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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제자교회대한성공회 제자교회

  • 9월 1일 설교문 - ‘맨끝자리에 가서 앉으라
  • 2013년9월1일 루가 14:7-11

    1.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이 바리사이파 지도자 집에 가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바리사이파란 예수님 당시에 대중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소위 말씀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키니까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며 멸시하였습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 죄인 취급받는 사람들과 친구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율법을 어기셨습니다. 오늘 읽지 않았지만, 2절부터 나오는 치유 사건도 안식일법을 어기는 예수님의 돌출 행동입니다.

     

    3.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참 괴팍하시죠? 자기를 초대해준 바리사이파 지도자 집에서 굳이 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안식일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시니 말입니다. 의도적인 것이죠. 신앙이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인데, 율법은 그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문자 안으로 가둬버리고 사람들을 구속합니다.

     

    4. 한국교회 안에도 이런 율법들이 있습니다. 주초문제! 우리 성공회는 너무 풀어져 있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술과 담배를 하는 건 죄입니다.

     

    5. 이번 여름수련회에서 적은 양이지만 맥주와 막걸리가 제공되었었습니다. 일정을 마친 밤 시간에도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술을 자유롭게 마셨습니다. 돌아와서 몇 분의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6. 관할사제로서 여러분 개인이나 사사로운 만남에서는 모르나,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서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덕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죄여서가 아니라 교회에서는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안좋다라는 하는 건 죄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기 때문에 그런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 기독교방송 크리스챤 나우에서 이 문제를 주제로 하여 토크를 진행했으니 나중에 보시면 넓은 이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가 주초와 같은 율법의 문제가 아니기에 본문의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8. 바리사이파 지도자가 베푸는 식사 자리이니까 류류상종이라고 손님들의 면면이 바리사이파 사람들 같은 사회의 지도자급이 함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식사에 초대받아온 손님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예수님의 눈에 거슬렸습니다.

     

    9. 그 행태란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그들의 행태를 지적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10. 유대나라의 혼인잔치 좌석은 직사각형의 식탁 둘레에 긴 편자모양(U자 모양)으로 배열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의자에 드러누워 먹는 로마식 풍습이 유대 사회에도 들어와 있었습니다. 연결된 로마식 식탁과 소파를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이라고 합니다. 네모의 삼 면에는 의자를 놓고 한쪽 면만 비워 하인들이 거기 들어가 음식 시중을 들 수 있게 했습니다. 손님의 자세는 왼팔에 상체를 기대고 누워 머리를 들고 쿠션에 등을 기대고 하체는 쭉 뻗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손님의 머리는 첫 손님의 가슴 반대편에 있어 비밀히 할 얘기가 있으면 그의 가슴에 기대야 했습니다.

     

    11. 보통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식탁의 맨 가운데 윗자리에 앉아 기대어 눕고, 둘째와 셋째 서열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의 왼쪽과 오른 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각 의자는 세 사람씩 앉도록 되어 있는데 중앙에 앉은 사람이 윗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식탁의 윗자리 왼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는 서열상 그 다음 사람들이 앉고 그 오른 쪽 의자에는 그 다음 서열의 사람들이 앉습니다.

     

    12. 유대인 손님들은 마땅한 식탁좌석을 찾기 위해서 그 당대의 사회적 예절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랍비들이 가장 중앙자리를 차지하게 되겠지요. 주인이 좌석의 위치를 정해줄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재량에 맡겨질 때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윗자리에 앉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오늘의 상황이 이 경우입니다.

     

    13. 퀴즈 : 오늘 비유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사람에게 주인이 와서 자리를 비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앉을 자리가 맨끝자리 밖에 없습니다. 왜 일까요?

    - 사람들이 맨 끝자리에는 앉기 않기 때문입니다.

     

    14.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죄성 - 윗자리를 차지하고픈 욕망, 권력욕과 명예욕을 봅니다. 자신이 뭐 좀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리에 연연합니다. 엊그제 상가집에서 몇 분이 대화하는데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돈 좀 사람들을 보면 항상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고... 친구들 모임에서 조차도 중심되는 자리에 앉아 위세를 부리려고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15. 저희 성직자들도 그렇습니다. 주교 선거 시즌이 되면, 몇몇 분들이 운동을 합니다. 자기가 주교가 되어야 하는 명분과 이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자신이 주교가 되어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성장시키겠다고 합니다. 제가 가까이 모셨던 신부님도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해서 주교가 되셨습니다. 지금 주교님도 그렇구요.

     

    16. 물론 소명과 사명감이 있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그 자리에 앉아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되어야 된다’는 말에는 주교 자리에 대한 욕심 - 권력욕, 명예욕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전교구는 주교님이 은퇴하셨음에도 새 주교를 선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 그래도 저희 성공회는 양호합니다. 금권선거도 없고 -가난하니까, 법정으로까지 가서 싸우지 않으니까요. 다만 정해진 룰 안에서 내가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요. 개신교단을 보면 1년하는 총회장 자리를 놓고 돈을 뿌리고 법정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윗자리를 자지하려는 욕망에 따른 자리 싸움입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 - 권력욕과 명예욕은 인간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죄성입니다.

     

    18. 제가 서울교구 성직자모임인 성직자원의 총무입니다. 성직자원의 의장과 총무는 선거로 뽑습니다. 작년 성직자원 총회에서 제가 총무에 선출되었습니다. 잡일이 많고 섬기는 자리이지만, 우선은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그리고 뭔가 내가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던데요? 제 안에 윗자리 욕망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9.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어디 공식적인 모임에 가면 은근히 마음 속으로 어느 자리에 앉을까 신경쓰지 않나요? 어디에 가서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주변 자리에 앉게 되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자본심이 상하고 불쾌해 하지 않으신지요?

