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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11월 8일] 과부의 헌금 - 자신의 존재를 봉헌한다는 것
  • 청지기
    조회 수: 2077, 2009-11-11 15:56:32(2009-11-11)
  • 과부의 헌금 - 자신의 존재를 봉헌한다는 것 - 오상운신부
    (마르 12:38-44, 히브 9:24-28, 시편 127, 롯기 3:1-5, 4:13-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제 소개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저는 서울교구 춘천교회 출신입니다. 청년시절 대부분을 춘천에서 살았고 1987년도부터 성당에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1998년도에 세 명의 신부님 (김홍일신부님, 현재는 대전교구에 계시는 윤정현신부님, 그리고 당시 관할사제이셨던 박성순 신부님)의 권유와 기도, 더불어 성소에 대한 고민 속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전도사로 발령받은 첫 부임지인 춘천교회에서 노숙자 쉼터 일을 하면서 춘천나눔의집을 꾸리는 데 함께 하였습니다. 저에게 나눔의집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포천지역에 서울 대성당 교우가 4만여평의 땅을 기증하면서 김홍일 신부님이 포천지역에 새로운 나눔의집과 더불어 공동체 및 쉼터 활동을 제안 받게 되었고 저는 2002년도부터 포천에 들어와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소개는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성공회 서울교구 나눔의집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9월에 요즘처럼 낮에는 조금 덥고 저녁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 어느 날, 서울 북쪽 끝자락에 있는 상계동 도깨비시장엔 특별한 미래가 이미 예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성공회 청년들과 젊은 신학생들이 하느님 나라가 더 이상 교회 안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교회 바깥세상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작은 응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 앞에 스스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을 다짐한 젊은이들과 소리 없이 이들을 도와 준 많은 성공회 교인들의 힘으로 현재 나눔의집은 서울교구에만 9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신 신부님과 교우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눔의집 이름의 유래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1986년 당시 나눔의집을 준비하던 분들 가운데 한 분이‘미사(Missa)의‘성체 나눔’때 성체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순간 자신의 등짝에도 통증이 느껴졌답니다. 그때‘나눔의 의미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체 나눔 즉, 타인을 위해 겪는 고통과 죽음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 마음으로 이 사회와 교회가 변화하기를 희망하면서‘나눔의집’이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저희들에게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제는 어려운 사람들도 정부에서 다 도와주는데 아직도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냐고요? 물론 나눔의집을 처음 시작할 당시보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절박한 한계상황에 처한 가난한 이웃들은 우리들 주변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한 저소득 주민들을 법적으로 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현재 마련되어있기는 하나 그 혜택을 보는 사람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외된 사각지대의 빈곤층이 몇 배나 되는 실정입니다.
      또한 우리 포천지역에 많이 계시는 외국인노동자나 탈북자들도 여전히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제가 사는 포천에는 외국인이주노동자가 무려 만오천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전에 산동네나 저희 포천 같은 농촌지역은 그래도 시골마을 같은 공동체적 분위기가 남아있어서 동네에 어려운 이웃이 생기면 주위의 이웃들이 나서서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핵가족화 되고 개인주의화가 심화되어서 누가 굶고 있거나 병으로 방치되어 있어도 관심 가져주는 이가 없어서 한참 지나서야 발견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가장의 실직이나 질병이 생기면 가정이 파탄나고 가족이 해체되기 일쑤고, 그러면 아이들은 오갈 데 없이 방치되고 맙니다. 그래서 경제가 나아진다고는 하지만 나눔의집과 같은 곳이 점점 더 필요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은 과부의 헌금에 대한 이야기지요. 오늘 설교준비를 하다가 오늘 복음말씀이 역시나 우리 나눔의집 전체에게도 똑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을 요청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44절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아시다시피 오늘 복음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지점이지요. 우리 나눔의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나눔의집이 정부의 위탁사업비를 받고 이를 전달해주는 전달자로만 머무른다면 오늘 과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지 못하는 것이며 아마 예수님께 큰 꾸중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설사 많은 일, 많은 재원을 나누지 못하더라도 가난한 이웃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 때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비를 맞는 것이지요. 물론 우산을 함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비를 맞아 보아야 비 맞는 사람들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며 나아가 비 맞는 사람들과 일체감 속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현장에서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좀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면 우리들 존재의 전 나눔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전에 어느 중견실무자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나눔의집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초기 3개월 동안이나  실제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지요. 진짜 아무일도 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주민들 속에서 주민으로 살아가려는 태도와 품성을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어떤 실무자가 나눔의집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늦게까지 술 한잔 걸치고 언덕너머 높은 골목길을 오르고 있자니 많이 본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고 합니다. 바로 신부님이었지요. 