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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추]영국성공회 탐방기 3 - 제주교회에서 퍼온 글!
  • 영국 성공회의 '저교회' 탐방기 -
    대한성공회 제주교회의 대안모색

    영국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 요셉 주교님과 다시 합류했습니다. 그때 주교님께 나의 느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속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한국 성공회는 1/2 성공회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직관은 계산된 생각하고는 다르다고 봅니다. 온전한 직관은 그동안 닦아온 영적 수련 또는 영적인 민감함에서 나오는 판단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서설이 긴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제 개인의 느낌이 저의 직관일 수도 있다는 구실을 굳이 찾는 것입니다.

      1) 그동안 속았다?
    “그동안 속았다”는 것은 영국 성공회 안에서 고교회와 저교회는 분명한 실재였는데, 왜 한국 성공회는 주로 고교회만 이야기했는댜 하는 점입니다. 영국 성공회에서 저교회는 작은 분파가 아니라 전체교회의 중요한 부분인데, 이 사실을 선배 성직자들께서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 개인의 경우, 제대에 촛불을 켜는 순서 등에 대해서는 교회와 학교에서 배웠는데, 성서를 묵상하는 방법 등은 솔직하게 배운 적이 없고 다만 개인적으로 알아서 한 것이 전부입니다.

    김진만 교수님이 쓰신 ‘성공회 이야기’의 54쪽부터 57쪽까지에 ‘저교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잉글랜드 교회 안에 고교회-가톨릭파와 함께 막강한 세를 과시하는 저교회-복음주의파가 있다. ‘하이 처치 맨’에 대항해서 ‘로우 처치 맨’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진 것은 18세기 초였다. .....
      잉글랜드 교회에서는 개인적 회심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특별히 힘주어 고백하는 사람들을 복음주의 파라고 한다. 18 세기 영국인들의 생활과 교회의 성직자들은 게으르고 세속적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태동한 것이 복음주의 운동이었다.  ......
      복음주의 파의 종교적 열정과 경건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존 웨슬 리가 사람들의 빈축을 샀듯이 복음주의 파의 지나친 열정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 19세기에 복음주의 파는 해외 선교에 큰 역할을 했다. SPG와 쌍벽을 이루는 ‘교회 선교회(CMS)'는 그들이 세운 선교 단체이다. 그리고 사회사업에도 큰 공을 세웠는데, 노예 해방과 공장 노동법의 제정 등에서 그들이 보인 열성과 공헌은 대단한 것이었다.
      복음주의 파는 전통적으로 로마 교회를 의심하고, 가톨릭 교리와 교회의 회복을 주장한 옥스퍼드 운동, 그리고 고교회 가톨릭파의 교리를 배격한다. 1906년에 일단의 성공회 성직자들이 성공회 복음주의 그룹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들은 복음주의를 지나친 보수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경제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추구하려 했고, 모든 교인들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전통적인 저교회-복음주의의 엄청난 발전이다. 그래서 고교회와 저교회의 이분법이 점점 무의미해져 온 것이다.  ..... 이제 교회의 예식으로 교회의 고, 저를 가리기가 어려워졌다.”

      2) 1/2 성공회?
    “한국의 성공회는 1/2인가?” 김진만 교수님이 명시한 것처럼, “잉글랜드 교회 안에 고교회-가톨릭파와 함께 막강한 세를 과시하는 저교회-복음주의파가 있다.”는 것을 한국 성공회 안의 성직자와 신자들 가운데 얼마나 알고 계실까요? 뉴밀레니엄에 들어선 지금 영국 성공회 안에서 저교회가 자리매김하는 그 비중은 매우 크고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성공회는 1/2 성공회인가?”하는 자성이 자꾸 일어나나 봅니다.
      리영희 교수님은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책을 쓰셨습니다. 많은 신부님들께서 사회과학이론에 정통하신데, 정작 한국 성공회는 한 쪽 날개만 가진 교회가 되는데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요? 성공회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좌우 날개를 지닐 때, 그 나라에서 더 온전하고 중심 잡은 교회로 비상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3) 내용과 형식의 쉬임 없는 변증법
      내용과 형식은 어느 일방의 우세라기 보다는 쉬임 없는 변증법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봅니다. 인간의 창조과정을 떠올려 봅시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 “진흙으로” - “사람을 빚으시고” - “그 코에 하느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사람의 내용은 하느님의 형상입니다. 사람의 형식은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이 때로는 타락하여 하느님의 형상을 잃기도 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합니다. 사람의 형식은 날로 쇠퇴해 가지만, 그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집니다. 이렇게 내용은 형식을 세워주고, 형식은 내용을 드러내줍니다.

