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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다원 사회에서 바람직한 삶! - 퍼온 글
  • 종교 다원 사회에서 바람직한 삶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우선, 종교 다원주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될 필요도 있고, 동시에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다원적 상황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수 있겠지만, ‘종교 다원적 상황’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옆에 불교 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종교인이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 신자들도 정말 진심으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샤머니즘을 따르는 사람들, 무속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도 거짓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서 따르고 있다, 그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정을 해줘야 한다” 이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인정한다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우리가 타 종교에 대해서 정말 신사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첫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실 불교가 진리냐 기독교가 진리냐 하는 것을 놓고서 우리가 이론적으로 토론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끝날 수가 없는 토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삶을 통해 진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리를 증거해야 하지만,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삶이 없다면 그 진리는 아주 공허한 진리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근본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진리의 개념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서양 말 ‘Truth’를 일본에서 진리(眞理), 즉 ‘참된 이치’라고 번역한 것인데, 이렇게 번역하니까 진리라는 것이 마치 어떤 명제로 표현될 수 있고 이론으로 확인될 수 있는 실체인 것처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진리’(히브리어로 ‘에메트’)라고 하는 것은, 어떤 명제적인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하다’, ‘신뢰할 만하다’라는 뜻입니다. 또 성경에서 참된 포도나무라는 것은, 그 포도나무가 생물학적으로 순종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농부가 시절을 따라 물을 주고 열심히 일을 하면 가을에 가서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포도나무, 신뢰할 만하고 믿을 만한 포도나무, 믿을 만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라는 것입니다. 껍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 찬 것을 일컬어 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신약 성경에서도 진리를 이야기할 때는, 단순한 어떤 법칙으로서의 진리보다는, 오히려 “진리를 행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참된 행위를 행하고, 참된 열매를 맺는 것으로써,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 참임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한국 교회가 실패했습니다. 말로는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진리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삶에서 그 열매를 맺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도전과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외부에서 제기하는 도전들의 배경에는 서구의 흐름, 즉 짧게는 200년, 길게는 500년이 된 근대성(modernity)의 문화라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는 지난 500년간 서양의 근대성의 문화가 빚어 놓은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 하나의 사상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한 결과가 결국 현재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라는 고백과 반성입니다.




    - - 선교 50주년 전후로 한국 기독교의 신앙패턴에 커다란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6.25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와 목회자의 신앙은 말세 신앙이었습니다. 임박한 예수의 재림에 대비하고 이 세상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 설교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6.25를 경험하면서 우리 삶의 기반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그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우리의 신앙이 기복적인 신앙으로 전환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현세 중심의 신앙이 자리 잡은 것이 결국 오늘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데 아주 중요한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한국 교회,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입니다. 자기 교회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는 사실 신앙과 철저하게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다면 그건 참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경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과부와 고아를 환란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게 자기를 지키는 것이 경건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그 ‘자기의 모습’은 이기적 자아가 아닙니다. 남을 생각하고 남의 고통을 헤아리는 삶이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삶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서 아까 질문하신 대로, 한국 교회가 계속 외부로부터, 특별히 각종 미디어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사실 다원주의적인 상황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말에 대한 불신’입니다. 말로 전하는 것이나 이론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말로 하는 전도보다는 삶으로 하는 전도, 기독교 신앙이 참되다는 것을 실천 속에서 보여 줘야 하는 과제가 일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에 얽매여 사는 모습이 아니라 물질을 초월할 수 있는 초연한 삶, 검소하고 절제된 삶,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 근본적인 기쁨과 즐거움, 정말 영혼 깊숙한 데서 기쁨이 표현되는 삶을 보여 달라는, 어떻게 보면 그런 절실한 요구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이중적인 심리가 있는 것이지요. “너희들은 잘하길 바랐는데 너희들마저 이러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것입니다.



    ---- 오늘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우리 사회의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상 가장 심각한 무신론은 교회 바깥에 있는 무신론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무신론, 즉 실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입니다. 이 말은 칸트가 처음 썼는데, 말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생각과 행동, 인간 관계에서 실제적 무신론자의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이 대다수인 한 교회는 빛과 소금의 존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실제적 무신론에서 벗어나서 실제적 유신론자가 된다면, 삶과 실천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되심을 아주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에서 드러내 보이는 삶으로 전환한다면, 이론적인 무신론자의 공격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교회를 채우지 않는 한, 다시 말하면 교회를 채우고 있는 실제적 무신론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 오는 무신론의 도전, “너희들이 믿는 것은 하나의 신화이고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교회를 괴롭힐 것입니다.


    [출처] "하나님을무시하는 시대"를 이야기하다 - 강영안

댓글 1

  • Profile

    김바우로

    2010.08.24 15:10

    많이 공감되는 글입니다.
    "종교 다원적 상황"이 오히려 우리들을 참된 신앙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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