     

    20. 어느 교회에서 교회위원에 떨어져서 교회에 안나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지금 형제교회 어떤 신자회장 분은 성공회법인이 운영하는 기관의 대표 자리에 앉지 못했다고 교회를 안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조차도 윗자리를 차지하고픈, 높아지고 싶은 욕망의 수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21. 교회 안에는 묵묵히 끝자리에서 섬기는 훌륭한 성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교회지도자들이 이런 모습이니 대부분 성도들의 모습이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22. 한국교회 안에 고지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크리스챤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청부론이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깨끗한 부자들이 되자는 말입니다..

     

    23. 고지론, 청부론, 좋은 말입니다. 진짜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각 영역에 지도자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공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짜 정직하게 벌은 돈으로 선교와 구제에 헌신하는 신자들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24. 20세기 초엽 미국에서 기독학생운동이 부흥할 대 많은 청년들이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이 때 선교사로 나가지 않고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은 이런 서약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닫힌 재정으로 살면서 하느님의 나라과 교회를 위하여 십일조를 드린다. 수입이 많아지면 십의이조를 드린다. 어느 선을 넘는 수입이 생기면 십의 삼조를 드린다. 이렇게 해서 십의 팔조까지도 드리는 헌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만든 학교 병원 교회 등등이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정도의 믿음과 영성이면 고지론, 청부론을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25. 그런데 실상 고지론과 청부론의 이면에는 우리의 무서운 죄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윗자리를 차지하고픈 욕망에 따라 세상에서 성공해서 잘 살고픈 성공주의가 고지론이라는 청부론으로 거룩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26. 80-90년대 한참 이런 논리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실하게 공부해서 우리 사회 각 영역의 윗자리에 진출한 많은 크리스챤들이 있습니다. 이 논리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크리스챤들이 지도자들로 많이 진출해서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고 하느님의 공의와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안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국회위원만도 30% 이상이 크리스챤입니다. 대통령도 두 분이나 장로였습니다. 이유는 윗자리를 차지하고픈 자기 욕망으로 고지론을 외치고 청부론을 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오히려 맨끝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윗자리를 차고픈 욕망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요?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이 기독교입니다. 나는 그저 주님 앞에 종일 따름입니다.

     

     

    28. 학생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 세상에 나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이유, 내가 목회하는 이유? 단 한 가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함입니다. 고지론 청부론이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 믿음이 나로 공부하게 하고 성실하게 일하게 하는 겁니다.

     

    29. 내가 스스로 높아지고 싶은 윗자리 욕망은 애당초 그리스도인 안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윗자리 욕망으로 살던 죄인인 나는 죽었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내가 바로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30. 갈라 2:20

     

    3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이미 창세기부터 나오는 하느님의 경고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였지만,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고자 했던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나 이 땅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윗자리 욕망은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입니다. 이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32. 이렇게 윗자리 욕망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마귀의 궤계입니다. 사탄은 스스로가 하느님처럼 되고자 했던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윗자리 욕망을 따라 산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마귀에에 속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33.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겸손하게 처신하면 높아질 것이라는 처세술이 아닙니다. 겸손이라는 인격을 가지라는 교양이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윗자리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와 사는 사람입니다.

     

     

    34. 맨끝자리를 택하는 삶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과한 사람만이 보여주는 믿음의 삶입니다. 자기를 낮추라는 말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하셨던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만 사는 삶을 말합니다.

     

    35. 현재 부산교구 교구장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는 서울교구에서 의정부교회를 개척하여 자립시키고 전도가 유망한 사제였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교회를 개척하자는 제안에 서울의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내려갔습니다.

     

    36. 10여년 맨 땅에 헤딩하며 제주교회를 개척하고 자립하는 교회로 세웠습니다. 스스로 주교가 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주교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을 물리치시고 오네시모사제를 주교로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부산교구는 희망이 있습니다. 오네시모 주교가 여전히 맨끝자리를 택하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느님이 그를 계속 사용하여 부산교구를 살리실 것입니다.

     

    37. 그렇다고 맨끝자리를 택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항상 이렇게 높여준다는 건 아닙니다. 처세술이 아니라니까요. 오히려 이름없이 빛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갑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높임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여지면 자기가 받을 상을 다 이 세상에서 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38. 우리 교회에 몇 차례 오셨던 강명관선교사님이 기억났습니다. 한영외고 국어교사직을 내려놓고 아마존 선교사 자리로 가신 분이죠. 그 정도의 신앙이면 교감, 교장, 장학사 윗자리로 올라가 선한 영향력을 끼지면서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맨끝자리 아마존 선교사로 나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종족이 100여명이 안되는 바나와족에 가서. 그의 고백처럼 인구가 많은 종족에 가서 선교사를 하면 좀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맨끝자리입니다. 천국에서 상급이 클 것입니다.

     

    39. 이 세상에서 고지에 올라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도 보람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쓰임받는 청부가 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님 다시오실 때 주님 앞에서 서서 주님이 나의 인생을 뭐라고 판단해 주실까입니다.

     

    40. 마지막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명을 읽어드리고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구체화한 것으로 세상의 흐름에는 뒤떨어지는 지침이지만, 예수님을 따르고 가장 낮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하고자 작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41.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 십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42. 잠시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묵상하고 각자 성령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리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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