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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 정의 평화 사제단 시국 성찬례 설교문 (2010년 5월 27일, 대표 - 최은식신부)
  • 사도27:1-44

                              풍파에서 이 나라를 구하라


            사도행전 27장은 바울로가 배를 타고 로마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항해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로를 태우고 이스라엘을 떠난 배는 도중에 유리퀼로라는 태풍을 만나 19일 동안이나 큰 시련을 당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살아 돌아갈 희망을 잃었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그 풍랑이 얼마나 길고 험했던지 알만합니다. 그런데 이 역풍은 바울로의 말을 듣지 않은데서 일어난 풍랑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바울의 현실이 꼭 이 민족이 처한 현실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바울로는 항해하는 것이 위태롭다고 생각되어 항해를 멈추어 달라고 권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바울로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었습니다. 선장은 수많은 세월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때문에 항해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주는 배의 주인이 아닙니까?  사실 항해에 대해서는 이들은 전문가입니다. 저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순조로운 것 같더니 결국에는 이런 풍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전문가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리를 보는 눈이 훨씬 더 정확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지금 엄청난 광풍에 휩싸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나라의 근본을 흔들게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는 요즘 우리가 하고 있는 4대강 개발을 보면서, 그리고 천안함 사건을 대하는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4대강을 보면서 이것은 강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길이란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불안해 죽을 지경입니다. 언제 뭔가 터질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엄습해 옵니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대응이 처음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엄청난 광풍이 되어 이 나라를 엄습할 것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시작부터 북에 대해 강경대응을 선포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잘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한에게 끌려다닌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금강산을 관광하던 관광객이 북한 초병에 의해 사살된 것입니다. 늘 용납되었던 실수가 이번에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남북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해안 연평도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이 공격을 했습니다. 평안히 잠을 자던 해사들이 병사들이 배와 함께 수장된 것입니다. 뭔가 이상한 조짐이 밀려오는 불안함이 밀려오지 않습니까? 작은 불씨들이 자꾸 커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남에서 대북 강한 발언을 합니다.  북도 이에 질세라 강경발언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정말 작은 실수가 큰 싸움을 번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이면에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런데 큰 틀에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은 가졌다고 봅니다. 서로 감정으로 강하게 대응하면 싸움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그랬잖아요. “너, 제가 이긴데” 질줄 알면서 자존심 때문에 “그래, 내가 이겨” 그러다가 싸움이 되잖아요.

            사람들은 전쟁이 무슨 장난인줄 압니다. 전자오락이 아닙니다. 이게 현실로 다가오면 지금 우리가 누리던 이 천국이 하루아침에 지옥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싸우면 기뻐할 나라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고, 일본이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척하지만 한판 붙었으면 하는 게 주변 나라들의 속 샘입니다. 우리가 싸우면 자국에는 얼마나 큰 이익입니까?

            우리 정부는 이참에 북한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고쳐집니까? 사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을 다시 주적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으로 힘들어 만들어놓은 남북과의 관계가 하루 아침에 원위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대통령은 이제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바꾸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6.25 이후 전쟁 없이 지냈으니 이제는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사실 백성을 안심시켰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불안합니다. 너무나 불안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저는 이 선언을 듣고 전쟁하는 꿈을 꿀 정도였습니다.

            벌써 우리 시장은 야단입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주가가 150포인트 넘게 빠졌습니다. 100조라는 돈이 날라 간 것입니다. 달라가 100원 가까이 급등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미국이 당한 경제위기가, 10년전 경험한 IMF위기가 현실로 올지도 모릅니다.  이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배에서 승객을 구원한 사람은 선장도 선주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바울로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풍랑 속에서 헤매는 이 민족을 구할 수 있는지 오늘 말씀은 바로 이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로가 이런 풍랑 속에서  276명의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다른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대개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두려움이 나를 지배합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내 안에 분노의 소리만 들려옵니다.

            저는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4대강 개발을 보면서 우리가 좀 더 냉정했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힘든데 바울로만  괜찮은 게 아닙니다. 바울도 힘들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이런 위기의 순간에서 그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내가 섬기는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나더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며”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달라야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흥분할 때 우리는 미세하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바로 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에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지쳐 있었을 때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생명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제들의 소명입니다.

            둘째, 용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바울은 이런 위기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염려하고 걱정한 게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소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리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자신을 투신했습니다. 바로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살리는 일입니다.          
      
           나 살기 바뿐데 남의 걱정하게 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역경을 극복 할 수 있는지를 끝없이 간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원들은 자신만 빠져나갈 작정으로 거룻배를 물에 띄우려 합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일단 나만 살고 보려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닙니까?

            나만 살려고 하는 세상처럼 비참한 세상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뿐 놈이란 말을 했습니다. “나뿐 놈은 나만 아는 놈이”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나쁜 놈이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만 살면 자연이 죽든, 이웃이 죽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만 아는 이게 지금 이 세상을 병들게 했습니다. 죽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만 아는 그런 중한 병에 걸려 있습니다.

            왜 나만 알면 병들까요? 하느님은 나만 살도록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는 세상은  아무리 에덴이라 할지라도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풍랑 속에서 그 작은 거룻배를 타고 탈출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를 움직여할 할 사람들이 도망치고 없다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쩌면 그들은 살지 모릅니다. 그러나 배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로는 이 사실을 백인대장에게 말하고, 그 거룻배를 없애버리게 했습니다.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이기심의 근원을 아주 없애 버린 것입니다. 이게 병입니다. 나만 잘살고, 나만 출세하고, 나만 잘 먹으면 그만입니다. 이게 병입니다.

            얼마 전 태국에서 폭동이 일어났지요. 군대가 개입해서 진압은 되었지만 그 폭동의 근원은  바로 이런 병에서 생긴 아픔입니다. 똑똑한 사람만 잘살고 대다수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자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는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지금 이런 비극은 바울로의 말을 듣지 않은데서 생긴 비극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이 태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있느냐 하는 일입니다.

            바울로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들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풍에 시달리느라 열나흘 동안이나 굶었으니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 음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먹어야할 음식,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신 사랑, 우리가 지금 먹어야할 음식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 음식을 먹어야 보입니다. 살길이 보이고, 평화가 보이고, 생명이 보입니다.  

            참된 평화는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사랑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진리임을 전하기 위해 지금 로마로 가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지금 바울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모든 일이 이루지리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 고백이 있었기에 그 풍랑 속에서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확신입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은 미국도, 중국도, 소련도 아닙니다. 그리고 핵무기도 아니고, 현대화된 무기도 아닙니다. 함께 아파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꿈을 꾸었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저는 메말라 있는 남과 북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진리뿐임을 믿습니다. 때문에 지금 이 성찬례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확신하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축복하여 나누려 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나중은 창대할 것입니다.  사제들이여, 외칩시다. 지금은 주님의 보혈을 먹어야할 때라고 말입니다.

            저는 사도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나이다.”고백합니다.

             지금 환란과  폭풍우에서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분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저는 이 말씀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평화를 외치는 이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해주시리가 믿습니다. 그리고 이 소리를 통해 평화와 생명을 만들어 가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풍전등화 앞에 놓인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더 이상의 힘의 대결을 멈추고, 이제는 다시 시작하라고 말입니다. 평화를 시작하라고 말입니다. 생명을 시작하라고 외칩시다.  그래서 풍랑 속에서 276명의 생명을 살려낸 바울로처럼 풍랑 속에서 헤매는  이 민족을 살려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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