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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11월 27일] 고전 1:3-7, 마르코 13:33-37 깨어 있는 삶이란?
  • 청지기
    조회 수: 1681, 2011-11-28 15:59:33(2011-11-28)
  • 대림수주일  

      피정에서 돌아와 보니 지난 한 주간 제 마음을 슬프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 났더군요. 그 중에 어머니를 찔러 죽인 아들의 사건은 대학입시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버린 이 땅의 교육 현실 가운데 부모나 자식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 너무 마음이 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의 잘못된 사고와 인격은 자식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임을....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건강한 인격으로 회복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엊그제 금요기도회 중에 주님이 우리 공동체에 주신 마음이 이것입니다.

      “너희의 부족함, 연약함, 열등감이나 일그러진 인격들을 감추려 하지 말라. 지체들 앞에서 정직하게 보여주고 나누는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희 서로는 그 연약함을 받아주고 안아주고 채워주는 너그러움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주시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며 주님 닮기를 원하는 갈망으로 이번에 주님이 마련해 주신 건강한 인격과 행복한 삶을 위한 하느님의 치유세미나에 나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치유세미나 안내 글 :  < 차박사는 “건강한 인격의 소유자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주며 화목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며 비판적이며 병든 인격의 소유자는 매사에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며  
    “건강한 인격을 갖기 위해선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번 세미나에서 우리는 건강한 인격을 만드는 하느님의 지혜를 배우며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시켜주시는 하느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모두 등록하시어 주님의 인격으로 회복되어 가는 치유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은 대림 1주일입니다. 대림절이란 ‘예수 성탄 대축일’ 전 4주간을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 첫 주일을 처음으로 한 해의 전례 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교회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사 - “예수님을 닮아가는 새해가 되십시오.”

      잠시 대림 절기를 좀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대림절 4주 동안 제대 주위의 화려함을 피하고 ‘대영광송’을 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는 사철나무 위에 4개의 초를 마련하는데 사철나무는 인간에게 내려질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의미하고 네 개의 초는 구약의 4천 년을 뜻합니다.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 밝힘으로써 구세주께서 가까이 오셨음을 알려 주고 마음의 준비를 갖도록 해 줍니다. 대림 시기 동안 사제는 회개와 속죄의 뜻으로 자색 제의를 입습니다.

      ‘대림’은 ‘도착’을 뜻하는 라틴 말 ‘아벤투스’(Aventus)에서 온 것으로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곧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대림 절기 동안 읽게 되는 성경 본문들은 모두 종말과 관련된 말씀 들입니다.

      오늘 서신을 보면 초대교회 선조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엿 볼 수 있습니다.
       고전 1:7-8, “모든 은총의 선물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도 여러분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끝까지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날을 고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예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초대교인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정도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eagerly wait for‘
      
      초대교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과 설레임으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온 생애는 사실 대림의 삶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이렇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계시나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믿음을 종말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이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진정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는 온전한 믿음일까요?

      교회력에 대림절기가 생긴 이유가 분명한 것이죠.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교회의 모습 때문에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이 생긴 것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는 신자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온전케 되지 않으니까. 대림절기를 통해 그 신앙을 온전케 하고자 함인 것이죠.  

      실상은 우리들의 매일의 삶이, 전 생애가 대림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대림을 살아가는 신자는 “깨어있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마르 13:33, 그 때가 언제 올는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어라.
      마르 13:35, 집 주인이 돌아올 시간이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혹은 이른 아침일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마르 13:37, 늘 깨어 있어라.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깨어있는 것일까요?

      먼저 종말이 언제 올까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어야 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아버지만이 아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알 영역이 아닙니다. 이 말은 미래에 관한 주관자는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종말의 때를 알려고 한다든가, 미래에 대해 알려고 하는 그 모든 시도들은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큰 죄악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점치는 것을 엄히 금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으로는 다 같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깨어있으라’는 말들이 다 다릅니다.

      33, Be on guard! Be alert! 개역성경 :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여기서 주의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블레포'란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눈을 띄지 않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맹수들이 사냥할 때 먹이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기회가 오면 먹이를 덮치는 것처럼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눈을 띄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은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말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잡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는 주어질 때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회는 아무나 잡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사람,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잡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언제 임할지 모르는 주님의 날을 언제라도 맞이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깨어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레오 톨스토이가 쓴 그의 단편, 『세 가지 질문』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불확실한 시간일 뿐이지만, 지금 경험하는 이 시간은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만난 사람은 이미 지나갔고, 미래의 만날 사람은 불확실할 뿐입니다. 오로지 지금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 가장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톨스토이는 이것이 인간이 세상에 온 유일한 이유라고 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깨어있는 삶이란 적극적인 의미에서 주어진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만남과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축복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음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만남’과 ‘하는 일’에 대하여 자신이 바친 사랑의 깊이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35, keep watch.  37, 'Watch!'
      여기서 깨어있으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그립프네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졸음을 쫓아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 길을 걷다 보면 때로 영적으로 졸 때가 있습니다. 때로 깊은 잠을 잘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큰 일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 비유처럼 신랑을 기다리다 졸던 다섯 처녀는 결국 신랑을 맞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졸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하실 때 주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깨어있는 대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이지요?
      
      톨스토이의 삶을 엿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젊은 날에 학문과 재물과 명예와 권력 등을 추구하며 러시아 상류층의 사교계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등 세속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골 농부의 단순하고도 경건한 삶을 보면서 참된 인생이란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을 깨닫고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삶에 예수님이 주인되시며 주옥같은 문학 작품을 통해 성경적인 가치를 나누고 실제로 인생의 3가지 질문의 답처럼 깨어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생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에 오늘 마르코복음의 24-25절의 말씀처럼 해와 달이 어두워지며 별들이 떨어지며 전체가 흔들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해, 달, 별 - 이것들은 고대근동국가에서 종교적으로 숭배하던 우상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참 빛이 아닌 만들어진 빛인데 인생들이 예속되어 있던 권력이었습니다. 해는 이집트의 상징, 달은 바벨론의 상징, 별은 점성술 등으로 인생의 생사화복을 묻던 것들입니다. 즉 인생들이 자신의 세속적인 성공과 풍요를 위해서 추구하던 것들을 상징합니다.
      내 인생에 우상처럼 추구하던 이런 것들이 어두워지고 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참 빛이신 예수님이 임재해야 합니다.

      마르 13:26, 그러면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생들이 참 빛이신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야 깨어있는 삶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 인생에는  만들어진 빛들이 어두워지고 천체가 흔들리는 듯한 재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참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오시고 그 임재 안에서 거듭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어둠과 재난도 은총이 되는 것입니다.
      
      대림절기 동안 우리 모두 깨어 있는 믿음을 회복하여 우리의 전 생애가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진정한 대림의 신앙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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