩이라도 형한테 나눠줄 수 있을까요? 내가 발견한 거니까 내 것이 라는 생각이 가득차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는 이에 반하는 사건을 보도로 들었습니다. 동생 둘이 작당하여 정신이 온전한 언니를 정신병원에 가둬놓고는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을 모두 처분해 버린 사건 말입니다.
      
      재산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신명기 21장 15절-17절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 받는 자와 미움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미움 받는 자가 먼저 아들을 낳아 그녀의 소생이 장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재산을 그 아들들에게 상속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사랑 받는 자의 아들인 차남을 장자 삼아서 안되고 반드시 그 미움 받는  자의 아들을 참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며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 유산  상속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바로 이 구약 율법에 기록된 재산 분배법에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움 받는 자가 낳은 아들이 형이어서 그가 두 몫을 차지하고 자기는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가 낳은 아들이지만 차남이어서 한 몫밖에 받지 못한 것이 못내 불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로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 사람에게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예수께서는 재산분배요청을 해온 그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마음의 ‘탐욕’을 바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보실 때, 그 사람이 마음에 탐욕을 버리지 아니하면 결국 파멸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그러면 탐욕이란 무엇일까요?

      더 얻고자 하는 욕망 / 더 쌓아두려는 욕망을 말합니다.
      더 얻고자 하는 욕망은 쓰기 위해서 예비하는 것과 연관시킬 수 있다. 쌓아 두려는 욕망은 반대로 일반적으로 저장하려는 강렬한 정신과 연결되어진다.

      오늘 본문으로 보면, 부자는 탐욕의 사람이었습니다.
      18절,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
      19절,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탐욕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큰 사업 능력을 갖춘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장사에는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손안에서는 모든 것이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사업에 대한 열정도 있고, 돈을 버는데 그칠 줄 모르는 갈급함도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오직 더 버는 것이고,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이고, 사업체를 더 강화시키는 것이요, 그리고 그 자신의 사업 영역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그는 사업의 번창과 함께 쓰고 싶은데로 쓰며 삽니다. 처음에는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드디어 자랑 할 수 있는 사업 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구두쇠는 아닙니다. 정당한 노임도 주고 화려한 대접으로 유흥도 베풀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큰 돈을 기부하기도 해서 사회 각층으로부터 우러러 보이게 되고, 존경도 받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더 얻기를 사랑하는 사람, 탐욕의 사람입니다.

      반면 구두쇠들은 환상적인 먼지(돈을 말함)를 보며, 그것으로 마음과 눈을 기쁘게 하며 즐깁니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인색합니다. 그는 저축된 귀한 돈 뭉치의 일부를 쓰기보다는 넝마 조각을 걸치고 남 보기에 불쌍하리만큼 보이면서 거리를 누비는 사람입니다.
      그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돈 그 자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돈을 쌓는 재미로 삽니다.
      그의 지배적 욕망은 수많은 넝마 조각과 함께 죽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괴상망칙한 욕망이다. 이 역시 탐욕입니다.

      더 얻고자 하는 욕망, 더 쌓아 두려는 욕망을 탐욕이라 한다.

      주님은 이런 탐욕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유는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오히려 자족의 은혜를 가르치십니다.

      딤전 6:6-10,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크게 유익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 얻은 것, 더 쌓아 두는 것이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가치관도 더 얻는 것, 더 쌓아두는 것으로 쩌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탐욕이 가득합니다.  

      2. 그런데 이런 탐욕에 빠지면 사람은 어리석어 집니다.

      20절, 이 어리석은 자야!

