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스마일 인디아 - 신기호 선교사
  • 기도의 증인

    증인: 신기호 선교사

      

       기도의 증인! 증인이란 법적인 용어로 설명하면 ‘소송법상 법원으로부터 과거에 경험한 사실에 대해 진술하도록 명령을 받은 소송 당사자 아닌 제삼자’를 칭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증인은 있었던 사실, 경험했던 사실을 토대로 증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을 변호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의 주체가 되는 대상자에 대해 그의 어떠했음을 참고인의 자리에서 증언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기도의 주체가 되신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그 분께서 어떤 일을 지으셨고 진행시키고 계시며 완성하실 지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증인의 자리에 섭니다.


       기도의 증인은 말씀의 증인입니다. 기도의 증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기도의 증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어떻게 성취시켜 나가시는지를 목도하는 자입니다. 기도의 증인은 결국 이 땅의 결말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증인은 그 끝을 결론 삼고 주님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오늘 저는 기도의 증인으로서 말씀이 결론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기대하며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자입니다. 감히 인생으로서는 꿈꿀 수 없었던 그 것! 바로 ‘그 날’을 꿈꾸는 자로 변화시키시고 그 일에 동역자로 불러주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나, 존재적인 죄인이었던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말하며 그 꿈을 위해 나름의 무언가를 준비하는 그 때에 저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나는 어느 날 주님의 전도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져본 붉은 색이 덧칠되어진 성경책은 당당하게 들고 다니기에 부끄러운 그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이 거의 없던 시골에 세워진 천막으로 만들어진 개척교회를 나 홀로 다닌다는 것은 나름의 부담감이었고 그 부담감은 심하였습니다. 하여튼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그렇게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내 안에 꿈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주님의 종으로 서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서원은 오늘 이렇게 당신의 종으로 당신의 일만을 위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많은 외도의 시도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제하시고 막으셔서.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11:29)


       이렇게 나의 삶의 포지션은 정해졌습니다. 이제 나의 문제는 그 포지션에 합당한 몫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업이 온전해 지기 까지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애하심과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무엇을 감당해야하는 지에 대해 많은 혼선이 있었습니다. 처음 저는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공동선이라는 미명하에 세상 가운데 모든 부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일에 선봉에 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을 품은 이들과 연대하여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를 위해 전심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지구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구 환경의 파괴는 하나님을 불순종한 결과임으로 그 파괴를 주도하는 무리를 타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타종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범종교적인 사업들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평화라는 목적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한다’는 기치아래 모여서 밤을 세워가며 토의 하고 때로는 시급한 사안에 따라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예언자적인 종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저는 피폐해져 가는 저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나를 자유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이고 성경의 결론적인 말씀이었는데, 자유하기는커녕 가야할 길은 더욱 어두워 보였고 희미해져 갔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 목마름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기도시간은 너무나 답답하고 황량했고 온갖 상념으로 사로잡혔습니다. 이런 기도의 시간은 제게 무의미하였기에 자연스럽게 기도의 시간이 사라져갔습니다.

      그 시간은 사람들을 만나고 머리를 맞대어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세상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는 의미를 찾아 줄까를 골몰하게 되었습니다. 때론 성당에서 때론 교회에서 때론 교당에서 때론 법당에 앉아 저는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세상적 입지는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안의 목마름은 갈수록 더 해져갔습니다.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인가? 나는 늘 고민했습니다. ‘보수적인 말씀 안에서 진보적인 행동을 담아내는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러한 질문 가운데 여러 실험의 장을 만들고 그 실험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는 일이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 안의 목마름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이 참담한 인생의 절망적 고백이 바울을 넘어 저에게까지 물 밀 듯 밀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 가운데서 서성거리고 있던 나에게 완전한 복음이 나를 불러 내었습니다. 그리고 도전하였습니다. 나다나엘같은 나에게 복음을 만난 빌립같은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1:46)


        “와서 보라!!!” 그래서 갔고, 보았고, 만났습니다! 할렐루야!