      교회야말로 내용이 형식을 꼴 지운다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는 형식이 내용을 항구하게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교회의 의미 있는 모습은 교회의 내용, 즉 복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성공회가 고교회의 틀만 114년을 고수한 것은 이제 그 지력이 많이 쇠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영국 저교회에서 몇 번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한국 성공회는 대부분 고교회이라면서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국 성공회가 대개 SPG라는 선교단체를 통해 선교된 고교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 성공회의 고교회는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형식은 고교회이지만 내용에는 저교회의 속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아무튼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와 같다고 한 마디로 말하기도 어렵고, 영국 성공회의 저교회와 비슷하다고 말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4) 제주교회를 위한 몇 가지 대안 모색

      (1) 말씀이 왕성한 교회가 되어야
    사도행전에 반복하여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말씀이 세력을 떨쳐, 말씀이 왕성하여” 라는 묘사입니다. 저교회를 일컬어 ‘복음적이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결과이거나 비웃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매우 짧은 탐방이었지만, 성 마리아 교회, 그리스도 교회, 성삼위일체 교회, 제령 교회 모두 ‘주님의 말씀이 왕성하다’는 공통된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내부의 제대 부분의 성구배치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교회들이 설교중심이란느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 주일의 각 예배의 순서라든지 그 안배를 보아도 매우 설교가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 중심이라든지, 말씀의 왕성함 같은 것이 목회적 기술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의 내용은 말씀에서 나오고, 교회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도 말씀인 것입니다.

      제주교회는 이런 깨달음과 성찰을 통하여 ‘설교 중심’, ‘말씀 왕성’의 교회를 더욱 지향하고자 합니다. 그 실천방안으로 주일 예배의 변화입니다. 성찬식을 주일에 월 1회, 주중에 1회로 조정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른 주일 예배의 형식과 내용을 말씀 왕성, 설교중심으로 변화를 주고자 합니다. 주일설교는 중요한 절기에는 성서정과를 따르되, 다른 주일에는 강해설교 내지 연속적인 주제 설교, 또는 목회자의 선택에 의한 본문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침기도회 시간에는 ‘큐티나눔’의 방식을 도입하고, 큐티나눔의 모임을 신설하고 확장하고자 합니다.

      (2) 성찬식 위주의 주일미사에서 말씀이 왕성한 예배로
      목회자가 성사집전자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제, 신부라는 의미보다는 목자라는 의미가 충분하게 강조되고 회복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일에 미사 한 번 드리면 그것으로 성직자도 신자도 자족하고 말아서는 안됩니다. 예배 중에 하느님을 만나고, 삶의 용기와 희망을 회복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3) 저교회-복음주의 파 교회를 지향
      지난 번 해남에서 서울까지 도보순례를 하는 도중에 크게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습니다. 집에서 가지고 간 배낭과 짐이 너무 무겁고, 신발은 거꾸로 너무 얇아서 이런 것들을 나누에서 거의 다 바꾸어야 했습니다. 짐의 무게를 완전하게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배낭을 꼭 맞는 크기로 줄였고, 점퍼, 핸드폰 충전지, 여벌 옷가지 등을 과감하게 그 가지수를 줄여야 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아니 도보순례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했습니다.

      교회의 하중을 줄이는 작업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나친 하중은 교회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제자리 걸음 내지 현상유지에 빠지게 만듭니다. 제주교회는 이제 갓 2살도 안된 교회입니다. 제주교회는 많은 하중을 다 감당하기가 힘에 버겁습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은 과감하게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에 때가 되면, 내려 놓았던 그 짐을 다시 찾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교회는 ‘저교회 - 복음주의파’ 교회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이 일이 선언한다고 하루 아침에 복음주의적 교회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 먼 여정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4)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차선은 최선의 최악의 적일 수 있습니다. 물론 차선이 최상의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앞 길을 놓고 볼 때, 제주교회는 차선이 아닌 최선을 찾고 지향해야 할 중요한 때입니다. 제주교회가 찾아야 할 최선의 길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본질’, ‘성서의 정석’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줄 압니다. 기존 성공회의 성직자나 신자들이 보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많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주교회는 영국 성공회 안에 있는 ‘저교회-복음주의파’를 지향하고자 선언합니다. 그래서 더 온전한 한국 성공회의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물 댄 동산 같은 교회, 예수님의 몸다운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닐까요?

      형제자매님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리라 희망합니다.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교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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