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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에 관한 가르침 3 - 기도생활과 관련한 질문들(3)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느껴지지 않는데...|
  • 나는 내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끔 하느님을 향한 성인들의 갈망과 관련한 글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모든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그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라도...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다른 것들을 향한 인간의 갈망들에 의해서 매우 약하게 될 수 있음도 사실입니다. 다른 갈망들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자기 자신을 향한 추구로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추구하거나 자신을 추구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며 매일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을 추구하는 생활이란 자기추구를 향한 갈망과의 투쟁입니다. 어떻게 그 싸움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우리 안에 숨겨진 죄스러운 성향들, 즉 하느님의 현존에서 우리를 분리시키는 죄들과 직면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타고난 인간의 약함과 한계일수도 있고. 저마다 각 사람이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이며, 사람은 누구나 그 약함과 한계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둘째, 하느님께 우리의 그 죄스러운 성향들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매일의 기도와 성찰 가운데서, 혹은 어떤 사건이나 모임 가운데서 직면하는 자신의 어두움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직면한 자신의 어두움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 어두움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셋째, 그렇게 꾸준히 실천하면 우리는 내면에서 자기추구의 충동이 올라올 때 그것을 곧 알아차리고,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어 우리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같은 실천은 점차 우리 갈망을 자신에게서 하느님을 옮겨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에 죄스러운 성향들을 알아차리고, 의식할지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식을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그것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자유를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협력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 중에 떠오르는 생각들과 분심 때문에 기도 중에도 하느님께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기도 중에도 내 머리 속은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한 생각들,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한 생각 등 이런 저런 생각들이 계속하여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활동 중에도 하느님께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관상생활을 한다고 하던데 나 같은 사람은 언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당신은 아직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상생활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은 우리 노력이나 어떤 특정한 경험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조건없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신이 기도 중에 하느님의 현존을 적게 느끼거나, 잘못 느낄지라도 하느님은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의 체험보다는 우리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기도 중에 우리가 체험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갈망하고 함께 하려는 우리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의지의 일치는 하느님께로 온전히 향하는 우리 생각과 마음의 도움을 받아 보다 강렬하여집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하는 고요하고 집중된 마음은 기도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노력보다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더 크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이란 기도 중에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 갈망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어떤 다른 관심이나 생각이 떠오를지라도 그 갈망으로 다시 돌아서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당신 영혼 가운데서 점점, 그리고 매일 매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온 마음을 하느님께서 차지하시게 될 것입니다.

    기도 중에 느끼는 지루함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나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 싶은 갈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중에 자주 기도도 할 수 없고, 지루함과 분심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나를 체험합니다. 기도 시간이 마치 시험을 당하는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사람이 어떤 기술을 배우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 과정이 처음에는 어렵고 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실천에 옮겨 훈련을 시작하고, 꾸준히 지속하면 그는 온전함에 이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연상하여 보십시오. 처음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시간과 에너지를 훈련에 사용하지 않으면 이내 곧 포기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악기를 정말 사랑하여 배우려는 갈망이 크고 진지한 사람은 꾸준한 실습의 과정을 거쳐, 어느 날 문득 악기를 자연스레 연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적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기도를 배우려는 갈망과 진지함이 큰 사람은 때로 쉽게 기도의 진보를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같은 경험은 세속적인 다른 일이나 관심에 앞서 기도에 헌신할 수 있는 힘과 자극이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같은 진보의 체험이 자기만족이나 교만으로 흐를 위험도 있습니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만족이나 체험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하느님께 모으고, 하느님께 자신을 열어 드리는 사려 깊은 준비를 하여야만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참다운 하느님과의 연합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진실입니다. 관상기도란 기도 중에 우리의 노력은 점차 작아지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계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더욱 커지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실재로 우리는 기도 중에 기울이는 자신의 노력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데 이는 그것이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려는 갈망은 기도 중에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성취하려는 노력이나 기대를 내려놓게 하고, 이기적인 집착을 비우게 하여 마침내 우리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실 공간을 만들어 드립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하시는 역할이 커지기 시작하면, 때로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노력으로 해 왔던 익숙한 기도를 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실패한 기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의 기도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기도 경험이 깊고 풍부하거나, 영적 지식이 깊은 사람들의 안내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영적지도나 영적동반) 그같은 경험은 하느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자신보다 성령님께서 더 많이 활동하시는 새로운 기도의 길을 열어주시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활동이 아직 희미하기 때문에 이전에 익숙하게 해왔던 기도의 체험과는 달리 공허함이나 떠오르는 분심들에 시달리면서 그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경험합니다.

    이같은 단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자신의 이기적인 영적 경향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지, 자신에게 익숙한 경험보다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복종하려고 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도에서 실패의 경험은 종종 하느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려는 의지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의 경험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임을 믿고, 그 과정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자신을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기도의 진보를 허락하십니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의하여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익숙하게 하던 기도를 계속 할 수도 없고, 새로 시작한 기도에서도 만족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기도를 영적독서로 대체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독서가 기도를 도울 수 있기는 하지만 기도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여야 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어둔 밤 같은 영적상태에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전에 경험하였던 어떤 명료한 생각이나 대화 혹은 하느님께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분심에 머물기보다는 기도 중에 마음에서 떠오르는 단순한 기도(“주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소서”, 혹은 “제가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등)를 고요한 마음으로 반복하거나, 영의 눈으로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향하려는 평화로운 노력을 인내심을 갖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영혼으로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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