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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제자의 삶" (대 천덕신부님, 10주기를 기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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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요셉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저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대 천덕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저는 무척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할 뿐입니다. 대 천덕의 제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성경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의 유일한 길이 성경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완전히 닳도록 쓰임받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스승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올바로 사용한다면 성령을 따르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서 사도행전 15장 28절 말씀대로 '성령의 뜻이며 우리의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머리말 중에서)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졌던 2002년 8월 6일, 대 천덕신부님이 소천하신 후 어느새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해 5월 성령 강림일(예수원 설립 기념일)에 쓰러져 뇌출혈로 약 3개월 동안 원주와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고 정동의 성공회 대성당과 예수원에서 장례 미사(예배)가 진행되기 까지 마치 큰 파도가 치듯 기도가 확산되고 문병오는 분들이 끊이지 않고 줄을 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세월이 흐를 수록 마지막 순간까지 소명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면서도 항상 가정에 충실했고, 평생을 중보 기도에 헌신하며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선포하고 가르치면서도 유머와 관용을 잃지 않았던 신부님과 함께 생활했던 시간들이 새롭고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산골짜기 예수원에서 함께 공동 생활을 하며 함께 예배드리고 회의를 진행하며, 공동 식사를 하고 때로 여행을 하면서 이분이 얼마나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사는지,그리고 얼마나 친밀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지 볼 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 저의 신앙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상처가 많았던 불교 가정에서 성장한 저에게 신부님의 '성령론','공동체 신학과 코이노니아','희년과 사회 정의'.....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강의도 도움이 되었지만 언제나 솔직한 질문을 할 수 있었고,대화와 상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제 신앙의 기초를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사역자와 공동체의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과, 이성 문제와 험담이 공동체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예수원의 공동 생활과 신부님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간경화증으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님 아래에서 성장한 저에게 (많은 사역과 일 가운데에서도) 자상한 남편이자 자녀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양육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끝까지 충실했던 신부님의 모습은 결혼 후 저의 가정 생활에 지금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지요.

      
    신부님이 소천하신지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 볼 때 대신부님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사는 가운데 개척자요 신실한 중보 기도자로서 달려갈 길을 완주하신 분이었습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존중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하셨지요. 큰 교회에도 자주 초청 받으셨고 대통령 조찬 기도회나 국회,국토 개발 연구원,외무부 신우회에서도 강의를 하셨지만 작은 교회나 지역 사회 모임을(심지어 마을 노인회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특히 시골의 미자립 교회나 대학생,청년 모임의 초청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강의와 상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치의 선생의 권면 때문에 (집필에 전념하면서) 많은 강의 요청을 줄여야 할 때도 "한국 교회의 미래와 소망이 '다은 세대'인 청년들에게 있다"고 하시며 대학,청년부 모임의 강의 요청은 가능한 수락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심장 판막 이상으로 인해 폐에 물이 차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하이데라바드에서 대부분 불가촉 천민 배경의 가난한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인도하시며 열정적으로 강의 하시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프리카 베넹 공화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인 대통령을 전도해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흑인목사님이 예수원을 방문한 후 대신부님을 초청한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인도에서의 일정에 이어서 베넹 공화국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음에도 프랑스 파리에서 갈아 타고 가야하는 비행 거리가 너무 멀고 (베넹은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아주 가난한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임) 신부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너무 무리한 일정이라고 말씀드렸을 때 "공산주의와 부두교 우상 숭배로 무너진 이 불쌍한 나라를 하나님의 법으로 새롭게 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님이 주셨다"고 하시며 강행할 것을 요구하셨지만 결국 가지 못하게 되어 몹시 안타까워 하셨지요(나중에 베넹 공화국을 방문한 로렌 커닝햄목사님에게 신부님이 준비한 자료들을 전달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통일 한국과 특히 제 3세계의 '가난'의 문제를 희년과 성경적 경제 정의의 실행을 통해 해결하려는 열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서울 세브란스 병원의 영안실에서 신부님의 시신을 염하는 방에 벤신부님과 함께 들어 갔을 때 (안 애단신부님이 성공회 예식을 집전하고 있었지요) 신부님의 시신을 깨끗이 닦아내고 수의(한복)으로 입히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자신의 몸을 주님의 제단에 온전히 드리는 가운데 불꽃 처럼 살다 가신 분'이란 생각이 밀려 와 "He consumed whole his body!" 라고 곁에 서 있는 벤신부님에게 작은 소리로 말한 적이 있었지요.

      
    국제 두나미스 사역,전국 공동체 연합 모임,희년함께,소액 대출 은행,사랑의 집짓기 운동,성령 쇄신 봉사회,삼수령과 네번째 강 프로젝트....등 대신부님이 남기고 간 영적 유업을 이어 가는 사역들이 계속 진행 중이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대신부님의 추모 예배와 추모 음악회 전에 22회 '희년 학교'가 많은 참석자들이 등록한 가운데 예수원에서 진행된 것 또한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천국의 거실 벽난로(?^^) 앞에서 대신부님과 현 재인사모님이 함께 다정하게 '티 타임'을 하시면서 흐뭇해 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대신부님, 현 재인사모님!!!


    (추모 음악회에서 연주해 주시는 신 상원선생님, 재인사모님을 위해 신부님의 묘지에서 첼로를 연주해주셨고 찬양 예배 때도 감동적인 연주를 해주신 것 잘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 버니의 좋은 친구로서 늘 예수원의 벗이었던 송 정미사모님 또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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