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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기업(基業, 땅) 복귀시키라

  • 누가복음 4:16-19 / 이대용 前 성공회 주교

    1. 만물은 하나님의 것

    성경이 선포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이 우주 삼라만상과 역사를 주관하시
    는 주인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주와 역사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뿐이
    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돈과 공허뿐인 흑암 속에서 만물을 창조해내셨습니다.
    (창1:1) 혼돈 속에 질서를 부여하셨고, 흑암 속에 광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공허 속에 아름다운 것과, 참된 것과, 가치 있는 것들을 채워 넣으셨습니
    다. 그리고 마침내 땅의 짐승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들을 비롯한 모
    든 피조물들을 관리할 자로 인간을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인간은 우주의 관리자인
    것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께
    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아, 결국 하
    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피조물 중에 그 어느 것도 영원토록 소유할 수가 없는
    관리자일 뿐이며, 청지기요,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욥이, 그의 많던 재산과 그의 자녀들까지
    모두 잃고 말았을 때에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찌어다” 라고 말합니다. (욥 1:21)
      이것은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는 이것이 무산자의 행복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지만, 뜻 없이 주
    시고, 뜻 없이 가져가시는 것이 아니라, 맡겨 주신 재산으로 하나님의 자
    녀 됨을 스스로 확증하면서 사는 것을 보시고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
    산도, 자식도 주신다는 의미로 고백한 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 인간을 청지기에 비유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절 이하에서는 약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셨고,  마태
    복음 25장 14절 이하에서는 세상 사람들을 비유하기를,   자기 주인에게
    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맡은 종들에 비유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이 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유요, 우리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훈련받게 하기 위하여 잠시 동
    안 맡기신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 생명과 건강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바요, 내 가족과 내 재산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바요, 내 직업, 내 지위, 내 권한, 내 기회들이 다,
    우리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잠시잠간 맡겨 주신 것
    입니다.

    2. 토지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것 가운데, 성경이 가장 특별히 다루는 것
    중 하나가 토지입니다. 토지는 절대적인 삶의 근거입니다.
      토지 위에다 집을 짓고 살아가며,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먹고 살
    기 때문에 땅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땅은 생명
    있는 것들의 근거인 동시에, 생명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가 생명이기에, 피를 먹지 못하게 규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땅도 개인이 소유할 수 없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명시했습니
    다.

      그래서 레위기 25:23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가나안은 특별히, 구원의 역사를 착수하
    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사용하시기로 선택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역사의 장자백성인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
    우르에서 불러내실 때에 가나안을 가리키시면서 그곳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땅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택하셨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
    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다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6장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
    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
    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여러 이방백성들이 진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치르고서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호전성과 민족적 우월감에 관심을 집중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주목할 곳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 치열한 전쟁 끝에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땅을 분배하신 일
    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파별로, 가문별로 그리고 나중에는 매 가정에 이르
    기까지, ‘하나님의 기업’을 분배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동산 소
    유’ 개념이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기업’만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 가운데 내가 어느 지파의 분깃을 맡았나, 그리고 우리 지
    파의 분깃 가운데 내가 어느 가문의 분깃을 맡았나, 그리고 우리 가문의
    분깃 가운데 내가 어느 집안의 분깃을 맡아 관리하고 있는가라는 개념으
    로 땅을 취급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집안에 맡겨진 하나님의 기업을 잘 관리할 영광스런 책
    임이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가 하나님의 기업인 땅을 맡아서 관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기업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땅위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알리고, 그 계획을 실현시키
    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에서 땅을 ‘받는’ 일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됩
    니다. 땅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3. 안식일 - 안식년 - 희년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안식일을 두셨습니다.
      안식일이나 안식년은 안식 곧 ‘쉬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쉼을 통해서 창조된 본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일하는 동안에 살아가는 동안에 몸과 마음이 상하고 피곤해집니다.
      또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도 쉬고 마음도 쉬는 가운데 창조된 우리의 본 모습을 회복합
    니다. 피곤하면 쉬는 것 이상의 약이 없습니다마는, 병이 들어도 치유의
    제1조건은 쉬는 것입니다. 쉬게 하면 회복되도록 하나님께서는 만물 속에
    안식의 장치를 이미 두셨습니다.

