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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12 월 25 일 성탄절 설교문
  • 2013년 12월 25일 요한 1:1-14

     

     

    예수님을 품는 성탄을 이루라!

     

    어제 저녁에는 경건하게 성탄 망일 노래만도를 드리고 아주 즐거운 성탄전야축제를 가졌습니다. 핵생회가 캐롤로 시작해서 다채롭게 준비한 주일학교의 발표와 아버지들의 난타 공연, 2, 3여선교회의 율동 등 못보신 분들은 아쉽겠지만 참석한 교우들은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로 설교 후 3명의 유아들이 세례를 받아 하늘 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을 올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배 후에는 플로윙의 시간을 갖고 산타가 다음 세대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줍니다. 특별히 오늘은 김영덕-박명숙 부부께서 초대하시고 여선교회 임원들이 준비해 주신 육개장으로 애찬을 나누게 됩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하여 풍성한 축제가 되게 하여 주신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해마다 산타 선물을 준비해 주시는 이흥준 콜롬바 원로회장님 가족에게, 애찬을 봉헌하여 주신 여호수아 루디아 님과 여선교회 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설겆이를 하게 될 남선 임원들께도 미리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박수!

     

    이렇게 풍성한 축제를 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사람들은?(퀴즈-어와나) 가난한 목동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새벽 미명 가장 어둡고 추울 때 천사들은 노숙을 하면서 노동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목동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장 일차적인 관심이 가난한 자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아주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 땅의 교회를 통해, 지금도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태풍으로 피해입고 신음 중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추위와 굶주림과 김정은 절대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북한의 동포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석 구석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소식으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는 15분의 교우들과 함께 수원역 노숙인 방문을 했었는데요. 마침 용인에 있는 조계종 미륵사에서 동짓날이라고 팥죽 200인분을 제공해주셔서 저희가 나르고 배식하고 준비해간 떡 음료 과일 등을 나눠드리고 왔습니다.

     

    돌아오면서 드는 생각이 성탄이라고 한번 들리는 일회성행사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방문하고 섬기는 일들이 교회의 공식적인 사역으로 정착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날입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이 오늘 성탄절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하느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하느님을 무시하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려고 오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요한 1:12,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우리가 그 분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영접할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데 그 특권의 내용을 말해 줍니다.

     

    1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예수님에게 충만한 은총과 진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으면 나는 은총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아침기도 때마다 즈가리야의 노래를 교독합니다. 루가 1장에 기록되어 있는 즈가리야가 예수님이 탄생을 기뻐하며 예언한 말씀입니다.

    퀴즈) 즈가리야는 누구의 아버지?

    “78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79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기도서에는 ‘우리 하느님의 애절하신 자비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애절하신 자비! 바로 이것이 성탄에 나타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성탄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로 이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그 사랑의 감격으로 은총이 충만한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두 번째 특권은 진리의 삶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진리의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어제 원이어 통독 본문이 요한 3서였습니다. 요한 3서 2절은 한국교회에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나는 사랑하는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되어 나가기를 빕니다. 또 그대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건강하기를 빕니다.” - 개역본 한 번 더.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초대교회 지도자를 칭찬하여 기원한 축복문입니다. 사도요한이 이렇게 까지 가이오를 칭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한3서 3-4, 3 교우 몇 사람이 와서 그대의 진실한 생활 곧 그대가 진리를 좇아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해 주어서 나는 무척 기뻤읍니다. 4 내 자녀들이 진리를 좇아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바로 가이오가 진리 가운데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주님을 영접하면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게 되면서 이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은총 가득한 삶!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살아가며 삼박자의 축복을 받는 삶!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누리게 되는 특권이고 성탄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이 바로 이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면서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크게 다투고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일년 동안 그들은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정을 쌓는 데는 수십년이 걸리지만 그 우정의 탑을 발로 차 버리는 것은 1분이면 족하다.' ...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금방 끝장입니다.