        복음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복음은 그 복음의 조각의 조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조각의 조각에도 목숨걸려했던 나는 이제 진정 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약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주님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선한 자아로 충만했던 나, 나, 나의 우상숭배자는 2000여년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당신을 위해 제 일생을 바치겠습니다.’ 라고 고백했던 내가 동기가 되었던, 나 중심의  20년 전의 고백이 얼마나 잘 못된 고백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어떠함으로 하나님께서 존재적인 죄인이었던 나를 살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큰 사랑이 동기가 되어 나를 살리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살리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이 동기가 되어 지어진 이 인생이 다시 회복되어 이 인생의 창조목적을 회복하기를 바라시는 그 목적이 분명하시기에 그 방법을 아주 날카롭게 세우셨고 실행 시키셨습니다. 당신과 분리할 수 없는 자신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고 살리셔서 완전한 회복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 사랑의 과업에 우리를 목적으로 두셨고 또한 이 사랑의 완전한 완성을 위해 나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고 승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직임이 온전히 나의 직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셨던 예수님의 직임이 이제 나의 온전한 직임임을 믿습니다. 이 직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들 수 있는 직임임을 믿습니다. 나의 어떠함이 결론된 직임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직임임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예수짜리로서 그분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사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렇게 결단의 연속으로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믿음이 내안에 세워진 이후, 밥벌이로 했던 모든 구차한 삶의 내용들을 정리하고 나서 진짜 기도가 내 안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어두웠던 새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변화를 너무나 잘 아는 세상 권세 잡은 자는 나의 환경을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못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옛 자의 모습을 반추하며 그 경험을 또 오늘의 기도의 자리로 불러내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기도가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하는 속삼임도 들려옵니다. 여기저기서 기도하다가 절망한 자들의 참소가 들려옵니다. 극단적이라며 나의 신앙을 비웃고, 나의 쓰러짐을 보면서 비웃는 많은 무리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그 무리가 우리 가족 안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쓰러집니다. 기도의 자리가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송장처럼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나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맞다! 기도의 자리는 죽은 자들의 자리가 맞다. 넌 죽은 자야! 그렇기 때문에 그 기도의 자리는 너에게 합당한 자리야! 왜 너는 그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니? 왜? 다시 살고 싶니? 어쩌지? 넌 이미 죽었는데? 더 이상 너는 이 세상에 없어! 오직 예수 생명으로 사는 너만 존재 할 뿐이야!”


       다시 돌 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아~~!!!”

        그렇습니다. 나는 죽은 자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입니다. 또한 부활한 자입니다. 그리고 함께 승천하여 그 영광에 참예한 자입니다.(엡2:4-7)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죽은 자들, 원형으로 회복된 자들에게 주어지는 합당한 자리가 기도의 자리임을 깨닫습니다. 기도의 자리는 세상적으로 볼 때 힘들다 못해 불가능한 자리입니다. 당연합니다. 기도의 자리는 본성을 거스르는 자리이기에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결론 삼으면 안 되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진정한 기도의 자리는 가시적인 자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만이 취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자리는 기도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기도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더 이상 나의 유익을 구할 수도 없고 구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기도는 나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나의 수준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수준의 기도가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더 이상 중언부언 할 수 없는 아주 명확한 기도가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기도의 제목은 아주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오직 하나님 나라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해 간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세상 소망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오직 주님 오심만을 기대하게 됩니다.

       나의 삶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실제가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내가 감히 꿈 꿀 수 없었던 꿈을 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당신의 오심을 보고 싶습니다.

       곧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결론삼아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서 당신의 마음을 품습니다. 이 땅을 향하신 당신의 마음을 품고 함께 울고 함께 웃겠습니다. 그리고 달려가겠습니다. 오늘 당신께서 제게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저의 심장을 열어 당신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오늘 당신께서 허락하신 이 기도의 자리를 순종을 넘어 충성으로 받들겠습니다. 비록 그 자리가 죽음의 서슬퍼런 칼이 드리운 자리라 할지라도 나아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오직 당신만 주목하겠습니다.


        주님!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 곳으로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그 곳으로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 아무도 전하지 않는 그 곳으로 저를 보내십시오.


        그 곳은 주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땅임을 알기에 나아가겠습니다. 이 거룩한 직임! 중보기도자의 직임과 자리를 허락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그 사랑에 메여 나아갑니다. 이 믿음 지키시고 견고케 하시며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항상 함께 동행하실 다시 오실 우리주님만 기대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속히 오십시오!

       아멘! 아멘! 아멘!


      -- 이 글은복음기도모임/2009년 10월 8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대구 남부교회에서 간증된 내용입니다.

댓글 1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92 김장환 엘리야 1125 2010-07-19
591 양신부 1131 2009-07-02
590 김장환 엘리야 1131 2009-09-20
589 김장환 엘리야 1131 2010-07-01
588 김장환 엘리야 1132 2009-01-03
587 김장환 엘리야 1132 2009-03-03
586 김장환 엘리야 1133 2010-07-17
585 김장환 엘리야 1134 2009-03-03
584 김장환 엘리야 1134 2009-03-11
583 김장환 엘리야 1134 2009-08-19
582 김장환 엘리야 1134 2010-03-03
581 김장환 엘리야 1134 2010-09-04
580 김장환 엘리야 1135 2009-06-24
579 양신부 1135 2009-07-02
578 김장환 엘리야 1136 2009-01-16
577 김장환 엘리야 1136 2009-04-29
576 김장환 엘리야 1136 2009-06-08
575 김장환 엘리야 1136 2009-08-17
574 김장환 엘리야 1136 2009-12-06
573 김장환 엘리야 1137 2009-08-07
태그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