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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병찬 칼럼] 다시 신의 존재를 묻는 이유
  • [곽병찬 칼럼] 다시 신의 존재를 묻는 이유

    ** 2011.3.16.수. 한겨레신문 온라인판에서 퍼왔습니다.

      2004년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때 종교계는 다음과 같은 난제에 직면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2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유 없이’ 죽어간 사실을 신은 과연 용인했을까.” 지진해일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신실한 신앙인들이 밀집한 지역을 휩쓸었다. 불교의 타이와 스리랑카, 무슬림의 인도네시아, 힌두교의 인도. 유럽 기독교국가에서 온 여행객 수천명도 포함돼 있었다.

      ‘양심적인’ 종교인이라면 먼저 고백해야 할 물음이었다. 영국 성공회의 지도자 로언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 한 명의 뜻하지 않은 죽음도 믿음을 뒤흔드는데, 대재앙에 직면해 ‘이런 엄청난 고통을 허용한 신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캔터베리의 제임스 주교도 그랬다.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 그것도 성탄절 직후에 미증유의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신의 존재에 대한 답하기 어려운 신학적 의문을 남겼다.” <아에프페> 통신은 이런 성찰적 논의를 이렇게 정리했다. “유럽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신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 유대교 및 기타 종교 지도자들은 ‘지진이 신의 분노였다’는 말을 거부했다.”

      예외가 없을 리 없다. 근본주의 개신교계다. 미국 남침례신학교의 앨버트 몰러 총장은 <시엔엔>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재앙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개신교계는 압권이었다. “쓰나미 희생자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은 자들이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다. …태국 푸켓에서 놀러 갔던 유럽인들이 많이 죽었는데, 예수 제대로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김홍도 목사)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예수의 불호령이 떨어질 법하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은 이웃의 고통을 제 장삿속에 이용하려는 그런 자들부터 징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도호쿠 대재앙 앞에서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운운했던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신의 존재를 묻는다는 것은 단지 신의 존재를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삶의 의미,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따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철학이건 신학이건 서구에서 신이란 인간 존재의 의미의 원천이다. 인종학살 등 잔인한 살상이 되풀이될 때마다 철학과 신학이 절규하듯이 신의 존재를 물었던 까닭은 여기에 있다. 왜 던져놓고, 짓밟는가!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가.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라면, 신의 선택에 대한 물음은 나의 실존적 결단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물음일 터이다. 그 의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종교의 본질은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꿀 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윌리엄스 대주교는 말했다. 결국 헌신을 위한 삶의 결단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1755년 11월, 포르투갈 리스본이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희생자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한 충격을 이렇게 토로했다. “리스본은 폐허로 널브러져 있고, 우리는 파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일본 도호쿠 대재앙은 인간이 이룬 문명을 일거에 휩쓸었다. 해일은 노아의 방주 같았던 8m 둑을 삽시간에 무너뜨렸고, 원자로에서 새나오는 하얀 연기 앞에서 세계인은 숨죽인다. 이보다 더 무력하고 허망할 수 있을까. 오로지 연어떼처럼 죽음의 땅으로 역류하는 헌신의 행렬만이 인간 존엄의 빛을 희미하게 빛낼 뿐이다. 신은? 바로 그 결단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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