      어리석다는 말은 지혜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시편 90:10-12,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누가 당신 분노의 힘을 알 수 있으며, 당신 노기의 그 두려움을 알겠습니까?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창조주 하느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유한한 피조물임을 아는 것입니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들, 제 속으로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말들 하면서,”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관심이 이 세상 물질에만 있습니다. 그 마음에 탐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젊고 야망에 찬 젊은이와 인생을 알고 있는 한 늙은 노인과에 오가는 대화가 있습니다.  
    젊은이 ; 나는 상업을 배우고 경을 익히겠습니다.
    노  인 ; 그리고 나서는 ?
    젊은이 ; 나는 상업으로 입신을 하겠습니다.
    노  인 ; 그리고 나서는 ?
    젊은이 ; 나는 재산을 이루겠습니다.
    노  인 ; 그리고 나서는 ?
    젊은이 ; 그리고 나면, 나도 늙어서 은퇴해서 내가 번 돈으로 여생을 자 지낼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  인 ; 그리고 나서는 ?
    젊은이 ; ........(대답을 못합니다)
    노  인 ; 그리고 나서는 ?
    젊은이 ; ........(생각해 보지 않은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다음 세계가 있다는 것, 하느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국 이 어리석음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그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이것입니다.
    20절,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3. 탐욕은 하느님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숭배로 인생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끕니다.

    우상숭배란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하느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죄악입니다.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탐욕은 자아를 숭배하는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을 가진 사람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더 얻고자 하고 더 쌓아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서신 골로사이서에서는 ‘탐욕을 우상숭배와 다름없는 욕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
    얼마나 자아중심의 사람입니까?
    내 창고(18), 내 모든 곡식과 재산(18) 내 영혼(19)
      
    성경이 말하는 죄란 자기 중심의 삶의 태도입니다. 자아 숭배자를 말합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19절)
    철저한 자기만족의 삶입니다.
      
    성경에서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자’라는 표현은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하느님의 명령과는 달리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드러내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22:12-14, “그 날 주 만군의 야훼께서 너를 불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베옷을 입으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도리어 기뻐 날뛰고 소와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내일이면 죽을 몸, 실컷 먹고 마시자.’ 하는구나. 만군의 야훼께서 나의 귀에 일러주셨다. "이 죄는 너희가 죽기까지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이는 주, 만군의 야훼가 하는 말이다.”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긴 사람의 최후는 어떻습니까?

    루가 16:19이하에 나오는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를 보십시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실컷 먹고 마시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죽음 이후에 죽음의 세계에서 겪는 영원한 고통입니다. 얼마나 그 고통이 처절한지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루가 16: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야고보서 1장 15절의 말씀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히브 9:27,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고 죽음 뒤에는 십판이 있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심판을 겪는 것이 탐욕으로 사는 사람들의 최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태 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4. 탐욕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내가 주인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이 찬양의 가사 그대로 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이 주인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어떠한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느님께 인색하지 않는 하느님께 부요한 삶을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된 삶은 나-하느님-이웃으로 왜곡되었던 우리의 우선순위를 하느님-이웃-자기라는 원래의 관계로 회복시켜줍니다.

    하느님에 대하여 인색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하여 부요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하느님께 인색하지 않은 삶은 물질로 표현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내가 받은 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라는 다윗의 고백으로 십일조를 봉헌함으로 나를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또한 선교와 구제에 헌신하는 삶으로 표현됩니다.
    잠언의 몇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4:31, 가난한 사람을 억누름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요 없는 사람 동정함은 그를 지으신 이를 높임이다.
    19:17, 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야훼께 빚을 주는 셈. 야훼께서 그 은혜를 갚아주신다.
    25:21-22,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주어라. 그것은 그의 얼굴에 모닥불을 피워주는 셈이니, 야훼께서 너에게 갚아주시리라.
    28:27,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쉬운 것 없겠지만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도여행은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를 탐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주님의 은총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주님의 음성에 따라 어려운 주님의 교회를 돕는 일에 생명과 같은 시간을 내고 생명처럼 여기는 물질을 봉헌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기뻐하시고 기억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탐욕을 버리십시오. /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재물은 은사입니다. 은사는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의 의지에 따라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혹 주님의 계획이 있으시면 우리를 부자로 세우시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다만 지금 내게 허락된 것이 주님의 최선임을 알고 감사하십시오.
      주님을 경외하며 가진 것이 적어도 하느님에 대하여 부요하십시오.

      루가 6:21,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마태 5: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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