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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22일 회개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
  • 2013년 9월 22일 루가 15:1-10

     

     

    회개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


     

     

    추석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명절을 지내며 오랜 전 읽은 글이 있는데 기억에 남아 나누고 싶습니다.

     

     

    숙종이 어느 날 암행을 나갔다고 합니다. 성내의 고대 광궐 기와집을 지나 성 밖 초가산간의 어떤 집에 이르렀는데, 살짝 열린 문 사이로 희미한 등잔불이 비치고 그 안에서 오순도순 대화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사는 사람들이 뭐가 그리 기쁠까 궁금한 숙종은 헛기침을 했더니 한 남자가 나왔습니다. 그에게 ‘뭐 좋은 일이 있소?’하고 물었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열심히 일해서 빚도 갚고 저축도 하면서 사니 그 아니 기쁘겠습니까?’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열린 문으로 방을 들여다 보니 볼품없는 가세에 차린 것 없는 밥상인데, 온 가족이 웃음 띤 얼굴로 둘러 앉아 있더랍니다. 숙종은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빚도 갚고 저축도 하면서 저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기특하게 여기며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궁에 돌아온 숙종은 그 가정이 계속 생각이 나 며칠 후 신하를 불러 그 가정에 대해서 조사해보도록 시켰습니다. 신하는 돌아와 ‘그 가정은 늙으신 부모와 부부, 3자녀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저축하기는 커녕 자기 땅도 없이 소작을 하며 어렵게 사는 집’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숙종은 그 농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고 싶어 다시 암행을 나가 그 집에 갔습니다. 역시 찬도 없는 조로 된 저녁밥을 먹으면서 오순도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가족을 보았습니다. 숙종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나에게 빚고 갚고 저축도 하니 행복하다는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날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봉양하며 사니 그것이 빚을 갚는 것이고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니 그것이 저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를 흡족히 여긴 숙종은 부모을 공경하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그 가정에게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한가위 명절에 이런 행복을 누리셨는지요?

     

    우리 민족에게 하느님이 한가위 명절을 허락하신 이유는 내 잘되려고 조상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 부모님의 은덕을 기억하고 형제간에 화합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에 있는 줄로 압니다. 이 행복을 알기에 밥 한끼 먹으며 사랑을 나누고자 멀리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죠.

     

    밥상에 둘러 앉은 사람들을 식구라고 합니다. 나의 인생을 함께 해 가는 가족이지요. 그래서 연휴 끝 자락인 오늘도 우리교회는 예배 후에 밥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이니까요. 서로 나눕시다. ‘당신과 나는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계십니다. 이들은 오늘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보기에 상종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으로 여기시며 함께 밥을 나눕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밥상은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여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구원의 자리, 은총의 자리입니다.

     

    여러분도 매일 주님과 밥상을 함께 하시며 그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밥상이란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죠. 특별히 10월부터는 신약을 통독하며 묵상하려고 합니다.

    12월까지 신약통독, 100권-1000원씩.

     

    그런데 유대교의 음식법(kosher law)에 의하면, 식탁을 공유하는 자들은 모두 같은 동류로 여겼으므로 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이 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죄인으로 낙인찍은 사람들하고는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 대해서 선을 긋고 업신여기는 악한 마음을 지녔음에도 음식법이라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기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법을 잘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자기 의, 교만만을 키워갔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향해 비난했던 것입니다.

     

    루가 15: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는 그들에게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비유, 은전 한 닢을 잃어버려 집안을 온통 쓸며 그 돈을 찾기까지 샅샅이 뒤지는 여인의 비유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비유 끝에 똑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하느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7.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10.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을 누가 들으라고 하신 건가요? 이렇게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회개하는 한 사람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오는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회개라는 말은 하느님을 등진 삶에서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정리하자면, 회개란 하느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채 살아가던 삶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복음에서 보여주는 주님의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허다한 무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사.’

    Compassion - 함께 아파하는 마음, 애끓는 마음.

     

    길잃은 양 - 맹수와 사고의 위협 가운데 생존이 절박한 삶, 잃어버린 은전 한 닢 - 존재 가치없이 구석에 처박힌 채 무의하게 살아가는.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회적인 약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들도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알고 하느님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목적있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명입니다.

     

    루가 4:18-19,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여 그저 율법 조문에 메여 그것을 지키는 삶이 하느님을 위한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바리사이파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 회개는 바로 이 주님의 마음 - 컴패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 세리나 죄인들같은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회적인 약자들도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존귀한 존재임을 알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가신 것 처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도 물어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회개한 한 사람인지를?’

     

    여러분의 마음을 보십시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은전 한 닢 같은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웃들-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아픈 마음이 있고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요?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 생각한 또 다른 예수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였습니다. 강도만한 이웃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오늘 서신을 보면 율법을 지키며 그 율법에서 벗어난 자들을 박해하며 살던 사도 바울이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 되며 고백한 말씀이 나옵니다.

     

    딤전 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자입니다. 또한 그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하느님을 떠난 우리의 마음 - 그 죄악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나에게 하느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시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처럼 끼리끼리 동류들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러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변에 가난한 이웃, 강도만난 이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주님의 마음-컴패션을 품는다면 그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고 하여 그들과 연대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주님의 마음 - 컴패션을 부어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여 이념이나 관습이나 경계를 뛰어넘어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 지구촌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사랑의 손을 뼏치며 살아가는 회개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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