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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구 게시판에서...(펌)
  •                   우리 곁에 온 선한 사마리아인들


                                                                                      윤정현 신부 (성공회 신학아카데미원장)


    사목활동 하는 동안 제가 만난 하느님은 가난한 이웃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사랑하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작품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통해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 곁에 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정교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글이었습니다.
    오늘복음 말씀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그 예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시간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우리 성공회는 부정적이고 자해적인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안 돼, 우리 성공회는 어쩔 수 없어” 등등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성공회 안에 자랑스러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교단 경우에는 전기를 쓰고, 영화화하여 많이 홍보하였는데, 우리 성공회는 훌륭한 신앙유산을 가지고도 역사화하거나 자료화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역사적 인물을 연구하여 인물전을 내고, 살아 있는 역사로 말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자랑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1890년 9월에 고요한 주교와 함께 인천에 도착한 젊은 의사, 랜디스(Eli Barr Landies, 1865-1898)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랜디스는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랭카스터 공립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평신도 선교사로서 한국에 왔습니다.
    ‘남득시’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을 위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일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1890년 10월 10일 병원을 개설하고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개원한지 2개월 만에 136명을 진료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질병에 고통을 겪고 있던 한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남득시 선교사는 25세의 나이에 쉴 틈 없이 사람을 돌보다가 아쉽게도 한국에 온지 8년 만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다했습니다.
    낮선 문화, 기후와 음식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복음을 위해 그는 헌신을 다했습니다.
    한국에 온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1895년 기록에 의하면, 북장로교가 3개의 병원에서 339명을 진료하였고, 북감리교가 2개 병원에 116명을, 우리 성공회가 3개 병원(성루가, 성마태, 성베드로 병원)에서 796명을 진료한 것으로 나옵니다.
    성공회 선교사의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서울의 성마태병원의 10년간(1893-1902)의 진료수는 무려137,981명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로스(Arthur Laws, 1868-1948) 선교사는 외과의사로서 1897년에 한국땅에 오셨습니다.
    ‘노인산’이라는 한국명으로 1899년 한 해동안 온수리를 중심으로 3,528명의 환자를 진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였습니다.
    노인산 선교사는 한국말을 잘 몰라도, 한국사람이 아프다고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얼굴표정, 말하는 몸짓 하나 속에서 환자의 아픔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가난한 한국사람을 사랑했기에 측은한 마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한국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의 정성어린 진료는 사람들을 교회로 발길을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의 의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감화력이 있었습니다.
    1909년 11월에는 진천에 애인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지금은 진천교회 입구에 수위실과 같은 돌로 지은 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이 자연광을 이용한 수술실이었습니다.
    당시 진천 전도구는 70개 마을에 800여명의 영성체수를 가졌습니다.
    노인산 선교사 역시 우리에게 온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원, 학교, 교회, 고아원 등을 모금으로만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요한 주교는 14년 동안 모금을 통해 이 일을 하였으나 1904년에는 모금하는 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모금의 한계는 선교의욕을 잃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1904년 고요한 주교는 사의를 표명합니다.
    사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럿이 있겠지만, 자구책 없이 모금으로만은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모금하는 데는 여의치 않고, 선교사들은 떠나거나 한국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는 일들은 선교의욕을 상실케 하는 원인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카나다 출신 의사 애비슨(Avison)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아 현대적인 ‘세브란스병원’을 새롭게 건축하고 개원하였기 때문에 성공회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병원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병원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 고요한 주교로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 성공회의 역할은 6.25 전쟁 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박바우로(John Paul Burroughs, 1916- ) 신부의 활동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바우로 신부는 옥스퍼드 성애드몬드홀 대학출신으로 1951년 35세의 나이로 부산에 왔습니다.
    성니콜라스 구호소를 설립하고 사회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일종의 나눔의 집의 활동과 푸드뱅크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지요.
    1953년 박바우로 신부는 충주교회 관할사제(1953-1958)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되면서, 전쟁고아들을 안중고아원에 인계하고 충주교회로 갔습니다.
    안중고아원은 1951년 12월 15일 개원했을 당시에 원생들이 115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안중, 수원, 서울 등에 고아원을 운영하여 전쟁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였습니다.
    1954년에는 소록도에서 나온 음성나환자 30명의 생활터를 마련하기 위해 박바우로 신부는 동분서주하였습니다.
    당시에 박바우로 신부는 오토바이로 자갈길 도로를 달리며 음성나환자의 생활터전을 마련하러 다녔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1958년 청주로 임지를 옮겨 1959년 영국으로 떠날 때까지 그의 정열적인 사회봉사활동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은 버림받은 나병환자를 거두는 사람은 다름 아닌 벽안의 선교사였습니다.
    누구도 접근하지 않고 누구도 돌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서양 선교사였습니다.
    나병환자의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박바우로 신부님의 노력은 천갈로(Charles Roger Tennant, 1919-2003) 신부님이 북한에서 월남한 음성나환자 15명에게 1960년 2월 24일 식량을 지원하면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0정보의 임야와 12동의 가옥을 건축하여 ‘성생원’은 1963년에는 25세대 80명의 규모가 되었습니다.
    성생원은 주민자치공동체를 이루는 기본적인 정신 아래 독립적인 운영을 주민 스스로가 하였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입니다.
    이 당시 노대영 신부와 노정빈 선교사가 왕래하면서 신앙 지도를 하고 진료도 하였습니다.
    교회가 사회봉사를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는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들도 증가하였지만, 재정의 문제로 사회선교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교회도 위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말없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성공회는 1986년 상계동에 나눔의 집을 설립하면서 사회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고 오늘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나눔의 집, 자활후견기관, 푸드뱅크 등이 우리의 손으로 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이미 성공회 선교초기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 인물들이 살아 있도록 하는 인물연구 하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1890년 초기에 선교사들에 의해 사회선교가 있었습니다.
    사회선교 제1 물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물결은 6.25 전쟁이후 한국복구 사업에 참여한 선교사들에 의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 3물결은 1980년대 도시빈민 지역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하였던 나눔의 집 운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 운동이 있는 곳에 새로운 운동이 있었고,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정적인 사고에서 긍정적인 사고로 우리의 신앙유산을 전하고 말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온 자랑스러운 선한 사마리아인이 많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실천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내리는 이 법은 너희로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미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 가서 그 법을 내려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도 말라(12).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이 바다를 건너 가서 그 법을 가져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도 말라.
    그것은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서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1-14).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나의 입에 있고, 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오는 것도 아닙니다.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해외로 나가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아 합니다.
    100년 전에 우리가 도움을 받았듯이 우리도 나가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간이 좋은 직장을 갖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다인가요?
    우리 사회도 출세 위주의 가치관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 의미를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이 있습니다.
    젊은이는 세상을 향해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여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직접 나서지 못하면 후원자가 되어 함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후원, 재능으로 후원, 물질로 후원 등 다양한 후원이 합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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