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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퍼온 글 - “베데스다 연못을 넘어 나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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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문자의 껍질을 벗겨내고 예수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아 있는 말씀이 청중들의 가슴에 와서 박혀 버린 2시간.

    서울 서대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강당에서 4월 25일 오후 7시부터 열린 교회개혁실천연대 말씀사경회는 현재 교회의 무기력한 모습에 경종을 울리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뜨거운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이날 말씀을 전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근주 교수(구약학)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과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차원으로 해석하고, 현재의 교회가 비정한 기적의 현장인 베데스다 연못을 뛰어 넘어 나봇처럼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베데스다 연못은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뛰어든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공평한 기적의 공간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몸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거나 자신을 연못에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동원할 수 있는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가 보장되는 차별의 공간이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애환을 나누던 환자들이 물이 동할 때는 갑자기 서로 원수가 되어버리는 끔찍한 지옥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곳으로 비유했다. 그런데 이 같은 베데스다 연못의 비극은 바로 천사가 일으키는 기적, 즉 지극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종교가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도 베데스다 연못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면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즉, 마치 선착순 경기처럼 1등만이 살아남는 비정함이 숨어 있으며, 1등에게는 병이 낫는 것과 같은 기적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
    더구나 교회까지 베데스다 연못 주변의 수많은 인파속에 섞여서 그 기적을 사모하고 있으며, 남보다 먼저 그 기적을 쟁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베데스다 연못에 나타난 예수는 기적을 일으키는 연못이 아닌 오직 그 연못의 가장 주변에서 처절하게 소외되어 있는 38년 된 중풍병자에게 눈을 돌렸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베데스다 연못에 나타난 예수는 중풍병자를 연못에 넣어준 것이 아니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했다. 김 교수는 이 말씀의 의미를 베데스다 연못의 불공평한 체제에 대한 고발 및 중풍병자에게 이 차별적인 곳을 과감하게 벗어나 참 자유를 찾으라는 명령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예수가 마침 안식일임에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의 분노를 사는 행위였지만, 예수는 일부러 문자의 껍질을 뒤집어 쓴 바리새인들을 격발시켜 그들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믿음을 노출시켰다고 분석했다.  
    김근주 교수는 신약의 베데스다 연못과 더불어 구약 열왕기의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도 현재의 교회가 반드시 얻어야 할 교훈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하나님의 땅에 대한 규례를 철저하게 지켰던 한 농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일국의 왕가를 진멸하신 사건이다.


    땅을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하신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열조의 유업인 땅을 소중하게 간직하던 나봇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의 계교에 의해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나봇이 죽은 것은 그가 왕궁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 포도원을 팔라는 아합의 제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에 분개한 이세벨은 불량배 2명을 매수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하도록 만들어 결국 성 밖에서 돌에 맞아 죽게 했다. 김 교수는 거짓 증언과 이세벨의 계교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된 재판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나봇의 사형이 집행된 부분을 주목했다.  

    나봇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원로와 귀족들이 참석한 재판에서 2명의 증언에 따라 성 밖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 김 교수는 나봇이 억울하게 죽어간 것처럼, 오늘날에도 온갖 불의한 일들이 ‘성경에 있다’는 이유로 합리화되고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교회가 너무나 자주 성경 말씀을 화석화된 문자로 고정시켜 버리고 그 안에 살아 있는 말씀의 의미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또 토지에서 나오는 이득을 독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땅이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의미에 대한 가르침도 주고 있다. 김 교수는 땅이 돈 벌이 수단이 아닌 하나님께서 골고루 나누어주신 조상의 유업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포도원 옆에 왕궁이 들어서면서 땅의 가치가 훨씬 높아졌음에도 나봇이 결코 땅을 팔아서 부를 챙기지 않은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교수는 엘리야가 나봇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 중 그 누구도 아닌 아합왕을 직접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이건 간에 구조적 죄악의 중심에 있다면 하나님의 최우선적인 진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 역시 이 사회에 구조적인 악이 존재한다면 그 악의 근원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날 말씀사경회에서 결론적으로 베데스다를 은혜의 집으로만 바라보는 고정적인 관점을 벗어버리고, 형식적이고 문자주의에 얽매인 말씀의 적용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나봇과 같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위해 교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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