그래서 몰래 그 뒤로 가까이 가 보았더니 그 늦은 시간에 어떤 동네 아저씨 두 분이랑 열심히 대화도 나누시고, 그들을 위로하시면서 함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나눔의집에 남게 되었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우리 실무자 선생님들을 볼 때 참으로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간혹 밤중에 알콜릭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 나온 모자가족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우리 여자선생님들이 그들을 비좁은 자기 집에 며칠씩 숨겨주곤 합니다. 그런가하면 저녁7시에 공부방이 끝나고 밤에 집에 들어가 봐야 마땅히 돌봐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닙니다. 그러면 그게 안타까워서 그 아이를 때론 몇 달씩 데리고 사는 선생님들을 볼 때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어떤 후원자들은 한 아이와 멘토 관계를 맺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생이 된 이후까지도 10년 넘게 친동생처럼 돌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저희 나눔의집의 활동과 헌신이 지역에서 조금씩 알려져서인지 어떤 날은 경찰서에서도 전화가 옵니다. 노숙자 쉼터가 없는 포천에서 늦은 시각에 발견된 노숙자를 어찌해 볼 수 없으니 제발 우리 나눔의집이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연락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몹시 추웠습니다. 어떻합니까. 도와주어야지요. 그래서 우선 우리 실무자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사무실에 불도 피우면서 덮고 잘 이불을 긴급하게 모아서 이 분들을 재우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초기 나눔의집의 대부분의 사업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어린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의 마음을 따라 배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눔의집 일을 하면서 많은 안타까움도 느끼지만 또한 커다란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월세를 못내 쫓겨나는 사람들을 위해 백방으로 모금을 하러 다니고, 갑자기 발생한 큰 수술 앞에서 어찌할 방법을 몰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과 여러 후원자들을 섭외해서 무사히 수술을 시키고 나면 정말 흐뭇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저희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결과 사업이 늘어나서 실무자도 많아지고 특히 정부나 복지재단에서 위탁받는 사업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헌신적인 초기 정신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우려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가급적 외부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월급이 적더라도 후원금으로 유지되는 사업의 비중을 계속 늘려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처음으로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전에 춘천에서 일할적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노숙자 쉼터 운영 책임을 맡으며 처음에는 열정과 헌신으로 노숙자들을 대했지요. 점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어느덧 제 자신이 행정가로, 그들을 대상화시키는 상담가로 전락해 있음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와 상담하던 어느 노숙자가 상담을 마치고 나서 불쑥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날 취조하는 경찰 같다고 합니다’ 진정 도와주려는 사람은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상담실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순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멸감과 더불어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잠도 못 이루었지요. 그렇게 반성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날 어느 기사에서 읽었는데 프랑스에서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시는 어느 신부님의 글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노숙자들을 위하여 홍보와 후원활동은 기본이고 열심히 돌보느라고 정신없이 바쁘신 신부님이 이상하게도 1년에 한 달 이상 잠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다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어느 기자가 신부님이 어느 노숙자들과 함께 있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가 보았더니 그곳에서 노숙자처럼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자가 물었지요, ‘아니 할 일이 많으신 신부님께서 왜 그들과 함께 사십니까? 혹시 신부님도 알콜릭이신가요? 하며 약간 조롱하듯이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난 단지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으로 남으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오. 성직자는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지요. 그것도 바로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비천하고 외롭고 가난한 곳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저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저로선 신부님의 말씀도 그렇고 함께 노숙인들과 사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프랑스 신부님의 이 말의 의미와 태도를 제대로 깨닫기에는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은 과부의 모습 속에 바로 자신의 전 존재를 이들 노숙자들에게 투신한 신부님의 모습을 함께 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바로 우리 나눔의집이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내어놓고 나누었던 신부님처럼 우리들 전 존재를 나누는 곳으로 살아가라고 일깨워 주시고 있습니다. 나눔의집이 단지 지원하는 사람으로 머물지 않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 속에 함께 있으라고 합니다. 이처럼 ‘나눔의집 운동’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나의 것을 내어놓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자 시작된 일입니다. 그것도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 가진 것 모두를, 아니 나를 내어놓는 일이 바로 나눔의집이 해야할 일이자, 나눔의집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 나눔의집이 이러한 일을 한지 20년이 넘도록 기도와 후원으로 아니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았던 그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모든 후원자들, 자원봉사자들, 교우님들, 신부님들에게 다신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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