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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에 나타나 희년법과 그 정신 3 - 김근주 교수
  • 2.2.2. “유토피아”로서의 희년

    2인칭을 향해 명령되고 있다는 점에서 희년 규례는 모든 사람이 준수하고 따라야 할 말씀으로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희년 규례의 최대의 문제는 그 실현이 가능한가의 여부 혹은 실제로 준수되었는가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희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토지를 구매한 이는 어떻게 해서든 희년이 되기 전에 그 토지로부터 최대한을 뽑아내고 돌려주려고 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일들은 토지 자체에도 전혀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다른 이로부터 땅을 희년까지 한시적으로 구입한다고 할 때, 파는 이는 그 땅에서 나는 소득을 최대한으로 올려 부를 것이고 사는 이는 최대한 낮게 부를 것이며, 일단 구매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구매 소득보다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애쓸 것이라는 점에서 희년이 되어 돌려줄 때까지 토지에 대한 극심한 사용이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사용권에 들어온 토지에 대해 그 땅의 새로운 사용자는 칠 년째에 안식년을 그 땅에 대해 선포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희년법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인간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능한 이익을 얻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하지만, 이 사람의 중심에는 여호와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순종과 열심이 있다.

    나아가 이 규례에는 각각의 가족들이 자신의 땅을 여호와께로부터 받아 경작하며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있다. 그러한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희년 규례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법조항의 측면뿐 아니라 이상적인 이스라엘 혹은 회복되어야 할 이상으로서 그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에서 언급된 대로, 희년 규례에 세부적인 상황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제의 준수가 의도되고 염두에 두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희년 규례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명하시는 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비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의 정신을 훼손케 하는 경우들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여호와께 대한 경외의 원칙에서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어쩌면 희년의 실현불가능성은 사실 실제적인 이유라기보다는 동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희년은 실현불가능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적이다. 여기서 “이상적”이라는 말은 오해되지 않아야 한다. 이 말은 희년이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희년법안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참된 모습(ideal)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년은 이상적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현재 존재하고 있고 과거 존재하였던 세상과는 전적으로 어긋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희년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땅에 이르러 여호와께로부터 기업을 최초에 받았을 당시로 되돌리게 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과거 상황으로의 재조정(reset)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구약 예언자들의 선포는 “그날”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러므로 희년에 대한 묵상은 단지 그 시절이 좋았지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쳐져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의 평등하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다가올 영광스러운 날에 대한 기대 속에 포괄되어야 한다. 이러한 미래를 향한 기대 속에서 희년의 규례는 어떤 경우에서건 땅은 인간의 것이 아니며 인간은 그저 그 땅 위의 나그네로서 잠시 관리를 맡은 존재임을 기억하게 한다.

    희년의 회복은 보다 궁극적인 회복이다. 신명기의 한 구절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다고 이르고 있다(신 15:11). 그러나 같은 장에서 제대로 면제년이 실행될 경우,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선포 역시 주어진다(신 15:4).

    가난의 원인이 여러 궁핍과 필요에서 나오고 그로 인해 빚을 지게 되는 데에서 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7년마다 이루어지는 면제년의 올바른 준수는 그 땅에서 가난한 자가 없어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빚은 면제되어도 이미 땅을 팔아버린 사람에게는 여전히 땅이 없는 채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희년의 실행은 참으로 그 땅에 가난한 자가 없게 만들 것이다.

    2.3. 고대근동과의 비교

    희년안에 담겨 있는 자유의 선포는 구약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사상이지는 않다. 희년법은 고대 근동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희년에 선포되는 “드로르(דרור)”는 악카드어의 “안두라룸(andurarum)”과 동일한 것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안두라룸(“자유”; 드로르)과 미샤룸(misharum; “정의”; 메샤림 )이 왕들에 의해 선포되었다.

    주전 20세기 이전 시기에서 이미 왕들의 칙령에서 노예 해방과 빚의 탕감에 관한 선포를 볼 수 있다. 이전 시기의 증거들에는 땅의 회복이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빚이 탕감되는 것과 연관하여 그 저당이었을 땅이 원주인에게 돌아가는 것도 전제되었다고 여길 수 있다.

    실제로, 주전 18세기 바벨론의 삼수일루나(Samsuiluna) 치세의 한 토판에서는 미샤룸과 땅을 되돌려 주는 것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토판에서는 이러한 날에 어떤 기념적인 횃불을 들어 올리는 것이 수반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팔을 부는 희년과 아주 흡사함을 볼 수 있다.

    안두라룸과 미샤룸이 이미 일어난 사회적 불의를 시정하는 조치라면, 한 도시를 해방시키며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방지하고 보호를 선언하는 “킷디누투(Kiddinutu)”는 미래지향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 킷디누투 역시 주전 2천년대 중반부터, 헬레니즘 시기까지 실행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이기에 서로간에 종삼을 수 없다는 오경의 규정들과 이러한 킷디누투 조치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희년 규례와 고대 근동의 조치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고대 근동의 미샤룸은 신의 대행자인 인간 왕에 의해 선포되지만, 희년법은 참된 왕이신 여호와에 의해 선포된다. 희년에 선포된 ““드로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심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야 했던 이들이 자유인이 되고, 다른 이에게 넘어가 있던 땅이 다시 돌아온다는 점에서, ““드로르””를 통한 희년의 선포는 여호와께서 그 땅의 주인이시며,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주인 되심을 확인하는 사건이다. 두번째로, 미샤룸은 부정기적이며 갑작스레 이루어지지만, 희년은 정기적이고 규칙적이며 거룩한 절기로 규정되어 일어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세상 나라는 즉위하는 임금의 변덕이나 호의에 좌우되고 그의 의지에 좌우되지만, 희년법은 사람의 변덕스러움에 기댈 것이 아니라 규칙적이고 정기적으로 시행되도록 규정된다. 근동의 해방은 왕의 호의에서 나온 시혜인데 비해, 구약의 희년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근거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희년법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법령들을 세우고 사회 체제를 완비한다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거나 제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통할 수 있다. 아울러, 바인펠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이제까지의 빚을 탕감하는 근동의 법이 과거와 연관된 법이라면, 제도적으로 규정된 희년법은 근본적으로 미래를 향한 법이다.

    2.4. 결론

    희년법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삶을 위한 법이었으며, 동시에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바른 삶을 위한 이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대에도 여전히 희년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작용하고 있다. 희년이 대속죄일에 선포되었다는 것은 제의적 정결과 이른바 사회적 정결이 동일한 차원으로 융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소를 정결케 하는 대속죄일이야말로 희년법을 선포하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날일 것이다.

    희년법의 실질적인 내용은 여호와께 대한 경외에 근본을 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원칙위에서, 그리고 여호와의 왕되심의 기초 위에서 선포된 자유이며 그 구체적 내용은 빚의 탕감, 땅의 회복, 땅과 사람의 쉼, 경제적 종속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요구들은 어느 때에건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실행가능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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