    1년이 넘도록 서로가 상종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어느날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는데 마음에 가책이 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해서 되겠는가?' 그는 깊이 뉘우쳤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 그는 친구와 다시금 화해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해를 위해서 자기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아무런 답장이 없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친구에게 화해의 편지를 썼습니다. 때로는 길게 쓰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짧게 쓰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십여 통의 편지를 보내었지만 친구에게서는 아무런 답장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다 못해서 이 사람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밤, 도무지 그날 밤을 그대로 넘기면 안될 것 같아 눈을 맞으며 꽤 멀리 떨어진 친구의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에 있던 친구가 문을 열어 보니 자기 친구가 눈을 소복이 맞고 오들오들 떨면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친구의 얼어붙었던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아 내리게 되었습니다. 급히 그를 집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굳은 악수를 하고서 그 동안의 모든 오해를 풀고 서로 화해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전의 절친했던 친구사이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다시 우정을 회복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너무 낮아진 자리에서 자기와 평화하기 위해서 찾아왔기 때문에, 그 앞에 녹아지지 아니할 사람의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줄 압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화목하시기 위해서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직접 우리를 찾아오셔야만 했습니다. 그 분은 누구이십니까?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이 그림 많이 보셨죠? 홀만 헌터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그림입니다. 그림은 굳게 닫힌 문이 있습니다. 대문이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열어본 일이 없어서 그 밑에 잡초가 우거졌습니다. 굳게 닫힌 문을 밖에서 등불을 들고 두드립니다. 노크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대문은 밖에 손잡이가 없습니다. 안에서 열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손잡이가 없는 문, 그 대문 밖에서 등불을 들고 기다리고 두드리고 있습니다.

     

    요한묵시록 3:20,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 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문 밖에서 두드립니다. 여러분이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 삶에서 일어나야 하는 성탄입니다.

     

    하느님의 애절하신 자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심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은총과 진리라는 특권을 누리는 성탄을 이루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댓글 1

  • 김장환엘리야

    2013.12.29 13:34

    성탄 망일 만도 설교문

    시므온 : 기다림의 사람들 눅 2:25-30

    인생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으로 우린 서로를 만납니다. 기다림으로 생명이 태어납니다. 기다림으로 자라나고, 기다림으로 성숙하고, 기다림으로 드디어 사람이 됩니다. 기다림으로 인생의 꽃이 피고, 기다림으로 인생의 열매를 맺고, 기다림으로 인생의 길이 열리고, 기다림으로 새로운 세계에 나아갑니다. 인생에 기다림이 없다면 살아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인생은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다림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의 주로 임하심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임하심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온전히 세워질 것을 기다립니다. 주의 나라와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을 기다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다림의 대가(大家)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릴 수없는 중에 25년을 기다려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어둠의 감옥 속에서 13년을 기다려 애굽의 총리로 세워졌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려 출애굽의 리더로 부름 받았습니다. 욥, 다윗, 다니엘, 이사야, 느헤미야, 하박국, 사도 요한, 바울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기다릴 수 없는 중에 기다려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시편 43:5,

    저는 한때 기다림은 수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약한 사람들의 체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급함이 인생을 망칩니다. 아브라함의 조급함이 불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 인류역사의 큰 불행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조급함이 언제나 교회를 망칩니다. 그래서 인생을 향한 프란츠 카프카의 지적은 다시금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다.
    다른 모든 죄도 여기서 나온다.”

    기다림은 도리어 사람을 성숙케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물론, 기다린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태도로 기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기다림은 믿음, 소망,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소망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면서 말씀에 뿌리를 내립니다. 기다리면서 기도합니다. 기다리면서 준비합니다. 기다리면서 실력을 쌓습니다. 기다리면서 믿음이 굳세어지고,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기다리면서 인품이 성숙해집니다. 기다리면서 그날이 더욱 가까이 옴을 느낍니다. 드디어 기다림이 헛되지 않아 정확한 타임 포인트에 하나님은 만나주시고, 나로 새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시므온, 평생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그분을 만나 감격하다

    본문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역시 기다림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25절)
    그는 나라를 빼앗기고 주권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위로자, 곧 그리스도가 오심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 무슨 뜻입니까? 예수는 탄생할 아기의 인간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탄생할 아기의 직분 명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왕 선지자, 제사장이신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는 예수는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시므온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림은 그의 삶의 이유요 목적이었습니다(25-26절).

    시므온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평생을 예루살렘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태도로 살고 있습니까? 의롭고 경건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이미 하루하루를 그에 합당한 삶으로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깨어있었고,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그의 생애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기다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고, 드디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까? 성전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27절)
    시므온은 태어 난지 8일 밖에 안 된 아기 예수가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눈에 그 아기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인지 성령으로 알아보고 감격하여 덥석 품에 안고 찬송을 합니다(29-32절).

    이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성탄절은 기다림의 시간이요, 그 기다림의 실현을 눈으로 직접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그리스도를 만나 감격하여 찬송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시므온의 감격(29-32절)을 공동번역으로 함께 읽어봅시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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