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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2010년 5월 2일] 요한 13:31-35 새계명
  • 청지기
    조회 수: 1466, 2010-05-03 09:50:35(2010-05-03)
  •   어느 기업이나 단체는 그 모임이 존재하는 이유, 존재의 목적을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사명선언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사명선언문은 주보에 실려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한 몸 된 우리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예배자, 중보자, 빛과 소금,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다음 세대를 일으키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본질적으로 모든 하느님의 교회의 사명선언문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34절,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은 이 말씀을 되새겨 보며 믿음의 삶을 재정립하기를 원합니다.

      -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신자들을 지역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로 모이도록 하신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사랑을 배우게 하시고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교회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가르칠’ 교를 사용하는데, 본질상 교회는 ‘서로’ 교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교회로 모여 서로 사랑하는 모범, 기준, 절대치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요?
      요한 15:12-13,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행해야 하는 사랑의 절대 기준은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이라고 합니다.

      -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삶이 될까요?

      1. ‘용서하는 삶’입니다.

      마태 18:21이하에 보면, 일 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비유가 나옵니다.
      한 달란트 = 6천 데나리온 / 일 데나리온 = 노동자의 하루 품삯
      일당 - 8만원 = 4조 8천억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내가, 죄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구원받았습니다.

      지옥의 형벌에서 건짐받은 죄사함의 은혜는 너무나 커서 그것 자체만 해도 이 세상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행복한 것입니다.
      로마서 4:7-8, 하느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두신 사람들은 행복하다. 주께서 죄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도 행복하다."

      이렇게 주님의 희생으로 죄 사함을 받은 내가 바로 일 만 달란트 탕감 받은 빚쟁이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내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에도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모범을 따라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고전 13:7).

      2. 주님처럼 사랑하는 삶이란?
      우리가 목숨처럼 소중한 것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시간과 돈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자기의 시간을 나누고 물질을 나눕니다.
      사랑하는 애인과 만나는 시간을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자기 자식에게 사용하는 돈은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이죠.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우리 성공회기도서에 나와 있는 혼배언약을 보면 사랑하여 부부가 되는 남여는 평생의 시간을 함께 하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겠다고 약속합니다.

      부부로 앉으신 분들은 두 손을 잡아 언약을 되새겨 보기 바랍니다.  
      “나는 그대를 남편으로, 아내로 맞이하여 이 순간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넉넉할 때나 어려울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변함없이 그대를 사랑하고 보살피며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부부로 살아 갈 것을 약속합니다.”
      이 언약 안에는 재산도 공유한다는 약속이 포함됩니다.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아깝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아깝다면 그 사랑은 혀로 하는 사랑일 뿐입니다.

      - 주님이 왜 우리에게 ‘주님이 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일까요?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 지금 이 땅에서 그 누구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테레사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서 유래한 의학용어입니다. 자선이나 구제 등 착한 일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듣거나 보기만 해도 몸 안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항생물질이 생성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1988년 하버드대학의 데이빗 맥클랜드 박사는 연구를 통해 이를 밝혀냈습니다.  
      첫번째 실험 - 대가를 받고 노동을 한 그룹과 아무런 대가없이 일한 그룹을 노동한 후에 조사했더니 무료봉사활동에 참가한 그룹들이 면역력이 높아지고 나쁜 병균을 물리치는 항생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두 번째 실험은 하버드대학생 132명에게 인도 캘커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테레사 수녀의 다큐멘타리를 보여주고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학생들의 타액 속에 있는 면역 글로불린항체A의 변화를 체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학생들의 대부분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S-lga와 면역 글로블린항제A가 눈에 띠게 증가하였다는 것입니다.

      맥클란드 박사는 ‘선한 행동으로 유발된 감동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면역력을 높여주는 생물학적 사이클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것을 ‘테레사효과’라고 명명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몸만을 생각하며 사는 암환자의 평균수명은 19개월인 반면, 자원봉사생활을 하는 암환자의 평균수명은 37개월로 거의 2배를 더 산다고 합니다. 남을 도우면 삶의 보람을 느끼고 되고 이때 체내에 저항물질이 생겨 인체가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빈민가에서 여든 일곱까지 살았습니다. 전염병이 무성한 열대우림 아프리카에서 슈바이처 박사는 아흔 살을 살았습니다. 한국 8만여 입양아의 대모 바서 홀트 여사는 2000년 아흔 여섯 나이로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여기에 아흔 살까지 살았던 나이팅게일까지...
      분명하게 일치하는 것은, 이들은 모두 세상 가장 낮은 자세로 나눔과 상생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여 나누고 섬기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합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가페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회복되는 창조의 원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는 삶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의 삶이 됩니다.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2:47,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사랑의 공동체가 전도의 시작이요 끝이 됩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마당에 나온 두 부부 - 김미자 오영부부
      컴패션이라는 기독교단체를 통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31명의 아이들을 입양한 부부, 1명당 월 4만 5천원의 후원비.
      또 헌혈 횟수가 253차례, 평균 2주에 한번. 성분헌혈, 혈소판 헌혈이기에 걸리는 시간이 2시간 오고 가고 3-4시간.
      피를 나눈다는 것은 곧 생명을 나누는 것이기에 건강한 피를 나누고자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야채 위주로 식자를 하고 하루 2시간 이상을 걸으면서 건강관리.>

      얼마나 감동이 되고 도전이 되던지....
      우리의 원형이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고 또 그렇게 할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고 그렇게 결단을 합니다.

      아마 올해를 새로 시작할 때 많은 분들이 마음에 새로운 결단들을 하셨을거에요.
      올해는 십일조를 드림으로 교회를 세우고 선교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 올해는 살림을 규모있게 하면서 좀더 구제하는 일에 참여해야 겠다. 올해는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에 참여해야 겠다. 등등

      -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감동과 결단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지속하지 못하고 이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인해 사랑하는 삶을 멈추게 되는 것일까요?

      이유는 내가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냐하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주체가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살아왔던 옛사람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의 마음을 따르려는 우리의 원형을 억누르게 됩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누르고 나누고 섬기려고 했던 마음을 눌러 버립니다.

      - 그래서 오늘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새로운’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옛 계명이 있었습니다. 마태오 22:37-39.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옛 계명을 이루는 주체가 누구인가요?
      ‘나’입니다. 내가 사랑의 주체입니다.
      율법을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옛 계명은 우리가 말씀대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 죄인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며 사랑의 예수님을 의지하면, 내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으로 인해 거듭난 원형이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새 생명이 주님의 새로운 계명을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믿음이란 사랑하지 못하는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예수님이 생명이며 주인이 되심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용서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는 옛사람을 죽이면 용서하고 베풀고 섬기는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셔 나로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가 사는 거듭난 ‘새로운’ 존재들에게 주는 계명이기에 ‘새로운’ 계명인 것이다.

      주보에 실린 마더 테레사의 글을 읽어 드립니다.
      <며칠 전 나는 20년 동안 등을 대고 누워있으면서 움직일 수 있는 신체기관이라고는 오른팔 밖에 없는 한 남자로부터 15달러를 받았다. 그가 유일하게 즐기는 것은 흡연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당신께 이 돈을 보냅니다.”
      그것은 그에게 끔찍스러운 희생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나눔의 행동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그 돈으로 빵을 사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양편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다. 그는 아낌없이 주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고맙게 받았다.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의 사랑을 남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선물이다. 우리의 사랑을 남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예수의 사랑을 닮게 하자. 예수가 우리를 사랑했듯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자. 우리는 예수를 온전히 사랑하도록 하자.>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님의 그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며 실천하며 마침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은총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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