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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상의 글) 지금 행복하신가요?
  • 조회 수: 1147, 2010-02-10 18:28:02(2010-02-10)
  • 지금 행복 하신가요?

    여기 안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만족한 어부>라는 짧은 글이 있습니다.

    욕심의 항아리는 아무리 채워도 채울수 없습니다.
    욕심의 항아리를 비우면 그안에 가득찬 무엇을 볼수 있을겁니다.

    휘파람이 저절로 나오고,
    세상이 가끔 힘들고 피곤해도 그래도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여유가 생길것입니다.

    이런말이 생각납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휘파람을 부는것이 아니라,
    휘파람을 불기때문에 행복하다"


    ------------ 만족한 어부 -----------------------------

    북방에서 온 부자 사업가는
    남방의 어부가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고기잡일 안 가시오?"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놨습죠."

    "필요한 것보다도 더 많이 잡으면 되잖소?"

    "그래서 뭘 하게요?"

    "그래서 돈을 더 벌 수 있지요.
    그 돈으로 당신 배에 알맞은 발동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러면 또 돈을 더 장만하여 나일론 그물을 갖출 수 있고,
    그러면 또 더욱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면 얼마 안 가서 어선 두 척을 살 수도 있겠고……
    그러다 보면 거대한 어로 함대까지 거느리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큰 부자가 되는 거요."

    "그리고는 또 뭘 하죠?"

    "그리고는 편안히 앉아 쉬면서 삶을 즐길 수가 있지요."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출처: http://blog.naver.com/misterryu/40018743950


댓글 3

  • 니니안

    2010.02.11 00:06

    눈 먼 부자가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하니 평안이 없나봅니다.
  • Profile

    ♬♪♫강인구

    2010.02.11 09:27

    어라? 이거 어디서 본 글이라는 생각에 <어부>로 검색하니 재작년 초에 제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쓴 글이 검색됩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니 조금은 새로운 것도 같고 해서 붙여 봅니다.
    .
    .
    .
    한 부자 사업가가 남쪽의 바닷가에 갈 일이 있었는데...

    어부 한 명이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한껏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왜 고기잡일 안 가고 배를 놀리시오?"
    "아 예~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놨습니다. 하하"
    "그렇다 해도 시간이 이렇게 많은데 더 많이 잡을 수 있지 않소?"
    "그래서 뭘 하게요?"
    "돈을 더 벌 수 있지 않소! ㅉㅉ.“
    “그런 다음 에는요?”

    “그 돈으로 당신 배에 알맞은 발동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러면 또 돈을 더 장만하여 나일론 그물을 갖출 수 있고, 그러면 또 더욱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면 얼마 안 가서 어선 두 척을 살 수도 있겠고... 에 또...
    그러다 보면 거대한 어로 함대까지 거느리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큰 부자가 되는 거요."

    "그리고는 또 뭘 하죠?"
    "그리고는 편안히 앉아 쉬면서 삶을 즐길 수가 있지요."
    .
    .
    .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엔소니 드 멜로-


    어느 시인은 다정도 병인 듯 하다고 말을 했다지만 나는 아마도 생각이 많은 것이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보여지는 성품은 즉흥적이고, 거칠고, 배려없고, 성급하게 보이는데 의외로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일상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 이러저러한 가설들을 세워보았다가 또 지우는 그런 쫌생이 같은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는 듯하군요.

    위의 인용 글은 신년을 맞아 우리 형제 교회의 새해 맞이는 어떠한지 홈피들을 돌아보다가 한 교회의 자게에서 읽은 글입니다.
    읽고 바로의 느낌은 저 또한 글 속의 어부처럼 흐믓한 미소를 지었더랬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좋은 글은 퍼 날라 주는 게 도리 아니겠어?’ 뭐 이따위 생각을 하면서 한글로 카피한 후 어색한 말투들을 조탁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지요.
    .
    .
    그런데요 처음 읽었을 때 흔쾌히 동의했던 <흐믓함>이 점점 희미해 지는겁니다.
    그렇다고 부자의 어리석음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구요.^^
    처음에는 그 어부의 나이가 몇 살이나 먹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꾸물꾸물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부 나이가 육 칠십이면 다행이지만 만약 창창한 장년이... 딸린 식구를 책임져야한 가장이... 저런 생각으로 산다면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그저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고 그날 먹을 것만 있으면 자족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이들도 똑같이 자신을 닮은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얘기인데... 그나마 죽을 때까지 건강하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에 하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병에 걸린다면... 아니 자기 자신이 병에 걸린다면 무엇으로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머리 한쪽에서 휘리릭~ 하고 지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쪽 머리에서는...
    ‘그 어촌의 모든 사람이 모두 다 그렇게 사는 것에 아무 불만이 없고, 또 앞으로도 반칙하는 사람없고, 반칙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전혀 요동치 않을 자신이 있다면 무슨 문제이겠는가? 없으면 좀 굶으면 되고 아프면 아픈 대로 지내고 머리 속에 삶에 대한 훌륭한 지식이 없다한들 그저 모든 상황-그것이 조금 처참한 것이 될지언정-가운데 만족함이 있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삶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휘리릭~

