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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성서와 토지 - 마태 19:22
  •                                                                     신현우(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마가복음 10:22에 등장하는 헬라어 단어 ‘끄떼마’가 과연 토지를 뜻하는지 재물을 가리키는지 알기 위해서는 마가복음에 나타난 ‘끄떼마’의 용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단어의 뜻을 추측하기 위해서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끄떼마’의 용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마가복음의 저자가 읽은 성서는 신약성서가 아니라 구약성서였으므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끄떼마’의 용례는 마가복음 10:22의 ‘끄떼마’의 뜻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서는 마가복음과 동시대(1세기)에 저술된 헬라어 작품들로 되어 있고, 모두 기독교인들의 작품이므로 이 작품들은 동일한 단어를 비교적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끄떼마’의 용례는 마가복음 10:22에서의 ‘끄떼마’의 뜻을 추측하기 위한 보조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 ‘끄떼마’는 네 번 사용되었다. 마가복음 10:22을 제외하면 마태복음 19:22, 사도행전 2:45; 5:1에서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19:22은 마가복음 10:22의 평행본문이다. 즉, 마태복음 19:22은 마가복음 10:22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행전 2:45과 5:1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발생한 일들을 다룬다.


      
      마태복음 19:22

      그런데 그 젊은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왜냐하면 그는 ‘끄떼마따’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사역).


      ‘끄떼마따’는 ‘끄떼마’의 복수형이다. 마태복음은 다른 곳에서 ‘끄떼마’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이 단어가 마태복음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 용례를 살펴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뜻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9:22의 문맥을 살펴보는 길밖에 없다.

      본문에 의하면 젊은 사람이 슬퍼하며 떠나간 이유는 ‘끄떼마따’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떼마따’를 많이 가져서 슬픈 이유는 예수께서 그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21절). 그러므로 ‘끄떼마따’는 팔 수 있는 소유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는데, 이 젊은이에게는 소유가 매우 많아서 이 말씀대로 행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끄떼마따’가 팔 수 있는 소유라면 그것은 최소한 돈은 아니다. 돈은 파는 것이 아니라, 팔아서 받는 것이다. 팔 수 있는 소유는 돈 이외의 재물인데, 특히 토지이다. 팔아서 돈이 되는 것은 토지이기 때문이다. 귀금속이나 보석도 팔면 돈이 되지만 이러한 것은 팔지 않고도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팔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끄떼마따’는 아마도 토지를 가리킨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명령이 주어진 맥락은 율법을 지킴과 관계된다. 예수께서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는데(17절), 이 계명들은 특히 10계명 중 5~9계명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18-19절). “온전하고자 할진대” (즉 이러한 계명들을 온전하게 지키기 원한다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명령을 따라야 한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는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는 젊은이의 질문과 관련된다. 이 질문은 “이 모든 것” 즉 앞에 언급된 계명들을 지켰는데 아직 어떤 점에서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부족한지 묻는 것이다. 이 부족함을 채우고 온전하게 계명들을 지키기 위한 방도로 제시된 것이 바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특히 염두에 두어진 계명은 앞에 제시된 계명들 중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면 자기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나에게 재물이 많고 이웃이 가난할 때 나의 재물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많은 토지를 가지면 분깃이상으로 토지를 소유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율법은 토지의 경계표를 이동시키는 것을 금한다.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명기 27:17). 나의 토지를 넓히고 이웃의 토지를 좁히는 행위, 즉 경계표를 옮기는 행위는 저주를 받을 행위이다.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만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토지를 많이 가진 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더더구나 토지를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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