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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적 천국 이해 3 - 이민규교수
  • [예수는 제자들이 거할 곳을 준비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고, 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다(요 14:2-4). 혹시 이 "거할 곳"이 천국의 호화 주택들은 아닐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14:3).

    “아버지 집”은 어디일까? “하늘”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아버지 집”은 하늘이 아니다. 아버지 집은 구체적으로 성전을 의미하거나(요 2:16), “아버지의 가족된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요 8:35). 그렇다면 요한복음 14:3절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그의 새로운 성전, 새로운 가족에게로 데려 가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새 성전, 새 가족 안엔 거할 곳이 많다.

    또한 여기서... “거처”라고 번역된 monai는 결코 화려한 주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King James Version은 이른 현대 영어로 대저택들을 의미할 수 있는 mansions로 번역했늗데 17세기 영어에서 mansion은 소박한 가옥을 뜻했다. 거처로 번역한 헬라어 monai의 뜻은 주로 “소박한 가옥들”이나 “방들”(room)의 의미 중 하나다. 천국에서 상상되는 초호화 주택은 아니다. 그리고 이 용어가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거주한다는 내용이다. 이 용어(mone)는 14:23절에 다시 한번 언급된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리라”라는 은유로 사람을 “거할 처소” 삼겠다는 의미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따라서 이 본문은 예수님이 "하늘”에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천국 처소를 만들러 가겠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이 부활 후 우리를 위해 준비한 처소가 되시겠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이 내용은 14:2-4에 바로 이어지는 14:18-19의 내용을 참조해서 보면 조금 더 확실해 진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혹시 예수님이 제자들을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 12:18)”는 말씀이 재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요한은 분명히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알고 있다(요 5:28이하; 요일 2:28 참조).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신실한 제자들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실 때(18,2), 마지막 재림 이전에 살아있는 제자들에게 오시겠다는 말이다. 그들은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과 현실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 12:19절).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의 거할 곳이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지니는 이런 깊은 의미는 오로지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님과 하나됨을 체험한 제자들만 알 수 있다(21,22-24절. 1,12,15절 참조).

    새 성전 "아버지 집"은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부활하신 이후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의 처소가 되셨다. 요한복음 14장에서 두번 나오는 거할 곳이라는 뜻은 예수님이 부활과 승천을 통해 직접 우리가 거할 예비하신 처소가 되신다는 의미,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보혜사 성령을 통해) 예수님 자신의 처소, 그의 현존, 그의 방, 혹은 집이 될 것이란 뜻으로 보인다.

    요한복음은 왜 이리 엉뚱하고 수수께끼같은 언어를 사용할까? 이런 엉뚱함과 묘함은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사마리아 여인과의 소통에서도 항상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셨다.


    비록 근거는 몹시 희박하지만 설사 “아버지의 집”을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로 본다 해도 처소는 천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집이 아니다. 헬라 문화에서 이 용어는 주로 잠시 머무는 거처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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