    또 한쪽 머리 속에는...
    ‘이 어부의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하느님이 우리, 아니 나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분명하다. 공중의 나는 새도 챙겨 먹이시고, 들꽃 하나도 솔로몬의 영화와 견주시는 주님... 창조의 목적 가운데 그 일을 하면 내가 나머지 것들을 채우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 어부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다만 너의 관점이야... 네가 부자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한 마음으로 어부를 보았기 때문에 그 어부의 삶이 무언가 자유롭지 못한 것,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것 아닐까?... ’ 휘리릭~
    .
    .
    .
    별별... 누구 말마따나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짧은 시간에 들고 나다가 서로 엉키곤 합니다.

    그러다가 또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은 무엇일까?
    아니 그 분이 태초부터 계획하신 나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내가 배워서 아는 것 말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요구하시는 것 말고...
    “얘야.. 베드로... 너는 말이야...”
    이렇게 시작하는 하느님의 나에 대한 계획을 알고 싶다.
    그래서 모호한 열심이나 그 모호함으로 파생되는 세상과의 타협, 부끄러움...
    그런 첫 아담이 되고 싶지 않다.
    .
    .
    여기까지 어제 써 놓은 글입니다.

    그리고 수요예배에 갔구요... 사도행전으로 하는 큐티로 신부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례에 대한 옳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죽고 예수와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말씀... 삼천명이나 믿기로 고백한 후 세례를 받고 그들이 어떤 공동체의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인지에 대해 또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시며 우리 신부님... 중간 중간 아멘?~으로 점검하시는데 머리는 아멘이지만 내 삶의 형편과 방식에 매여 아멘으로 힘차게 화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봅니다.
    후다닥 일어나 벗어나고픈 충동을 간신히 억누릅니다.
    수년 동안 내 안에 던져왔던 질문들이 또 끓어오릅니다.

    ‘거봐 거봐~ 너 가짜야~ 그저 그런척하며 앉아 있는 거라구~... 봐! 신부님도 변화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거라고 말하잖아~... 네 안에 과연 그런 변화가 있는거냐구?... 거룩한 척 바르게 사는 척 그렇게 앉아 있지만 네가 정말 변해야 할 곳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그런 것들이 너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 네가 이 순간에... 네 입으로 찬양하듯이 모든 것 내려놓고... 100% 그 분 앞에 납작 엎드리지 않는다면 그 분이 도대체 너에게 어!떤! 분이냐 이런 말이야!... 너 정말 너와 비롯한 모든 것들이 그 분에게서 왔고 그 분께로 간다는 것에 대해 사실은 마음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냐? 뭐? 오바하지 말라구?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 분께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하... 그래 그런 사람이 신부님이 여러분들도 초대 교회의 신도들처럼 그렇게 날마다 모여 기도하고... 배우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고...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며 아멘?~ 할 때 왜 침묵하냐구.... 예수님이 그래 한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못하느냐? 말씀하셨는데... 기도가 믿음 생활의 기본인데... 여러분은 과연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십니까? 라고 물으실 때 왜 먼 곳만 바라보냐구...
    좋아! 지금 너의 모습이 그렇지 못하니 아멘! 하지 못한다 쳐!... 그러면 그렇게는 하고 싶나?... 어허~ 머리로 대답하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야지... ‘

    뭐 이런 생각들이... 다 쓰지 못하지만 지금 써 놓은 것 보다 10배는 더 많은 유치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들락날락합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것을 지금 글을 쓰면서 발견했습니다.
    어제 그렇게 예배 가운데 말씀으로 머리 속이 복잡했으면 그 정리 안 된 마음을 예배가 끝나더라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회랑을 지나 본당 2층의 탁구대를 보는 순간 그 마음들이 싸~악 하고 없어지고 깔깔 하하대며 탁구를 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중보기도에 참석해서 기도의 용사인 것처럼 기도했다는 거 아닙니까?

