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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12월 11일] 살전 5:16-24 어떤 모습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까?
  • 청지기
    조회 수: 3882, 2005-12-12 09:20:07(2005-12-12)
  • 대림절의 첫 번째 의미는 2000년 전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성탄절을 기다리며 네 번의 주일을 지내는 기간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기념하는 대림초도 더 밝은 빛으로 3번째 촛불까지 타오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다시 오실 주님, 왕으로 재림하셔서 모든 백성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종말신앙을 새롭게 하는 영적인 훈련의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이나 교회나 모두 두 번째 의미보다는 첫 번째 의미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메시지는 두 번째의 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이 받은 달란트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착하고 충성된 종!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
    주님의 오실 길을 닦는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신자!
    주님의 재림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닌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서 재림의 때를 앞당기고자 힘쓰는 신자!
    그래서 이제 남은 6,000 개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선교의 완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동참하는 신자로, 교회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지난 대림1, 2주에 선포된 하느님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오늘 대림 3주일 성령께서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항공사를 경영하는 독실한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세상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종사를 탑승시킬 때 반드시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고 신자끼리는 절대 탑승시키지 않는 원칙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 분은 주님을 믿는 신자였습니다. 즉, 말씀대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신앙도 확고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카전서 4:17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에 나와 있는 휴거를 말씀 그대로 믿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종사 둘이 다 구원받은 신자라면 주님이 갑자기 오실 때 둘 다 휴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비행기가 추락하여 큰 인명피해가 일어날 것이기에 반드시 한명은 믿지 않는 사람을 배치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확고한 종말신앙으로 살아간 그분의 삶은 참으로 정직하고 거룩한 삶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신자들이 이런 확고한 종말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개인의 삶은 변할 것은 물론이고 세상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 때 그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 각자는 어떤 모습으로 있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될까요?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주님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서신말씀 데살로니카전서 5장 23절입니다.

    ‘온전히 거룩한 사람’, ‘심령과 영혼과 육체가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8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도 여러분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끝까지 굳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의 생활이 모든 면에서 성결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과 혼과 몸이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성화되어야 함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신랑으로, 그분을 맞이하는 교회를 신부로 비유합니다. 신부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교회와 성도의 본질은 ‘거룩과 순결’입니다.

    우리 모두가 영과 혼과 몸, 존재 자체가 온전히 흠이 없는 순결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도저히 주님 앞에 우리의 영과 혼과 육으로 거룩하게 설 수 없는 그야 말로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오늘 거룩한 주님의 날, 하느님을 만나는 예배에 나오기 전에도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를 범했을 것이고 신부 가 입는 우리의 예복은 더럽혀 졌을 것입니다.

    저도 가끔 제 큰 아이와 신경전을 벌리다가 화를 내기도합니다. 에페소서 6장 4절에 분명히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저의 육적인 감정대로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온전하고 흠없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존재로 만들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살전 5:23-24.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그러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는지를 살펴봅시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하느님의 영)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하느님과 연합된 혼/영이라는 영적인 생명(ZOE)이 있고 혼/영과 연합된 몸인 육적인 생명(BIOS)가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음으로 타락한 사람은 그 영이 죽어 하느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예배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영적인 죽음의 실상입니다.

    이렇게 영이 죽은 사람은 그 혼도 타락하게 됩니다. 마음, 의지, 감정 - 지정의가 인간의 혼을 구성하는 요소인데, 이것들도 타락하여 마음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상실되었고 의지로는 죄를 택하는 삶을 살아가며 감정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영이 살아있어 하느님을 예배하고 혼이 거룩하여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삶을 살라가던 창조의 아름답던 원형은 죄를 지어 타락함으로 사람은 더 이상 영적인 존재가 아닌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가는 비참한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창세기 6장 3절, “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하신 하느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2,000년 전 성탄하신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분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그 죽은 영혼을 살려주시고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을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너가 새로 나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새로 태어나는 것, 중생, 거듭남’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은 성령님이 내주하시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의 원형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렇듯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온전하고 거룩한 존재로 회복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갈라디아 5장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몸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육적인 사람이 있고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거듭남으로 구원받았을 지라도 몸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 -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대로 사는 사람은 도저히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되지 않고 주님께서 오시는 날, 결코 거룩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끄시는 사람은 신령한 사람으로 영이 마음을 주장하고 마음이 몸을 주장합니다. 마음이 몸에게 해야 할 일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격입니다.

    마음이 몸에게 몇 시에 일어나고 저녁에 몇 시에 잘 것인지,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 언제 일하고 언제 쉴 것인지를 지시합니다.  몸이 가진 취향을 마음이 조절하는 것입니다. 몸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탐욕, 탐식이 죄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몸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지시할 뿐만 아니라, 영도 마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은 마음에 지시할 때 마음이 몸에게 시킬 것까지 지시합니다.

    마음이 영의 지배를 받고 몸이 마음의 지배를 받으면 몸은 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영이 마음을 지배하고 마음이 영을 지배할 때 그는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모든 것을 터득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 성령을 소멸치 말고, 즉 성령이 다스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말은 진짜 성령님이 소멸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의 뜻을 저항하거나 그가 인도하시는 길을 거부함으로서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스르고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게 합니다. 바로 이 때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명령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거스르는 삶을 살게 되면 그 즉시로 십자가의 은햐로 들어가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죄를 씻어내고 하느님의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순종을 훈련해야 합니다.
    나아가 단순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나의 삶에 왕성하게 활동하시도록 나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활 가운데 항상 기뻐하기를 결정하면, 늘 기도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기를 결정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면 성령님은 더욱 큰 능력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메시지가 에페소서 5장 18-21에도 나옵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또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이렇게 살아갈 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충만히 역사하사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예수의 향기가 나는 인격을 변화시키십니다.
    영-혼-몸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삶을 살아가는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가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의 역사는 전혀 신비적인 체험이 아닙니다. 철저히 실사구시 일상의 현장의 삶에서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영 혼 육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도와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 모두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온전히 거룩한 사람’, ‘심령과 영혼과 육체가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거룩한 신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즈가리야 4:6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권세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내 영을 받아야 될 일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살아계신 성령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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