      그래서 매 7년마다는 토지도 쉬게 함으로써, 토지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셨고, 특별히 7년이 일곱 번째 돌아가고 난 다음의 해를 복된
    해라고 해서 ‘희년’으로 정하셨습니다.

      희년은 안식기간 중의 안식기간으로서, 종으로 팔리었던 사람은 자유인
    이 되고, 빚을 갚기 위해서 빚 대신 넘겨주었던 하나님의 기업인 땅도
    원 관리인에게 반환하는 법을 세우신 것입니다.

      빚을 갚지 못해서 빚 대신 맡겼던 땅을 도로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토지사유제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법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은 분명합니다. 토지는 사유화해서 멋대로
    사고 팔 수가 없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나봇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조상
    에게서 물려받은 하나님의 기업인 땅, 곧 좋은 포도원이 있어서 화를 당합
    니다. 욕심꾸러기 아합 왕이 그 포도원을 탐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봇은 그 포도원이 하나님의 기업의 땅이기 때문에 줄 수 없노라고 거
    절하지만 왕후인 간부 이세벨의 농간으로 그만 나봇은 끝까지 하나님의
    기업인 포도원을 지키려다가 목숨을 뺏기고 맙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이세벨과 아합 같은 자들이 나타나
    서 나봇과 같은 약자의 땅을 수없이 빼앗아 왔습니까? 우리가 그 수를 다
    셀 수나 있습니까?

    4. 토지정의 실천에 실패한 기독교

      우리 자신을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의 땅을 맡아 관리하는 자입
    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기업’과는 상관없이 부동산으로 이득을 탐하는 자
    니까?

      기독교국가를 자부하던 미국이 흑인에게도 땅을 주자고 남북전쟁을 벌
    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을 그친 후에 흑인들에게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같이 한때 기독교 국가라고 볼 수 있는
    나라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쳐들어가서 그 모든 나라 국민들을 식민지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러고도 그들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 줄 압니까?
      호주가 원주민들을 멸종시키고 세운 나라고, 남미의 모든 나라들이 원주
    민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면서 땅을 빼앗은 나라들이 아닙니까? 르완다는
    백인들에게서 배운 대로 땅 뺏기 인종청소를 했던 나라입니다.

      기독교가 ‘정의’라는 단어는 사용해 왔지만, 성경이 외치는 하나님의 공
    의는 말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진정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기독교는
    인류역사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데 왜 기독교가
    사라지냐 하겠지만, 공의를 말하지 않는 기독교는 인류가 외면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외면하실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그리도 강조하던 사도 바
    울께서도 정의를 실천하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단호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말하기를, “이제도 (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
    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
    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
    각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많은 땅을 소유하고서 막강한 지주로 행세하던 중세기 교회는 하나님의
    법, 곧 토지공개념에 입각한 법을 들고 나온 무슬림들에게 삽시간에 패했
    습니다. 그래서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국민들을 무슬림이 되
    게 하였습니다.

      더구나 ‘십자군’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군대가 저들을 치러 갔었기 때문
    에, 그들로 하여금 천추만대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
    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교회를 외면하고 있으니까 현대교회들은 무슨 새로
    운 탈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돌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완성하시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 시대에서 하
    나님의 법이 실천되고 성취되도록 교회는 힘써야 합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 곧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땅만을 두고 하시는 말씀
    아닙니다.

      시편 82편 8절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열방이 주님의 기업이라”

      이것은 온 세계의 모든 땅이 다 하나님의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
    니다.  

      그러므로 경제체제가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관계없이 세상의 모든 땅
    은 인간이 사유할 수가 없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
    이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땅은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애당초 투자의 대상도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는 세계 앞에 모든 땅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환
    원할 것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이것을 깨닫도록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오셨
    는지 모릅니다.

    5. 우리가 기념할 희년

      레위기의 희년법을 따라서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희년은, 그 해의 칠월,
    곧 양력으로는 9월 중순 경에서 10월 중순에 이르는 달의 십일일이었습니
    다. 그 날은 속죄일로도 지켰는데 뿔 나팔을 큰 소리로 사방에 붊으로써
    전국에 희년을 선포하였습니다.

      레위기 25장 10절은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라” 했습니다.

