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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雪)에 관한 좋은 시모음> 이준관의 '첫눈은 언제 오나' 외 19편의 시
  •                   

    + 첫눈은 언제 오나 / 이준관

    첫눈은 언제 오나.
    나는 첫눈을 기다리지.

    첫눈이 와야
    정말 겨울이 시작되지.

    첫눈 오는 날을 위해
    나는
    장갑이며 털모자며 목도리며
    모두 준비해 두었지.

    첫눈은  
    밤에  
    사박사박 몰래 온다는데,

    캄캄한 밤
    개가 컹컹 짖기만 해도
    나는 가슴 두근거리지.



    + 눈 / 윤동주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 싸락눈 / 김소운

    하느님께서  
    진지를 잡수시다가
    손이 시린지




    자꾸만 밥알을 흘리십니다.



    + 눈 / 김종해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리는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김종해·1941-)



    + 작은 지붕 위에 / 전봉건

    작은 지붕 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 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눈 하얀 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 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 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 꼭 마주 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



    + 눈 / 이은봉

    눈이 내린다
    두런두런 한숨 속으로
    저희들끼리
    저렇게 뺨 부비며

    눈이 내린다
    별별 근심스런 얼굴로
    밤새 잠 못 이룬 사람들
    사람들 걱정 속으로

    눈이 내린다
    참새떼 울바자에 내려와 앉는 아침
    아침 공복 속으로

    저희들끼리 저렇게 뽀드득뽀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 하얀 눈 덮어쓰고 / 이오덕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하얀 눈을 덮어쓴
    지붕 밑에서 자고 있었구나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하얀 세상
    건너편 산도 마을의 집들도 길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정작 내가 그 눈 밑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으니!
    지붕뿐 아니지
    내가 덮고 있는 이불도
    하얀 양털에 하얀 목화로 짠 베다.
    이불뿐 아니구나
    내가 입은 잠옷도 하얗고
    내복도 하얗고
    낮이면 추워서 방안에서도 입고 있는
    오리털 겉옷도 새하얀 빛

    하얀 것만 입소 덮고 하얀 쌀밥까지 먹고
    의사가 권해서 포도당 하얀 가루까지 날마다 먹고
    하얀 종이에 글을 쓰고
    그러고 보니 이거야말로 전신만신 하얀 것뿐
    하얀 것뿐일세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떤가?
    마땅히 하얗게
    눈같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할
    내 마음은?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올겨울 내도록
    하얀 눈을 덮어쓰고서
    자고 먹고 숨쉬고
    살고 있었네.
    하얀 눈
    하느님 선물을
    덮어쓰고 있었네.



    + 첫눈 오는 날 /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오르는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 첫눈 / 송수권

    눈이 내린다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린다
    미욱한 세상 깨달을 것이 너무 많아
    그 깨달음 하나로 눈물 젖은 손수건을 펼쳐들어
    슬픈 영혼을 닦아내 보라고
    온 세상 하얗게 눈이 내린다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린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영혼이 있고
    내 생명 무거운 육신을 벗어 공중을 나는 새가 되라고
    살아 있는 티벳인이 되라고
    한밤중에도 하얗게 내린다
    히말라야 삼나무숲을 흔들며
    말울음 소릴 내며
    이렇게 고요하게 지금 첫눈이 내린다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 겨울 일기 - 함박눈 / 목필균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은 온통 은빛 속에 있습니다

    깃털로 내려앉은 하얀 세상
    먼 하늘 전설을 물고
    하염없이 눈이 내립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과
    따끈한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다면
    예쁜 추억 다 꺼내질 것 같습니다

    하얀 눈 속에 돋아난 기억 위로
    다시 수북히 눈 쌓이면
    다시 길을 내며 나눌 이야기들

    오늘 같은 날에는
    가슴으로 녹아드는 눈 맞으며
    보고싶은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 김용택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만가만 가서 내립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고 싶어요

    아침부터 눈이 와
    내리는 눈송이들을 따라가보며
    당신이 더 그리운 날
    그리움처럼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들을 보며
    뭔가, 무슨 말인가 더 정다운 말을
    드리고 싶은데
    자꾸 불어나는 눈 때문에
    그 말이 자꾸 막힙니다



    + 사랑/ 조태일

    첫눈이 내린다.
    어디고 없이 제멋대로
    내리고 내리는 것 같지만
    내릴 곳을 보아 가며
    서둘지 않고 내린다.

    첫눈이 내린다.
    지상의 왼갖 성명聲明들을 잠재우며
    지상의 왼갖 낙서들을 지우며
    한량없이
    하이얗게 내린다.

    높고높은 하늘을 지나서
    가파른 절벽을 지나서
    풀잎들의 머리 위를 지나서

    움직이는 것들 위에 내린다
    숨쉬는 것들 위에서 내린다
    꿈꾸는 것들 위에서 내린다.

    오오, 오오, 소리치지는 않고
    오오, 오오, 그 입모양만 보이며
    우리들 귓바퀴 근처에 내린다.

    보아라, 보아라, 소리치지는 않고
    보아라, 보아라, 그 입모양만 보이며
    우리들 눈앞에
    뺨 비비며
    첫눈은 그렇게 그렇게
    붐빈다.



    + 눈 위에 남긴 발자국 / 용혜원

    밤새 하얀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눈 덮인 새벽길에
    첫 발자국을 남기려니
    마음이 상쾌하고 즐겁다

    온통 하얀 세상을 보니
    내 마음에까지 눈이 내린 듯 하다
    눈을 밟으며 걷노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행복은 늘 주변에  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늘에서 복을 내려 주는 것만 같다

    오늘은 하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만들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련다



    + 눈 / 박용래

    하늘과 언덕과 나무를 지우랴
    눈이 뿌린다
    푸른 젊음과 고요한 흥분이 서린
    하루하루 낡아 가는 것 위에
    눈이 뿌린다
    스쳐 가는 한 점 바람도 없이
    송이눈 찬란히 퍼붓는 날은
    정말 하늘과 언덕과 나무의
    한계는 없다
    다만 가난한 마음도 없이 이루어지는
    하얀 단층



    + 눈의 풍경 / 서정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까치집에 눈이 쌓인다
    바람은 때때로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
    우리 앞에 펼쳐 놓고는
    설레는 나를 유혹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눈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온갖 거짓과 위선, 사랑과 행복까지도
    다 덮어놓고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마음과 욕심은 조금만 나오게 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과 작은 것에 만족하는 기쁨을
    많이 나오게 하여
    삶이 따사롭게 할 수 있을 것을
    나뭇가지의 눈이 녹아
    물방울로 떨어지는 놀이터
    어느 정도의 고통은 나를 긴장시켜
    겨울 찬바람에 맞설 용기를 준다  



    +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 이생진

    시 읽는 건 아주 좋아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 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 버려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 사랑 이야기 / 정연복

    겨울 찬바람을 알몸으로 버티어 온
    나목(裸木)의 가지들과
    하늘하늘 내리는 눈송이가 만나
    서로 뜨겁게 보듬어 안는다

    처음에는 사르르 녹더니
    쌓이고 또 쌓여
    이윽고 가지마다 눈꽃이 피네

    그래서 가지들은 따뜻하다
    허공을 맴돌던 눈송이는
    오붓이 제 집을 찾는다

    삭풍 한번 몰아치거나
    한줌의 햇살이 와 닿으면
    덧없이 스러질 사랑인데도

    오!
    저 여리고 가난한 목숨들의
    단단한 포옹
    찰나의 눈부신 동거(同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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