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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적인 천국 이해 1(이민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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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기독교인이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천국은 미래의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이다. 문제는 이 오래된 신앙이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천국을 이 세상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갱신의 관점에서 보지 못할 때 엄청난 오해들이 발생한다. 이 오해의 극치는 아마 내가 본 천국과 지옥 간증일 것이다.

    기독교 대중문화는 플라톤주의 이후 이교도의 피안의 세계를 받아들였다. 천국을 다른 차원의 "저 세상"으로 바꾸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을 천국과 동일시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믿는 목적을 구원받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죽어서 저 세상 천당(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죽을 때 저 세상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이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처럼 변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성경에서 영원한 "저 세상"은 인간의 최종 안착지가 아니다. 죽어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면 그것은 부활 이전의 중간 상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만일 "저 세상"이 인간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할 때 인간의 소망은 무엇일까? 영원한 저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 이 세상이 천국으로 변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상 낙원같은 세상이라도 인간이 죽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죽어 사라지는데 좋은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죽지 않고 고통이 없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먼저 일 것이고 그 다음은 부패에 넘겨진 이 세상이 영광의 새 하늘 새 땅으로 변하는 것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주장하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천국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할 때 "저 천국"이 있으니 소망을 가지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 소망"을 언급하는 것이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19-22)

    성경에는 영원히 거할 피안의 세계인 "저 천국"을 말하지도 "천국 소망"을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구절도 없다. 언제나 우선되는 것은 죽음을 이기는 영광의 부활이고 온 피조물의 갱신은 중요하지만 그 다음이다.

    천국은 새 창조에 대한 약속이며 이는 허무한 것에 굴복되어 무너진 창조 질서가 다시 원래 목적(텔로스)대로 완성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성경의 천국은 피안의 세계가 절대로 아니다(불교나 힌두교, 플라토니즘와과 달리).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이천 년 전에도 현재도 그리고 최종적으로 완성될 그 나라의 의도로도 피안이 아닌 차안의 세계다. 완성된 천국은 성도가 "저 세상"으로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새 하늘 새 땅이란 뜻이다. 마치 우리가 몸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영광의 새 몸을 얻듯 세상도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히 변할 것이다. 성도의 거듭남, 부활, 천국도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란 의미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사실은 첫 창조인 에덴동산에서부터 알 수 있다. 에덴은 피안의 세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타락 후 모든 피조물이 새 창조로 갱신될 때를 말하는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은 에덴 동산의 회복으로 묘사된다. 구약에서 꿈꾸던 세상, 신약에서 예언된 새 하늘 새 땅 모두 저 세상이 아니라 미래의 세상이다. 천국은 어디서도 "저 세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약속을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벧후 3:13).

    그래서 기독교의 천국은 그리 종교적(?)이지 않다. 저 세상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이 땅을 차별없는 사랑과 공의, 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으로 바꾸는 것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이미 시작되었고 자라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왕으로 통치하는 세상은 자라난다. 물론 피조물의 부패함, 죽음의 문제와 같이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 질 것이다. 이는 개인의 삶, 사회 정치 경제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 실현 되야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자유주의 신학 아니냐고 의심한다. 아니다. 이런 생각이야 말로 가장 보수적인 "오직 성경"을 믿는 신앙관이다. 사후 "저 세상"의 천국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신앙이야 말로 기독교에서 반드시 몰아내야 할 이교도적인 미신이다.

    1. 하늘나라와 부활사상의 혼돈.
    1.1. 사후 천국소망은 성경에 없다. 사후 부활소망만 있을 뿐이다.

    성경에는 부활소망을 주로 말하는데 기독교인들은 자꾸 천국 소망을 말한다. 그것도 저 세상 천국 말이다. 장례식장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망자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지 부활 소망을 가지라고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보았다. 여기서 벌써 우리의 신앙은 성경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상당수가 “이 둘이 같은 것 아닌가?”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성경에서 이 둘은 전혀 다른 의미다. 다를 뿐만이 아니다. 성경은 어디서도 사후에 관하여는 인간의 부활소망을 말하지 죽어서 하늘 나라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하늘나라와 하늘이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은 곧 설명할 것이다).

    어떤 이는 천국과 하늘나라가 다른 개념인 줄 안다. 천국은 한자고 하늘나라는 우리말이다. 그럼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이 둘도 같은 내용의 두 다른 방식의 표현이다. 천국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회피하는 유대인들이 선호하는 표현이지 현실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1.2. 천국은 살아서 들어가는 곳이다(최종적인 천국은 저 세상이 아니라 미래의 세상이다.).

    반복적으로 말하거니와 성경은 어디서도 천국을 성도가 죽은 뒤에 가야 할 목적지인 그 어떤 장소나 상태로 묘사한 적이 없다. 예수님을 제외한 성도들에게 부활은 마지막 날, 최후 심판 직전에 일어날 미래의 사건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현재 진행적 사건이다. 그래서 살아 생전 천국(하나님의 통치)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한다.

    천국의 도래는 미래의 시대가 현재의 시대로 뚫고 들어온 사건이다. 놀라운 미래가 현재에 시작되었다는 뜻이다(다시 말하거니와 천국은 저 세상이 절대로 아니다. 이미 시작된 미래의 세상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와 영토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님의 통치는 이미 시작되었고(아직 완성은 안 되었지만.), 영토의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이 영토는 마지막 날 타락한 피조세계가 갱신되며 새 하늘 새 땅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 새 하늘 새 땅에 미리 들어간 성도는 없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옛 하늘과 옛 땅이 불 가운데 풀어지며 새 창조를 통해 만들어질 미래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3)

    여기서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의미한다.

    1.3. 천국과 하늘을 혼동하지 마라.
    그럼 이런 오해는 왜 발생할까? 가장 큰 이유는 그간 기독교 대중문화에서(때론 신학자들조차) “하늘”을 천국이라고 착각하여 이 용어를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의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늘은 지옥과 대조된 “저 세상”의 뜻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하늘은 성경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공간적인 땅 위의 하늘, 둘째, 하나님과 수행하는 영적 존재들이 거하는 장소로 하늘이 있다.
    (계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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