      ‘기업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땅
    을 떠나 살았으면 다시 돌아가라는 말씀이고, 기업의 땅이 친족과 일가들
    이 한데 모여 살아야 할 장소라는 뜻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추석명절이 있습니다.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추석날 우리는 고향땅으로 돌아가 고향 친구들과 친족들을
    만나 봅니다.

      이것은 추수기를 시작하면서 조상의 유덕을 기리는 관습에서 시작된 이
    교도 풍습이지만, 역서 상으로 유대인들의 희년 선포일과 매우 근접한 계
    절이어서, 이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들에게 희년을 준비시키신 일
    인 줄로 여기고 감사를 드립니다.

      유대인들이 희년을 지키러 고향을 찾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가문과
    자기 가족에게 위탁하신 하나님의 기업을 점검합니다. 땅의 관리 책임이
    얼마나 성실하게 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팔았던 땅이 있었으면, 회복시켜야 하고, 남에게 빌린 땅, 빚
    대신 맡았던 땅이 있으면 원래의 관리권자에게 반환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희년에 우선적으로 실천했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추석이 이 희년법을 따라, 우리가 맡은 땅을 하나님
    의 기업으로 환원시키는 계절이 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희년법이 시행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는 땅이 없어 일을 하고 싶
    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자들로 인해서 가난한 사람의 가계부가 옥죄는 일
    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 희년법이 시행될 수만 있다면, 세계경제는 소수의 토지소유자들에 의
    해서 좌우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희년법이 시행될 수만 있다면, 세상에는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대결과 투쟁이 없어지고, 역사에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합
    니다.

      이렇게 복된 희년법을 교회는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성경 속에 묶어두
    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큰 과오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역대의 큰 토지소유자들의 반역에 교회가 방조 내지 동
    조한 과오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에 보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께서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때에, 이사야서 61장 1절 이하에
    예언하신 말씀,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
    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희년의 예언을 읽으시고는 이것이 주님을 통해서 성취됨을 천명하셨
    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고, 희년의 혜택은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이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교회는 깨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질서 곧, 희년의 법을 실
    현시켜야 할 때입니다.

    6. 희년실천은 우리의 소망

      이제 교회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임의
    로 경홀히 여기는 과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근간으로 세계경제에 새로운 질서를 주어야
    합니다. 성경적 토지법은 세상에 새 빛, 새 소망을 줄 것입니다.

      이미 믿음의 선각자들, 특별히 100여 년 전에 ‘진보와 빈곤’이라는 저서
    를 펴냄으로써 성서적 토지제도의 현대적 실현을 부르짖다가 죽은 ‘헨리
    조지(Henry George)’ 같은 분들은 바로 이 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헨리 조지의 뜻을 좇아서 레오 톨스토이는 그의 만년에 자신의 땅을 가
    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토지공개념을 계몽
    하고자 애썼습니다.

      또한 헨리 조지가 주창한 성경적 토지법을 통해서 세계 속에 새 시대를
    맞아들이고자, 같은 비전을 꿈꾸며 강원도 태백에서 예수원을 설립한 고
    대천덕 신부는 희년운동을 일으키고, 2002년에 작고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성경적 토지제도는 많은 나라에서 성공리에 실험되어 왔고 또한
    부분적으로나마 사회제도에 적용되고 있는 나라들이 타이완, 홍콩, 싱가폴
    같은 나라들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 나라들은 빈부 격차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앞선 나라들입니까?

      성경적 토지제도의 관점에 입각해서, 우리는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불로소득에 과세하고 노
    력소득에 면세하는 패키지형 세제개혁과 토지공공임대제를 시행함으로써
    하나님의 토지법으로 정의를 이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노동의 산물은 보장해 주며, 토지에서 나는 이익은 모두가
    함께 나누는 방식을 취하여 토지에 대한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가장 유
    효적절한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한반도의 통일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점입니다.
      두 가지 경제체제로 나뉘었던 남북한은 이제 통일된 국가로의 체제전환
    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 맞닥트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희년토지법을 제정해 두셨습
    니다. 한국교회는 한반도에서 이 희년토지법을 성공적으로 실험-실천할 사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비진리 위에 서 있는 나라들과,  그 나라들
    속에서 도탄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로 이루는 구원의 복음과 함께 복된 희년의 법을 우리는 들고 가야 하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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