    교우님들,
    저는 생각이 많은 듯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왕 단순한 놈이 아닐까요?
    처절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누군가 말하는 교회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다중이? ^^;;; 인지도... 모르겠군요... ㅠㅠ

    찬양팀에서 동역하는 바우로는 사랑이신 주님을 믿는다는 자기에게 사랑 없음이 너무 괴롭다고 나누던데... 저의 문제는 어쩌면 <나의 그분을 향한 진정성>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건성건성... 값싸게...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그렇게 그 분 앞에 반쯤은 숨어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어찌하면 주님과의 진정성을 회복하겠습니까?
    내가 어찌하면 매 순간순간 의심없는 믿음으로 그 구원의 감격에 넘쳐 살겠습니까?
    내가 어찌하면 그 분을 닮고 그 분의 길을 가는 것을 기꺼워하겠습니까?
    내가 어찌하면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오직 그 분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어찌하면 그 분과의 온전한 동행을 마다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어찌하면 말씀 가운데 자유함으로 아멘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나를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인정하여 주셨지만 내가 육체의 소욕 가운데 쳐서 복종시키기를 바라시는 주님... 그 것에 더해 당신의 길을 함께하기를 바라시는 주님...
    내가 아직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하여 함께하는 당신의 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의 내 방식 내 길에서 당신의 방식 당신의 길로 전환하는 것이 못내 힘드나봅니다.

    “베드로, 네가 날 사랑하느냐?
    네가 나의 자녀라면 이제 모으고.. 챙기고.. 요청하고.. 받기만 하던 너의 삶이 이제 흘리고.. 배려하고.. 나누는 삶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단다.... 얘야.“
    .
    .
    .

    어제 옮겨 놓은 글 중에.. 어부가 일용할 양식을 구한 후에는 자기에게 허락한 좋은 것을 택해 누리는 가운데 자유함이 있었던 것처럼...
    자기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세상과 부의 논리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당당함으로 순리가 무엇인지를 보였던 것처럼...
    그 순리가 인간의 생사화복과 병노가 모두 그 분에게 달린 것인데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내가 걱정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며 살 뿐이고 나머지는 절대자의 몫이라는 단순함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어부...
    혹시 어쩌면 그 어부도 한 때 그 부자의 길을 걸어 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시험과 연단을 통해 그렇게 돌아와서는 하루에 충실하고 절대자와 교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있게 ‘내가 지금 어쩌고 있는 것 같소?’ 라고 반문함으로 부자의 정곡을 찌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어쩌면 부자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좀더 좀더.. 하면서... 혹은 안돼! 그럴 수는 없어...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 중에 주님이 어부처럼 나에게 오셔서 다른 방식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기를 충고하시는데 어리석은 나는 그저 내 고집에 사로잡혀서는 꼭 그 길을 다 가고 나서야 알겠다는 듯이 뻣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부의 미소처럼... 내 삶의 흐믓한 여유, 그 분의 자녀로서의 당당한 자존감을 과연 내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사도행전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찔린바 되어 ‘형제들아 내가 어찌할꼬?’ 라고 방법을 구하고는 세례 받고 변화하여 아름다운 주님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는데...
    주님이 그러실 것 같아요.
    “휴~ 얘! 베드로... 너 참 질기구나... 너 혹시 바보아니니? 이천년 전부터 계속 누군가에게 똑 같은 일들을 내가 해 왔지만 너처럼 한 말 또 하게 하고 또 하게 하는 애는 참 드물다는거 아니니...
    뭐가 그렇게 힘들어~ 좀 단순해 질 수는 없는거니?...“
    .
    .
    .
    아이 쒸~ 어째 결론이 안 나는군요.
    이랬다 저랬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말이예요...

    원래 나누고 싶은 생각은 ‘올 한 해 주님 사랑 안에서 잘 지내보아요.*^^*’ 이었었는데...
    쓰다보니 뭔 말을 해 놓은 건지 잘 모르게 되어 버렸군요...
    그렇다고 다 뒤집어 삭제하고 <근하신년>이라고 쓰기에는 내려온 칸 수가 너무 아깝습니다. ㅠㅠ
    그러니 읽으시는 형님 누님 동료 동생들이 알아서 좋게 긍정적인 쪽으로만 해석해서 읽어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고... 혹시나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지신 지체들이 계시다면 언제 한번 모여 차나 한 잔 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도 참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오며...
    이만 여기서 끊을까 합니다.
    .
    .
    해피 뉴 이어입니다. 샬롬이구요. *^^*
  • 양신부

    2010.02.12 10:36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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