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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오랫만에
  • 조회 수: 1784, 2003-09-08 18:44:00(2003-09-08)
  • 생명 단상

    텃밭을 키우면서 새로 버릇이 생겼는데 공유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가끔씩 글을 올려 보려합니다.

    2주전에 내가 근무하는 빌딩의 옆 사무실에서 화분을 하나 복도의 내려가는 계단 중실에
    내놨어요.  '이게 뭐야?'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소철이었습니다. 소철아시죠? 집집마다 십자가에 끼워 놓으신 따가운 이파리 말입니다. 꽤나 큰 놈이었는데 제가 놀란 이유는 이놈이 글쎄 내가 생각하는 소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와 있어서예요. 촘촘한 생선가시같은 모습이어야 하는데 가시는 없고 척추부분만 길게 주욱 늘어져 흐물흐물하게 대여섯 가닥으로 꼬여가지고서는 옆으로 쓰러져 있더라구요. 밑의 줄기부분에는 곰팡이가 잔뜩 끼어있구요. 화분은 번쩍 번쩍하니 좋은것이었습니다. 답답하고 가슴이 막혀왔습니다. 이놈도 이곳에 올때는 그 진녹색의 이파리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을텐데  보는 사람들이 '참 장하다'라고 칭찬받았을 만 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안돼 보였습니다.

    우리 사무실의 막내가 꽃집 아가씨입니다.  부모님이 구로동 어디에선가 꽃 가게를 하신다죠?  특명을 내렸습니다.  가서 보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려 원인과 대책을 알아와라 라고 말입니다.

    원인은 햇빛 부족과 수분 과다랍니다. 역시 대책은 햇빛을 쏘이고 물을 덜주면 된다네요.

    용감하게 가위를 들고 나가서 그 흐늘 흐늘한 이파리를 과감하게 잘라냈습니다.
    그리곤 화분을 창문 옆으로 옮기고 팻말을 꽂았습니다 "아무도 물 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틀이 지났어요

    깜짝놀랐습니다.  잘린 잎대 사이에서 뭔가가 삐죽 내밀었어요. 아!  그것은 새로운 이파리였습니다. 보송 보송한 은빛 솜털에 쌓여 머리를 내민 이파리!  아기가 손을 말아 쥔것처럼
    불과 2Cm 정도의 길이 안에 앞으로 펼쳐질 장한 그 모습을 잉태하고 말입니다.
    우습죠?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가위질 후에 그 놈은 정말 죽은놈이었었거든요.  시커먼게 화분에다 썩은 파인 애플을 거꾸로 꽂아 놓은듯한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놈이 그 거칠고 마른 잘린 가지 사이로 그런 기적을 솟아 올린겁니다. 조심 조심 여린 새 생명을 쓰다듬었습니다.  저릿하게 나를 뒤흔든 느낌은 생명이었습니다. 식물이 움직일리 없건만 순간적으로 나의 손끝을 툭하고 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날 점심 식사후에 그놈과 마주 앉았습니다.  불현 듯 우리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오데요.
    적당한 햇볕과 수분을 공급받고 있는건지에 대해서 말이예요. 물을 안주고 햇빛에만 나가있으면 말라죽고 빛이 없는곳에 물만 들이 부어대면 썩어죽는 소철처럼  나는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하고있는건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역시 더 나아가 교회가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잠깐동안의 시간이었지만 한번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생명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대로, 나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내가 살아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Profile

댓글 4

  • 임용우(요한)

    2003.09.08 19:07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볼 수 있다는 것도 주님의 은혜인것 같습니다.
  • Profile

    김바우로

    2003.09.09 07:53

    아... 거 친구 마음이 참 예쁘군... ^^
  • Profile

    김종현

    2003.09.09 12:49

    있어야 할 장소에 옮겨놓은 베드로씨의 마음이 신앙인의 기본인것 같슴다.
    모두들 본받으시길....ㅋㅋㅋ
  • 박의숙

    2003.09.09 14:17

    아고, 신통하고 예쁜것 .
    얼마나 감동적이었을지 공감이 팍 =3 오네요.
    생활의 감동을 통해 진리를 깨우치는 지혜가있으시네요.
    오빠!
    내가 오빠 팬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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